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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방식들 (5): 자기 강화와 자기 겸손
독서의 목적을 말하라고 하면 대부분은 지식과 기술의 습득을 들거나 유희라고 말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목적을 달성함으로써 누군가는 자기 강화라는 지점에 다다르고, 또 누군가는 자기 겸손이라는 지점에 다다른다. 왜 그럴까?
지식과 기술의 습득은 ‘읽기의 방식들 (1) 문학과 비문학’ 편에서 다뤘기 때문에 이 글에선 유희라는 관점에서 좀 더 풀어보겠다.
유희란 즐거움을 얻기 위해 노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나 한 단계 더 들어가 보면, 유희에는 일차적인 혹은 즉흥적이고 즉각적인 유희가 있는가 하면, 이차적인 혹은 텍스트를 읽은 후 시간차를 두고 나중에서야 깨닫거나 느끼게 되는, 즉 연기되는 혹은 미끄러지는 유희가 있다.
일차적인 유희는 즉각적인 공감을 통해 얻어진다. 정서적인 측면이 크게 좌우한다. 본인의 취향과 잘 맞으면 좋은 책이고 잘 안 맞으면 대충 읽거나 중도포기하고 다른 책으로 쉽게 넘어가는 경우에 해당된다. 이렇게 독서를 하는 걸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좋은 것도 아니다. 이런 부류의 독서인들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책을 가늠하고 분류하고 선택하기 때문에 나를 넘어서는 독서는 평생 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책이란 게 나를 성장시키고 성숙시키는 도구이기도 한데 이런 부분에서 이 부류의 독서인들은 빵점인 것이다.
이차적인 유희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뒤늦게 찾아온 깨달음과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유희가 독서가 주는 참 유희라고 믿는다. 이것 때문에 독서를 계속해서 하게 된다. 이런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나는 한 걸음 더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는 것 같다. 옹졸하고 편협했던 나를 뒤로하고 새로운 나를 입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독을 하게 되고 음미를 하게 되며 재해석에 재해석을 거치게 된다. 반복은 깊이를 만들고 깊이는 사유를 확장시키며 확장된 사유는 나를 더욱 겸손하게 만든다.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또 책을 찾게 되는 선순환 구조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어려운 책을 읽으라는 말을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이 말은 단순히 난해한 책을 골라서 무작정 시간을 투자하라는 게 아니다. 이차적인 유희를 느껴볼 수 있도록 애쓰라는 말로 해석해야 한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고 한두 번 계속 생각하다 보면 뭔가 뒤늦게 깨닫게 되고 느끼게 되는 게 있는 책들을 맛보라는 말이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다. 하나에 몰입하지 못하는 시대다. 효율을 너무 따진 나머지 한 번에 하나를 처리하는 건 어리석은 일로 치부되는 시대다. 멍 때리거나 편리하지 않은 방법으로 무언가를 하면 멍청한 짓거리로 판명되는 시대다. 일출을 보기 위해 아직도 깜깜한 새벽 미리 산 정상에 올라 추위를 참으로 기다리던 그 아름다운 순간들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덩달아 경이를 느끼는 순간들도 사라지고 말았다. 삶은 가성비로만 측정되고 돈으로 계산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재력이 사람의 가치가 되어버린 이 시대에 책을 읽고 자기 겸손을 추구하라는 건 꼰대스럽다거나 어리석은 말로 치부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차라리 그런 꼰대로 남겠다. 어리석은 말을 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하며 실천에 묵묵히 옮기는 바보로 남겠다. 책을 읽고, 효율보다는 한 번에 하나에 몰입하기를 택할 것이고, 멍 때리며 시간을 탕진할 것이며, 일출을 보기 위해 무식하게 깜깜한 밤에 산에 오를 것이다. 경이를 느끼는 순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사랑하는 사람과 더욱더 그런 순간들을 포착하고 그 안에 몰입하여 지고의 행복을 맛볼 것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서, 독서모임도 많이 하면서 참 다양한 사람들을 본다. 각설하고, 나는 이차적인 유희를 추구하며 독서를 통해 자신을 강화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좀 더 낮아지고 겸손해지며 열린 사람으로 진화해 나가는 사람이 좋다. 아이를 간직한 어른, 눈이 깊은 사람, 바른 독서는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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