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오해와 착각의 출처가 익숙함일 때가 있다. 익숙함은 시간과 비례하지만, 누군가를 알아감은 그렇지만은 않다.
전철을 타고 출퇴근을 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매일 거의 같은 시각에 같은 거리를 걷게 되다보니 의도치 않게 자주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들도 역시 어떤 이유 때문에 그 시각에 그 거리를 지나는 것이다.
미국이라고 크게 다를 건 없다. 지나가다가 살짝 옷깃이라도 스치게 됐을 때 실례한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서로 건네는 미국만의 형식적인 인사 외에는 그들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난 그들이 익숙하고 그들은 내가 익숙하다. 많으면 일주일에 5번 (왕복이면 10번) 얼굴을 마주치게 되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마주칠 때면 서먹한데, 이젠 그 서먹함도 익숙해졌다. 반복만큼 빨리 익숙하게 만들어 주는 것도 없다.
익숙한 얼굴이라고 해서 서로를 안다고 말한다면 우스운 착각일 것이다. 오해다.우린 서로를 전혀 모른다. 24시간 중 몇 분이나 반복해서 공유하고는 있지만, 그래서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서로를 모른다고 해야 맞다.
이런 일이 있었다. 전혀 엉뚱한 시간과 장소에서 그 사람을 만났다. 마치 서로를 오래 알아왔다는듯 우린 즉각 서로를 알아봤고, 눈웃음으로 인사를 주고 받았다. 하마터면 하이 하고 인사를 할 뻔했다. 우린 이름도, 사는 곳도, 심지어 거의 매일 그 시각 그 거리를 왜 걷는지조차 모르지만, 그 순간만큼은 주위에서 익숙한 사람이라곤 그 사람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묘한 기분. 그 날은 우리가 처음으로 인사를 주고받은 날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가 갑자기 서로의 인간관계 속으로 뛰어들어온 순간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젠 만날 때마다 하이 하고 간단하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결국, 익숙함이 낳은 오해가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 준 것이다. 이럴 때 보면, 인생이란 참 재미있다. 우린 자신의 인생만은 계획대로 되길 원하는 존재이지만, 이렇게 때로는 인생의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우린 오히려 즐거워한다.
그런데 여전히 우린 서로를 모른다. 이름도, 사는 곳도, 심지어 거의 매일 그 시각 그 거리를 왜 걷는지조차 모른다. 아마도 또다른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게 되면, 그 때서야 한 단계 더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조절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 일상 속에 놓인 또다른 행복의 조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때 왜 그렇게 모든 것을 콘트롤하려고 아둥바둥 했는지 모르겠다. 확실히 마흔을 넘어서서 그런지 늘 있던 일상의 의미가 다르고 더 즐기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늙어가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in monologu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가운 데자뷰 (0) | 2017.08.04 |
---|---|
화해. (0) | 2017.08.04 |
비꼬는 사람들 (0) | 2017.08.04 |
자끄 엘륄을 만나다 (0) | 2017.08.04 |
2017 Family Vacation. Day 4 (0) | 2017.08.04 |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