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안도감은 산산이 부서지고 자력 구원의 수단으로 삼았던 끈은 끊어진다. 한때의 열심이 사라지고 나면, 약점과 불성실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기의 영적인 키에 단 1cm도 더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불만족의 기나긴 겨울이 시작되고 마침내 우울과 비관주의와 드러나지 않는 교묘한 절망 등이 전개된다. 교묘하다 함은 이 절망이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눈에 띄지 않게 진행되어 누구도 이것을 문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절망과 비관은 권태와 고역스러움의 형태를 띤다. 삶의 일상성, 하고 또 해도 여전히 매일 계속되는 의무 등에 우리는 압도되고 만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예수님은 지나치게 요구가 많다. 성령께 순복한다는 것은 내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다.’라는 생각을 허용하고 만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기 시작한다. 삶은 기쁨 없는 공허한 것이 되고 만다. 유진 오닐의 희곡 ‘그레이트 갓 브라운’에서 이렇게 탄식하는 주인공을 우리는 닮아가기 시작한다. “음악과 리듬과 타인의 호의와 노래와 웃음을 좋아하면서 왜 나는 춤추기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인생을 사랑하고 육체의 아름다움과 땅과 하늘과 바다의 생생한 빛깔을 사랑하면서 왜 나는 살기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사랑을 사랑하면서 왜 나는 사랑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하나님의 눈에 들려고 허둥대는 것, 아첨으로 점수를 따려고 앞 다투어 나가는 것, 자신의 하찮음을 덮어 가리고 죄의식에 젖어 살면서 중심을 잡으려 애쓰느라 엎치락뒤치락하는 것 등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 역겨운 것들이며, 은혜의 복음을 완전히 부인하는 행동들이다. |
브레넌 매닝의 '부랑아 복음' 중 chapter 1에서 발췌.
전날 밤을 새고, 어제밤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안와 홀로 밤에 책상에 앉아 책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부랑아 복음”이란 제목의 책에 내 눈이 멈췄다. 두 달 전 존경하는 정경 (Paul Kyung Jung) 집사님께서 읽어보라고 주신 책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멈추지 않는다. 그의 사랑은 언제나 차고 넘친다. 내가 자꾸만 잊어버릴 뿐이다.
적당한 순간에 브레넌 매닝을 만난 것 같다. 나는 필립 얀시보다 그의 필체에 더 끌린다.
때에 따라 인도하시고 먹여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