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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절박함, 글쓰기
가끔은 꿈을 꾸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현실감이 떨어질 때가 있다. 익숙하던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고, 생각 없이 하던 행동들도 마치 처음 하는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진다. 기억이라는 게 이렇게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닿을 때 즈음이면 모든 걸 잃어버릴 것처럼 더럭 겁도 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지금 이 순간을 더 누리고 사랑해야겠다고 절박함을 느낀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나는 잃는 것, 잃을 것,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의 경계와 지키고 싶은 것, 지켜내야만 할 것들의 경계가 아주 조금씩 더 선명해지는 것 같다.
기억을 잃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사랑하던 모든 것은 기억 안에 저장되어 있는 걸까. 기억 안에 저장되지 못하는 것들도 있을까.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기억을 잃어버리면 사랑하는 모든 것들도 잃어버리게 되는 걸까.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어지는 순간만큼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
나는 글을 많이 쓰는 편이다. 스마트폰으로도 쓰고, 랩탑으로도 쓰고, 머릿속에도 쓰고, 꿈속에서도 쓴다. 꿈속에 있는 것 같은 당혹스러운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텍스트로 쓴 글과 아직 쓰지 않은 글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내가 써놓고도 처음 보는 글 같을 때 느끼는 당혹스러움은 기억상실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중첩이 일어나는 상황은 공상과학에서 말하는 멀티버스의 인커전이 일어난 상황과 견줄만하다. 글을 많이 쓰면서 이런 경험도 잦아지는 것 같다.
쓰고 싶은 글들이 많고, 써야만 하는 글들도 많으며, 쓰고 있는 글들도 많다.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매일 한계를 느끼면서도, 그래서 제자리걸음 같아 한숨을 길게 쉬는 순간이 많으면서도, 그래도 계속 써나간다. 나에게 시간이 주어졌을 때 쓰지 않는다면 또 언제 쓰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오십 인생 후회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러나 쓰지 않아서 후회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다. 아니 피하고 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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