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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김애란
김애란 저, '그랬다고 적었다'를 읽고
정갈한 문장들을 마주할 때마다 느꼈던 희열을 기억한다. 그런 문장들을 찾아다니며 어떤 작가에 한동안 머무르기도 했다. 문장으로 이루어진 비옥한 토양을 만날 때면 나는 뿌리를 깊게 내려 마치 모든 영양분을 흡수하려는 듯 게걸스럽게 그 문장들을 탐닉했다. 노트에 적고, 소리 내어 읽기도 하고, 외우기도 했다. 살다 보면 마음을 안정시킬 문장들이 필요할 때가 있고, 움켜쥘 만한 문장들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읽고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집착을 아마 비슷한 모양으로 가지고 있지 않을까.
온라인 서점이 아닌 오프라인 서점에 갈 때마다 즉흥적으로 책을 사게 되는데, 이번에 내 손에 들어온 책 중 하나가 김애란의 산문집 '그랬다고 적었다'였다. 수년 전에 썼던 글들을 모아 놓은 것인데, 사람의 얼굴, 이야기의 얼굴, 일상의 얼굴, 이렇게 3부로 되어있다. 1부의 경우,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신 김애란 작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와 AI를 대비시키며 쓴 글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자전적인 이야기와 시대를 반영한 이야기가 어우러져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2부와 3부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았다. 별로 관련이 없는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 분량을 채우려 한 것 같은 편집의 기술이 인공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것은 내게 성의 없음으로 읽혔다). 게다가 모두 코로나 이전에 쓴 글을 포함해서 과거에 썼던 글이라 신선함이랄까 하는 느낌이 없었다. 문장은 정갈한데, 유통기간이 지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지금 내 심정을 어느 정도 정확히 표현할 수 있으려나. 2부 중간부터는 정독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고, 대충 훑어보게 되었다.
김애란의 소설을 아직 한 권도 읽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 산문집을 좀 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적어도 김애란을 모르는 독자이자, 문장을 사랑하고 글쓰기를 사랑하는 아마추어 작가의 눈에 이 산문집이 강한 매력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김애란의 소설을 한두 편 읽고 다시 이 산문집을 마주하면 다른 느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꼭 읽어 볼 테다). 아무튼 나는 이 책을 삼 분의 일 정도 읽다가 신형철의 문장이 엄청 고팠다. 집에 돌아가면 신형철의 책을 집어 들고 한동안 시간을 보내야겠다. 해독제가 필요하다.
#문학동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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