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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관계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1. 25. 02:44

복음 전도에는 관계가 필수적이다. 예외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어릴적부터 익숙해져버린 전도 방법은 기묘하게도 그 예외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을 구하는 기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런 기적이 단 한번만 일어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숱하게 많은 사람들과 허다하게 많은 그들의 시도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실제로 그러한 예외적인 일화들은 수치스럽게, 게다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효율적으로 느껴지는 그러한 전도 방법에 있어서 거의 유일한 원동력이었다.


예수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만이 구원의 필수 요소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예나 지금이나 충분한 논쟁거리가 되고도 남는다. 칭의와 성화와의 관계, 믿음과 행위와의 관계, 영과 진리와의 관계, 그리고 신앙와 삶과의 관계까지, 나는 시간이 갈수록 예수의 존재 자체만이 아닌 그분이 관심 가지셨고 행동하시며 보여주셨던 하나님나라 관점에서, 내 안에 무질서하게 펼쳐져 있던 신앙의 퍼즐조각을 맞춰가게 됐다.


하나님나라 복음은 관계가 필수적이다. 예외는 없다. 심지어 나 자신과의 관계까지도 하나님나라 복음은 새로운 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도와준다. 그렇다. 세계관이다. 이미 예수로 확실하게 임했지만 아직 완벽하게 오지는 않은 하나님나라에 거하게 된다는 것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신의 세계관이 무너지는 경험과 함께 새로운 세계관의 재건을 경험하게 된다는 의미다. 리모델링이 아니다. 완벽한 파괴에 이은 완벽한 임재다. 그래야만 한다. 우린 완벽하게 자신의 왕국이 무너지는 고통을 목도할 뿐 아니라 그 중심에서 몸으로 모든 과정을 겪어내야만 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기쁨을 만끽하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나라 백성이 된다는 것에는 세계관의 변화가 반드시 뒤따른다. 그러므로 전도란 피전도자의 세계관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일종의 초청이다. 한 인간의 인생을 걸쳐 형성된, 자신의 정체성과 다를 바 없는, 그 세계관을 부숴 버리라는 요청이다. 삶의 방식을 바꾸라는 요구다.


그런데 우리는 이 엄청난 요구를,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뭇 사람들에게 해야만 했고, 그럴 때 부끄러워 하지 않고 당당해야만 했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준비된 멘트를 짧은 시간 안에 해야만 했었다. 어린 시절 나의 ‘전도’는 그렇게 그려지고 색칠되고 있었던 것이다.


‘관계’가 철저하게 결여된 전도 방법이 먹혔을리 만무했다. 영웅담처럼 들었던 전도의 성공 사례가 내게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이 없는 실망감과 알 수 없는 죄책감에 나는 '전도'가 싫었다. 하지만 싫은 체를 할 순 없었다. 한 번도 성공을 못 시켰지만, 그래도 난 경건하게 보이고 싶었고 내가 가져왔던 신앙이 공격받길 원치 않았던 것이다. 검증 자체를 두려워 했었다. 마치 우상을 섬기듯, 신앙이라는 것이 내겐 다분히 무속적이었던 것이다.


조금씩 하나님나라가 깨달아진다. 내 나이 벌써 마흔이다. 그래도 좋다. 모세는 마흔에 광야로 가지 않았던가. 점진적인 깨달음과 내 안팎의 변화들을 지켜보고 또 체험하는 것이 재밌다. 사는 것 같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내 안의 이런 작은 물결이 분명 다른 사람에게도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들이 하나로 모여져 세상을 바꿀 새물결이 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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