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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_’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읽고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는 순간

존재자의 껍데기가 아닌, 그 존재자 안에 숨겨진 존재 자체가 한꺼번에 드러나는 순간을 하이데거는 '존재가 말을 거는 순간'이라고 한다. 현대 기술문명사회에서 한낱 에너지원으로 소급 및 인식되는 인간이라는 존재자가 저마다 고유한 모습을 드러내는 축제의 순간이다.  

이런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를 엄습하는 불안이라는 근본기분을 느껴야만 하고, 그것으로부터 도피하지 말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피를 택한다. 계속해서 자신이 훌륭한 자원으로 인정받는 상태를 허망하다고 느끼고 싶지 않을뿐더러 그것을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이 매트릭스 안 세상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만약 빨간약을 선택한 뒤 꿀꺽 삼키고 정면으로 불안을 두 팔 벌려 끌어안게 되면,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존재자들이 허물을 벗고 그 안에 숨겨진 고유한 존재가 경이와 함께 드러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비로소 모든 존재들이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퓌지스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불안은 에피파니와 같은 순간에만 엄습하는 건 아니다. 일상의 저변에 깔려 언제나 꿈틀거리고 있다. 존재는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불안이 경이로 전환되어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그것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이때 일어나는 것이 소외다. 존재자들이 자신으로부터 소외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나는 하이데거가 표현한 대로 기술인이 아닌 시인이 되고 싶다. 존재자의 외형에 만족하고 그것만으로 삶을 살아가는 매트릭스 안의 멋들어진 기술인이 아니라, 존재자 내부 깊숙한 곳에 숨겨있던 고유한 존재를 알아채고 그것의 아름다움에 경탄하며 삶의 깊이와 풍성함을 누리는 시인으로 살고 싶다. 세상 물정을 다 알아버린 어른의 퇴색된 눈이 아닌 나이가 지긋이 들어도 경이에 찬 아이의 눈을 가진 어른이 되고 싶다. 눈이 깊은 사람이 되고 싶다. 눈에서 비늘을 벗겨낼 때다. 양파 껍질과도 같은 그 비늘을 계속해서 벗겨낼 수 있도록 더욱더 겸손해야겠다. 조용한 소리들과 사소한 것들에 더욱더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쏟아야겠다. 매일이 축제의 순간으로 이어지면 좋겠다.  

* 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 읽기
1. 노동의 존재론과 칼 맑스의 혁명 사상: https://rtmodel.tistory.com/2092
2.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무의식 혁명: https://rtmodel.tistory.com/2102
3. 프리드리히 니체가 제시한 미래철학의 서곡, 관계론: https://rtmodel.tistory.com/2111
4. 현상학의 창시자, 후설: https://rtmodel.tistory.com/2121
5. 로자 룩셈부르크와 혁명의 변증법: https://rtmodel.tistory.com/2131
6.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https://rtmodel.tistory.com/2143

#동녘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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