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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는 대신 살아내는 소설가
이승우 저, ‘소설을 살다‘를 읽고
소설가라는 직업은 숙명이라는 생각을 나는 오래전부터 해왔다. 취미 생활이나 여가 활동, 혹은 훈련, 노력, 열정만으로는 불가능한 직업이 소설가라고 나는 믿고 있다. 이 책은 소설가로서의 이승우 작가를 가득 담고 있다. 소설가와 소설에 대한 그의 내밀한 생각들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는 소설은 소설가의 기억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라고 말한다. 한 소설가의 모든 작품은 그 소설가의 자서전이라고도 말한다. 어떤 방식으로 표현이 되든 소설은 소설가를 담아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거의 상처를 헤집어서든, 굳게 닫아 두었던 기억의 저장고를 열어서든, 모든 소설은 소설가의 과거로부터 끄집어낸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가는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파헤치고 재구성하고 재해석하는 자라고 할 수 있겠다.
뿐만 아니다. 소설가는 신문기자가 아니다. 이는 역사가가 기자가 아닌 것과 같다. 소설가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해석하고 뒤틀고 삭제하고 추가하면서 변형을 가하는 존재인 것이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사실이 아니라고 해서 진실을 담고 있지 않은 건 아니므로, 소설가는 소설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변주해서 들려주는 재담꾼인 것이다.
그는 고백한다. 그가 쓴 소설의 거의 전부가 한 개인인 그가 집단, 혹은 세상과 만나 얻은 상처와 각성의 기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그는 자아의 깊은 곳으로 침잠하여 성찰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에 다다랐던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은 한 소설가의 과거 이야기의 변주인 동시에 인간 본성의 역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우리가 소설을 읽으며 스스로를 성찰하게 되고 보편적인 깨달음과 통찰을 얻는 것도 다 이 때문일 것이다.
이승우 작가에게 소설은 직업의 결과물에 그치지 않는다. 그에게 소설은 전부인 것 같다. 소설을 쓰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소설을 쓰는지조차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그는 소설이라는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다. 제목 ‘소설을 살다’는 문법적으로 틀린 게 아닌 게다.
아직 책장에 이승우 작가의 책이 여러 권 읽지 않은 채 꽂혀 있다. ’생의 이면‘으로 처음 만났던 이승우는 내게 거부감이 일 정도로 굉장히 낯설었다. 그의 반복되는 문체가 거슬렸다. 그러나 하나둘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으며, 특히 그의 산문들을 읽으며 소설가로서의 그를 이해하게 되면서 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 나의 선입견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지금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읽게 된다. 이 책 덕분에 소설가 이승우를 조금은 더 깊게 알게 된 것 같다. 이제 그의 소설들을 읽을 차례다. 제대로 소설가 이승우를 마주할 차례다.
#마음산책
#김영웅의책과일상
* 이승우 읽기
1. 생의 이면: https://rtmodel.tistory.com/1588
2. 사랑이 한 일: https://rtmodel.tistory.com/1628
3. 고요한 읽기: https://rtmodel.tistory.com/1960
4. 캉탕: https://rtmodel.tistory.com/2024
5. 소설가의 귓속말: https://rtmodel.tistory.com/2037
6. 소설을 살다: https://rtmodel.tistory.com/2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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