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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가 고독과 침묵에 들어가 처음 부딪쳐야 했던 것은 자기가 모든 면에서 몹시 피곤하고 고갈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로뎀나무 아래 드러누워 잠들었다. 그런 그를 지적으로나 영적으로 다루는 것은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애초 그런 일에 시간을 허비하시지 않았다. 그보다 하나님은 먼저 엘리야의 지치고 고갈된 몸부터 다루셨다. 즉 그냥 잠자게 두신 것이다. 그러다 먹고 마실 때가 되자 엘리야를 깨워 음식과 물을 주시고는 또 자게 하셨다. 그 뒤에도 이런 과정은 되풀이되었다.
이 같은 엘리야의 경험은 늘 내게 큰 위안이 된다. 고독과 침묵의 여정을 떠날 때 내게도 한 그루의 로뎀나무가 필요했다. 뼛속까지 스며든 피로에 굴복할 수 있는 곳, 피로가 내 삶에 대해 말해 주는 것을 들을 수 있는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놀랍게도 나의 영성 스승이 맨 먼저 살피게 해준 것 가운데 하나도 나의 몸 상태였다. 그녀와 나는 먼저 내가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잠은 얼마나 자고 있고, 운동은 얼마나 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것은 여호와의 천사가 엘리야에게 해준 일과 여러모로 비슷했다.
하나님 안에서 쉬면서 내 안에 소생과 돌봄이 필요한 부분들을 그분께 열어드릴 길을 찾으려면, 내게도 엘리야와 똑같은 지도가 필요했던 것이다. 엘리야처럼 나 역시 너무 피곤하고 지쳐 있어 하나님은커녕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독을 위해 스케줄을 비우기가 어려워 좌절하기도 해고, 계획해 놓고도 정작 가지 못한 때가 많아 민망하기도 했으며, 막상 가더라도 너무 피곤하여 낙심되기도 했다. 고독의 기간 동안 나는 피로감과 싸우려고 무언가 '생산적인' 듯한 일에 매달렸다. 가령 성경을 읽고 일기도 쓰며 매우 심오한 사상에 대해 묵상도 했다.
결국 엘리야의 이야기가 나를 초대한 곳은 피로와의 싸움을 멈추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피로에 굴복하는 것이었다. 피로를 무시하거나 이겨 보려던 모든 노력이 전혀 해답이 아니었음을 나는 인정해야 했다. 물론 '해내야만 한다'는 끈질긴 당위감에 이끌려 괴력을 발휘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노력 바로 이면에는 피로와 낙심이 도사리고 있어 이내 환멸과 포기의 유혹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다. 하지만 엘리야의 경험이 보여주듯이 하나님은 그런 피로와 환멸의 한복판에서도 기꺼이 나를 만나주셨다. 사실 내게 항복 의지가 있어야 하나님이 들어오셔서 아주 실제적이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도우실 기회가 열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피로를 그대로 두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볼 마음이 생겼다.
루스 헤일리 바턴 저, "하나님을 경험하는 고독과 침묵" 중 4장 "위험한 피로" 에서 발췌.
그렇다. 열심이 특심이라고해서 훌륭한 일꾼이 아니다. 하나님이 맘껏 일하실 수 있도록 내가 통로가 된다는 것은 내가 언제나 열심히 일해야 함을 뜻하진 않는다. 분별력 (Discerning Heart)이 열심 이전에 먼저 필요한 것이다. 분별없는 열심은 결국 나의 의의 표출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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