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in monologue

유연함과 고지식함

가난한선비/과학자 2026. 8. 9. 20:47

유연함과 고지식함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건 카멜레온 같은 유연함보다는 곰 같은 고지식함이다. 효율 혹은 가성비만 따지는 영민한 이들은 중간에서 쉽게 포기한다. 계산기 두드리기에 손이 빨라 안 될 게 뻔하다는 결론에 금세 다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눈은 멀리 보지 못한다. 그 결과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한다. 자신의 합리화 기제와 은밀한 게으름을 빼면 이들의 내면은 텅 비어있다.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있다는 건, 미련할 정도로 묵묵히 무언가를 사수할 줄 안다는 건 복 중의 복이다.

루틴을 가진 사람이 좋다. 얼마나 사람들과 유연하게 어울릴 수 있는지가 한땐 가장 중요한 능력 같아 보였다. 아마도 나의 부족한 부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과 두루두루 지내는 인간관계는 피곤함과 불필요함의 뉘앙스가 강해졌다. 이제는 자기만의 삶의 패턴을 가지고, 조금은 고지식하게 보이고 재미없게 보이더라도, 그것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나는 그런 사람이 좋고 그렇게 되고 싶어 한다.

인생의 낮은 점을 지나면서 두 번째 인생을 살듯 나름대로의 루틴을 구축해 왔다. 읽고 쓰고 나누고 땀 흘리는 삶이다. 이변이 생기지 않는 한 습관이 될 정도로, 관성이 될 정도로 내 삶에, 내 내면에 착 달라붙어 절대 떨어지지 않는 ‘제2의 나’가 되어주길 바라는 간절함 마음으로 오늘도 몸을 움직인다. 홀로 묵묵히 흘리는 성실한 땀은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in monologu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똑똑한 사람들의 담합  (0) 2026.07.31
신이 잠시 머물다 간 어느 날의 풍경  (0) 2026.07.29
카르페 디엠  (0) 2026.07.28
눈이 깊은 사람  (0) 2026.07.24
완전한 파괴  (0) 2026.07.13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