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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은 높고 마음과 생각은 항상 위를 향하지만, 일상이란 공간으로 내려오면 우린 하나의 육을 가진 똑같은 인간이다. 생계를 유지하려 오늘도 일터에서 땀을 흘린다. 자신은 굶어도 자식들 목구멍에는 뭐라도 넣어줘야 하는 의무감에 눌린다. 의도치 않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는 이상,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이다. 일상은 결코 높지 않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의 대기는 낮고 천한 곳에 고이는 법이다.
낮은 곳에 임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세리와 창녀의 친구가 되시는 예수님을 찬양한다. 높은 곳의 의인이 아닌, 낮은 곳의 죄인을 위하여 오신 예수님을 찬양한다. 구원은 낮은 곳에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여호와의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삶은, 그 거룩한 삶은, 하나님나라가 우리의 높은 이상이 아닌 낮은 일상 속에 임하셨듯, 우리의 일상 속에 존재해야 한다. 거룩함은 결코 높지 않다. 낮고 천함 가운데 거룩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하나님백성이다. 그것이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이다. 높은 곳에 있는 이상에 다다르려 일상을 버리고 현실을 도피하는 영성 안에는 그리스도가 없다. 하나님나라가 없다.
따라서 성령 또한 낮은 곳에 거한다. 그 능력에 의거한 치유나 방언, 기타 여러 은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 정의와 비폭력과 평화와 같은 높은 뜻도 결국은 우리와 같이 낮은 곳에서 일상에 허덕이는 인간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대부분도 낮은 일상 속에서 이루어졌다. 죄인을 만나시고 병자를 만나시고 소외된 자, 억눌린 자를 만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치유를 베풀어 주셨다. 예수님을 만난 그들은 이후에 변화를 받고 하나님나라에 쓰임을 받는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큰 뜻을 품고 세상을 변화시키라는 엄숙한 조건을 달고 맹세를 요구하신 뒤에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게 아니다. 그러나 크신 계획 가운데 그런 것들은 하나님나라의 하나의 작은 조각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날 수 없다. 육에 속한다. 유한하다. 끝내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확률이 높다.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자. 일상의 작은 파편에도 하나님나라가 깃듬을 발견하고 누리고 감사하자. 그렇다고 우리들의 눈까지도 낮은 곳에 머물 필요는 없다. 어쩌면 이것이 발은 아래에 있고 눈이 위에 있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발과 눈의 위치가 다르지만 우린 그것에서 괴리감을 느끼지 못한다. 한 몸이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성령의 역사. 그러므로 육을 가진 유한한 우리 인간이 할 일은 공중부양이 아니다. 땅에 발을 붙인 채, 일상에 쫓길지라도 그 가운데 치열하게 하나님나라의 거룩한 삶을 살아내려 애쓰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일을 염려하고 조언을 해 줄만큼의 짬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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