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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복음의 공공성, 거룩한 소식.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1. 3. 07:06

복음의 공공성, 거룩한 소식.


**김근주 (Keunjoo Kim) 교수님 책이 수상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최근 라인홀드 니버를 읽다가 복음의 공공성과 거룩함에 대해 아마추어적으로 묵상한 것을 글로 적어봄.


복음의 공공성이 중요한 이유는 라인홀드 니버가 간파한 개인과 집단의 차이를 고려하면 더욱 선명해진다. 니버는 개인은 도덕적일 수 있지만 집단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집단은 마치 희망이나 자정능력이 상실된 또 하나의 구제불능의 존재인 것이다. 니버가 보기엔 집단 이기주의가 제어되기 위해서는 개인 차원의 교육이나 윤리 따위론 어림도 없었다. 실제 역사적으로도 그의 예언자적인 통찰은 이미 여러차례 검증이 되었다. 현실주의적인 차원에서 니버는 백번 옳았다.


복음이 사적인 영역으로 꼬리를 감춘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이는 새로운 생명들이 처음 복음을 듣고 이해하는 프레임 또한 침잠시켜 버렸다. 그들에게 사적인 복음은 복음의 전부다. 볼프나 한국의 김근주 교수를 필두로 해서 여전히 소수의 예언자적인 외침을 지속하는 개인들이 세상에는 남은 자처럼 여럿 흩어져 있지만, 철벽처럼 쌓인 교회라는 튼튼한 집단 안으로 침투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그러는 사이 어린 새 생명들에게 지속해서 공급되는 복음은 사적인 영역이 전부다.


레위기 19장이 거룩함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성경 본문이라고 배웠다. 거기에 나오는 거룩함은 가난하고 약하고 소외되고 억눌린 이웃들을 향한 사랑과 긍휼의 표현에 방점을 둔다.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골방에 들어가 24시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거룩함은 배고픈 내 손에 들린 빵 한 조각을 주위의 여러 배고프고 냄새나고 헐벗은 이들과 나누는 것이지, 그 빵을 혼자 먹고 24시간 그들을 위해 혼자 기도할 때를 대비해 남겨두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백성이라면 거룩해야 한다.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거룩함은 겉으로 드러나져야 하며 드러나지게 되어 있다. 여기서 겉으로 드러난다는 의미는 거룩함의 본질이 사적인 영역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함은 공공성을 띤다. 거룩함이 거룩함으로 증명되기 위해서는 공공성을 띠어야만 하는 것이다.


좋은 소식, 바로 복음이다. 여기서 나는 이를 거룩한 소식이라 부르고 싶다. 거룩함의 의미가 일반인들에게 오해될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가상한 생각, 잘 알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런 '배려?' 깊은 생각 저변엔 우리의 거룩함에 대한 오해가 선행한다. 거룩함의 의미가 사적인 영역으로 숨어 버렸고, 교회 다니는 신실하다는, 특정하게 구분된 몇몇 사람들만이 해내는 어떤 신성한 모습으로 둔갑한 이유다.


복음은 거룩한 소식이다. 그래서 좋은 것이다. 거룩해서 좋은 것이지, 좋아서 거룩한 게 아니다. 니버의 개인과 집단의 차이에 대한 통찰은 옳았지만, 그가 말한 비도덕적인 집단이 교회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교회의 시작은 다르기 때문이다. 교회는 예수의 복음 위에 세워졌다. 거룩해서 너무나도 좋은 그 복음 위에 세워진 집단 (공동체)가 바로 교회인 것이다. 거룩한 소식, 복음은 공공성을 띠도록 운명지어져 있었다. 그것이 본질이다. 사적인 복음의 성숙함이 공적인 복음으로 마침내 표현되는 게 아니다. 복음이 공공성의 본질을 회복하여 니버의 통찰에 오류가 있었음을 보란듯이 증명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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