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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찢어진 입’의 악몽 같은 기억

가난한선비/과학자 2025. 7. 9. 16:20

‘찢어진 입’의 악몽 같은 기억

| 제 주위에는 마치 토끼 입술을 연상케 하는, 비록 외과적인 수술로 봉합했지만 윗입술이 갈라진 흔적이 남은 사람이 한두 명씩 꼭 있었습니다. 지금도 저와 단짝으로 함께 운동하며 (저에게 탁구를 배웠는데 이제는 어느덧 저보다 훨씬 잘 치는) 땀을 흘리는 동료도 그중 하나입니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보고 자라서 그런지, 사람을 볼 때 제가 상대방의 외모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스타일이라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이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도 입술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얼굴이 다른 것처럼 이 친구 윗입술의 수술 자국이 저에게는 단순히 나와 다른 점 중 하나일 뿐 아무런 특이 사항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어느 날 이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그 수술 자국에 대한 주제로 넘어가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는 학창 시절 수술 자국 때문에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선명하게 기억나는 일화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아마 트라우마로 자리 잡은 듯했습니다. 허락을 받고 그 일화를 이름이나 장소 등 구체적인 점들을 빼고 소개할까 합니다.


중학생 시절이었답니다. 친구가 수업 시간에 조금 떠들었나 봅니다. 보통 이런 일이 생기면 선생님께 한 차례 경고를 받게 되고, 반복되면 혼이 나게 되지요. 성숙한 선생님이라면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이 종종 떠들기도 하고 반항하기도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어지간해선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선생님들이 현실에서는 많기 때문에 개인적인 감정을 아이들에게 쏟아내는, 건전하지 못한 일이 안타깝지만 자주 벌어지곤 합니다. 저 역시 1980년대에 초등학생 시절과 1990년대 중고등학생 시절에 몇몇 선생님들에게 모욕적인 언행과 심한 폭력이 자행되는 장면들을 수차례 목격한 기억이 있습니다. 가슴 아픈 일들이고 반드시 척결되어야 하는 일들이지요. 

수업 시간에 떠든 친구에게 그 당시 선생님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조용히 안 해? 어디 찢어진 입 가지고 소란을 피워?”

제 친구는 순간 너무나도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운 기분에 몸 둘 바를 몰랐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윗입술에 남아 있는 수술 자국 때문에 학교에서 괜스레 위축되는 기분을 이겨내려 애써왔는데,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거의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 아니 폭언을 했던 것입니다. 제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구고 상황을 모면했지만, 십수 년이 지나도 그때 그 장면은 영화속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박제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각인이 된 상처는 트라우마가 된 것이지요. 그 이후 자신의 윗입술을 거울을 통해 볼 때마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모른 채 한동안 수치심과 함께 분노를 느끼고 다스리느라 힘든 나날들을 보냈다고 합니다.

 

학생의 신체적 특징을 그렇게 공개적으로 드러내어 모독을 주었던 그 선생님의 행위는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아니 머릿속으로 생각해도 이미 충분히 모욕적인 그 말을 그렇게 함부로, 그것도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중학생을 향해 내뱉다니요! 덤덤하게 과거 일을 말하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저는 화가 너무 많이 나서 가슴이 한동안 쿵쾅댔었답니다. |

이상 ‘세포처럼 나이 들 수 있다면’의 3부의 두 번째 꼭지 ‘입술, 입천장: 성장하기 위해 사라지는 세포들’의 도입부를 발췌한 부분입니다. 벌써 이 책이 출간된 지 6개월이 지났네요. 날벼락 같았던 계엄, 내란으로 혼란했던 시기에 출간되어 더 정신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독자들의 관심도 받지 못했던 것 같고요. 저자인 저로서는 무척이나 아쉬운 부분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출판사와 상의하여 노화를 다루는 1, 2부가 앞으로 배치되고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인 3부는 뒤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3부가 발생생물학의 정수를 다루는 부분이랍니다.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것도 3부 때문이었고 가장 먼저 쓴 것도 3부였답니다. 출간된 지 6개월 만에 3부를 소개하고 싶어서 시간 날 때마다 한 꼭지씩 부분 발췌해서 포스팅하고 있습니다. 

선천성 기형을 가지고 살아가는 소수자들을 발생생물학을 통해 이해하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인식론적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좋은 길잡이가 될 줄 믿습니다. 아직도 구매 안 하신 분들이 있다면 얼렁 서점에 가셔서 직접 구매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동네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선물용으로도 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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