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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성경에 모든 진리가 담겨 있습니까?"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1. 3. 07:08

"성경에 모든 진리가 담겨 있습니까?"

(** 여기서의 '진리'란 자연법칙과 세상원리 등을 포괄한 넓은 의미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는 사람들은 네 부류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Yes 라고 하는 사람, 머뭇거리다가 Yes 하는 사람, 망설이다가 겨우 No 하는 사람, 그리고 단번에 No 라고 대답하는 사람.


당신은 어느 부류인가?


근본주의자라면 첫 번째, 자유주의자라면 네 번째일 것이라는 짐작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머뭇거리는 두 번째와 세 번째에 속하리라 생각한다. 심사숙고하느라 머뭇거리진 않을 것이다. 확신이 서지 않거나 주위의 눈치를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유는 자신의 생각이란 게 애당초 없었거나, 이런 것들은 의심하거나 감히 질문하면 천벌을 받거나 저주를 받을 거라는 미신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해한다. 실은 나도 두 번째였다. 지금은 세 번째를 넘어 네 번째로 넘어왔지만 말이다.


무서울 때 집에 놓인, 검고 두터운 성경책을 가슴팍에 안고 있으면 두려움의 영이 공격하지 못할 거라는 믿음을 순수하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러한 순수함의 배후에는 무지와 맹신, 이교도적인 미신이 자리잡고 있다. 마찬가지다. 이러한 논리는 창조과학이라는 종교와 문자주의적 해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들은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다고는 하지만 그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맹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는 과학도 이성도 하나님의 신성함에 도전하는 가라지일 뿐이다. 합리성이라는 가치는 그들에게는 다른 의미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을, 결국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성경은 모든 진리를 담은, 세상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진 만사형통의 데이터베이스인 것이다.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신앙이 좋다는 사람들을 꽤 여러 분 만나봤다. 그들은 보수적인 한국 교회에서 모델과도 같은 분들이었다. 그들이 읽던 성경책을 본 적이 여러 번 있다. 수많은 밑줄이 그어져 있고 닳고 닳아 너덜너덜해진 오래된 성경책. 그들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몇 살에 죽었는지조차 달달 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창조과학을 신봉하고 있었고 내게 그것을 가르쳤다. 그들에게 있어서의 신앙이란 입 닥치고 아멘 하는 것이었다. 의미는 몰라도 됐다. 하나님의 말씀이니, 언제라도 누가 지나가다 툭 치면 성경구절이 나올 수 있도록 자나깨나 암송하며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늘 성경책을 끼고 사는 것이 그들에겐 최고의 신앙이었다. 성경을 풀어준다는 건 그들에게 있어선 치욕이었다.


또한 대부분의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나 창조과학을 대표하는 사람들, 동성애자들의 인권도 개무시하며 죄인 취급하고 쉽게 판단해 버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책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지 않고는 그렇게 큰 소리를 낼 순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성경책을 많이 읽은 것이 훈장이다. 남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할 수 있는 특권이다. 하지만 난 그것들을 영적교만이라 부른다.


한해가 저문다. 여기 캘리포니아엔 아직 1시간이 남았다. 송구영신 예배를 기다리는데 이런 쓴뿌리가 날 괴롭게 한다. 2018년도는 미신과 기독교를 더욱 잘 분별하는 한해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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