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읽기의 방식들 (4): 고전과 현대
이번엔 문학 읽기에 대해서다. 주로 소설에 대해서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고전파, 다른 하나는 현대파. 물론 고전파가 현대소설을 읽지 않는 것도 아니고, 현대파가 고전소설을 읽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둘은 엄연히 구분이 되며 주로 읽는 소설은 정해져 있다. 참고로 나는 고전파에 속한다.
현대소설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내가 현대소설보다 고전소설을 좋아하고 주로 읽는 이유는 고전소설만이 선사하는 맛이 따로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대소설은 고전소설에 비해 자극적인 것 같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묘사보다는 서사에 치중한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인간이나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한 마디로 가볍다. 이에 반해 고전소설은 뻔한 듯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읽고 나면 뭔가가 남는다. 생각하게 되고 또 생각하게 된다. 잔상이 상대적으로 강하다고 말해도 좋겠다.
조금 더 풀어보자. 나는 고전소설과 현대소설의 가장 큰 차이점을 뻔함과 뻔하지 않음의 조화라고 생각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고전소설은 앞서 언급했듯 서사에 있어서는 그리 참신하지 않다. 뻔하다는 말이다. 한 사람의 일생, 혹은 한 가족, 한 가문의 일대기를 다루는 작품들이 많다. 또한 어떤 사건을 다룬다고 해도 기발하거나 충격적인 건 별로 없다. 라스꼴리니꼬프가 도끼로 노파의 머리를 후려쳐서 피가 철철 넘치는 장면 정도는 아마 고전소설 중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에 반하여 현대소설은 집착으로 느껴질 정도로 새로운 소재, 참신한 발상, 기발한 사건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다. 마치 그렇게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요법을 쓰지 않으면 좋은 소설이 될 수 없다고 여기는 것 같은 인상이 강하다. 그래서 가끔은 현대소설을 읽을 때면 부담이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그 부담 아래에서 그 소설의 가벼움을 느낀다.
고전소설이 뻔한 것을 뻔하지 않게 풀어낸다고 한다면, 현대소설은 뻔하지 않은 것을 뻔하게 풀어낸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단순한 대비는 작품의 무게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뻔한 것을 뻔하지 않게 풀어내는 데에는 작가의 내공이 필수다. 자극적이지 않은, 다시 말해 평범하게만 보이는 서사 안에 빛나는 보석들을 숨겨 놓는다는 건 정말이지 엄청난 내공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나는 믿는다. 거기에는 작가의 시선과 사상과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뻔한 서사를 달리 말하면 보편성을 띠는 이야기라고 읽을 수 있다. 즉 누구나 집중만 하면 내 이야기로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것이다. 실제로 고전소설을 읽다 보면 백 년이 넘는 시간을 초월하여 마치 주인공이 나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현대소설 읽을 때보다 훨씬 잦다. 이질감이 훨씬 덜하다는 것이다. 결국 소설이 던져주는 묵직한 감동은 보편성을 터치할 때 온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개별적인 뻔한 이야기 안에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삶을 구겨 넣어 공감하게 만들고 뭔가를 느끼고 깨닫게 하는 작품이 바로 고전소설이다.
반면 현대소설은 누가 누가 더 기발한 아이디어를 소개하는지 한 번 보자 시합이라도 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러다 보니 소설의 핵심은 바로 그 기발함, 참신함에 몰빵 되는 듯한 기분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발하고 참신하다 하더라도 공감이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은 그런 소설이 지닌 가장 큰 취약점일 것이다. 라스꼴리니꼬프가 도끼로 노파를 살해한 장면이 나름 자극적인 장면이었다고 해도 ‘죄와 벌’은 그 장면에 전혀 의지하지 않는다. ‘죄와 벌’은 그렇게 노파를 살해한 이후에 라스꼴리니꼬프의 내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추적하는 데에 방점을 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 보편적인 감정과 생각들을 느끼고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발함과 참신함을 무한 소비하는 많은 현대소설들은 그 기발함과 참신함의 가중치에 비례하듯 그것만 벗겨내면 그 속에 아무것도 없는, 즉 공허를 맛보게 만든다. 몇몇 소설은 그 공허조차 마치 계획된 것처럼, 마치 갑자기 끝나 버리는 단편소설만의 매력인 것처럼 둔갑시키기도 하지만, 내 눈에는 가벼움으로만 읽힐 뿐이다.
소설을 읽고 싶어 하는 독서 입문자가 있다면, 나는 고전소설을 먼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충분히 고전의 맛을 음미한 다음에 현대소설도 하나둘씩 읽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만약 이 순서가 바뀐다면, 아마도 고전소설은 요원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아주 단 아이스크림을 먹고 수박을 한 입 먹으면 아무 맛도 안 느껴지는 것처럼.
'읽기와 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경계, 절박함, 글쓰기 (0) | 2026.08.18 |
|---|---|
| 읽기의 방식들 (5): 자기 강화와 자기 겸손 (0) | 2026.08.14 |
| 읽기의 방식들 (3): 추천작과 전작 읽기 (0) | 2026.08.04 |
| 읽기의 방식들 (2): 직렬과 병렬 (0) | 2026.08.04 |
| 읽기의 방식들 (1): 문학과 비문학 (0) | 2026.08.03 |
- Total
- Today
- Yesterd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