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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웅의영화와일상

영화 Arrival을 보고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3. 28. 05:33

첼로가 낮게 연주한다. 까맣다. 푸른 빛이 서서히 보이며 결이 드러난다. 천장이다. 퍼런 하늘이 보이고 곧이어 퍼런 호수가 보인다. 커다란 창이다. 하늘과 호수를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방이다. 그러나 어둡고 슬프다. 첼로가 연주하는 건 슬픔이고, 푸른 빛 또한 슬픔이다. 검은 테두리 안에 갇힌 파란 슬픔.


푸른 눈을 가진 루이스는 말한다.

I used to think this was the beginning of your story. 

Memory is a strange thing. It doesn’t work like I thought it did. 

We are so bound by time, by its order.


딸을 출산한 직후인 듯 아기가 보인다. 건네주는 아기를 받는 루이스에게선 경이로움이 묻어난다.

OK. Come back to me. Come back to me. Come back to me.


Stick'em up!

벌써 자라 대여섯살 되어 보이는 소녀가 루이스에게 장난을 친다.

높은 음의 바이올린이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전히 연주는 퍼렇기만 하다.

그리고 루이스는 받아친다.

Are you the sheriff in this here town?

These are my tickle guns, and I'm gonna getcha!


No!


You want me to chase you?

You better run!

Ah! Oh!


딸의 어렸을 적 루이스의 기억 속에 묻힌 행복의 파편이다.


장면이 바뀌며 루이스는 독백한다.

I remember moments in the middle.


계속 자라는 아이는 잠들기 전에 루이스에게 말한다.

I love you.


또 자라 사춘기 소녀가 된 아이는 루이스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한다.

I hate you.


현악 소리는 더욱 슬퍼지며 첼로의 저음과 바이올린의 고음이 함께 루이스 감정의 복잡함을 연주한다.

아이는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는 듯하다. 루이스는 운다.

루이스의 독백은 다음과 같다.

And this was the end.


아이는 푸른 방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루이스는 통곡하며 말한다. 

Come back to me. Come back to me.


루이스는 병원을 빠져나간다. 검은 테두리 사이 푸른 복도 사이로.

그리고 첼로는 연주를 멈춘다.


교수인 루이스는 출근을 하며 독백을 한다.

But now I’m not sure I believe in beginnings and endings. 

There are days that define your life, like the day they arrived.


바로 그 날 (the da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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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봤는데, 난 이 영화의 인트로 부분이 너무 인상적이다 (물론 맨 뒷부분도 그렇지만, 인클루지오. 수미쌍관구조, palindrome, Hannah). 나중에 영화를 끝까지 보고 시간 개념을 이해한 후 다시 앞 부분을 보면 더욱 그렇다. 왜 아빠의 모습이 없는지, 왜 루이스가 슬픈지, 루이스의 독백이 진짜 독백인지, 아님 누구에게 말하는 편지인지까지도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비로소 이해가 된다.


난 이 영화의 코어는 영화 전체를 앞뒤에서 이루는 수미쌍관구조의 맨 앞부분과 뒷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시다. 예술이다.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압축해서 대변한다. 차가운 머리보단 슬픈 가슴이 먼저 반응하는 부분이다. 또 본다. 그리고 느낀다. 앞 부분에서는 검은 테두리 속 퍼런 슬픔을. 뒷 부분에서는 인간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루이스의 결연한 의지를.


그리고 나는 루이스의 마지막 독백을 받아 적는다.

So, Hannah, this is where your story begins.

The day they departed.

Despite knowing the journey and where it leads, I embrace it.

And I welcome every moment of it.

아. 위의 두 문장은 감동적인 대사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특히 Amy Adams가 이 대사를 읽을 때 내게 느껴지는 그 떨림이 아직도 내 가슴을 휘젓는다. 아. 도대체 첼로 소리는 어찌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 보고 또 본다. 잠은 다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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