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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예언자?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3. 15. 08:29

예언자?


난 신비주의를 신봉하진 않지만, 그런 일이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하는 방법으로 설명하지 못할 뿐이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신비적인 경험을 하나 나누고자 한다. 내가 실제로 겪었던, 마치 본의 아니게 미래를 보게 되었던 경험. 그것도 두 차례 씩이나. 독립적인 시기와 장소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첫 번째 경험은 2012년 12월, 그러니까 우리 가족이 클리블랜드에서 살기 시작한지 1년 하고도 4개월째 접어들던 시기다. 내가 성공을 위하여 대학원생 때처럼 열심히 노오력하며 실험실에서 생활하고 있을 무렵, 아내는 지인의 도움으로 클리블랜드 클리닉 내과에서 observer로 참여하여 괜찮은 추천서를 받아냈고, 미국 레지던트 지원을 해서 매칭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과가 발표나기 하루 전이었다. 꿈을 꾸었다. 난 보통 꿈을 꾸고 나면 기억을 못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 날 밤 꿈에서 난 똑똑히 글자를 보았다. TICKET FOR THE FINAL ROUND 라고 적힌 팻말이었다.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누군가가 내 머리 속에 지워지지 않도록 새겨놓은듯 너무나도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도 무슨 뜻인지 전혀 감이 안온다고 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매칭 결과가 나왔다. 불합격이었다.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아니, 실망이라기 보단 뭔가가 잘못됐다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때 성공지향적 가치관에 똘똘 뭉쳐 있던 어린 아이와 같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내 중심으로, 내 가족 중심으로, 심지어 하나님의 계획까지도 다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내가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 포닥을 시작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기 때문에, 아내의 의사로서의 미래도 덩달아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 해결이 되리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내겐 그것이 굳센 믿음이었다. 매칭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굳건한 믿음이 그저 나의 강한 희망사항에 불과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포닥 생활을 하면서 뭔가 잘 안 풀린다는 기분이 들 때면, 언제나 그 자리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곳이라는 믿음으로 이겨내오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내의 불합격 소식은 곧 나의 포닥 현장 역시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뜻에 지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며칠을 혼란한 마음과 생각으로 지냈다. 아내에게도 괜히 미안했다. 나의 믿음이 실제로는 믿음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점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TICKET FOR THE FINAL ROUND 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그 팻말은 이미 불합격을 전제로 하고 있었고,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매칭을 시도해 보라는 뜻으로 이해가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불합격의 결과가 바로 FINAL ROUND로 가는 TICKET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은 내년에는 아내가 합격되리라는 의미가 포함하고 있었다. FINAL ROUND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만약 두 번째 매칭 시도에서 아내가 또 불합격이었다면, 터무니 없는 해석으로 치부되었을 것이고, 그 꿈은 그저 개꿈이었던 것이고, 그 팻말도 영원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의미로 남을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아내는 1년 뒤인 2013년 12월, 합격 통지서를 받는다.


두 번째 경험은 공교롭게도 아내가 합격 통지서를 받기 하루 전 날 있었다. 소름 끼치게도 난 또 꿈을 꾸었다. 또 다시 난 글자를 보았다. Metrowest 라고 적힌 팻말이었다. 아내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당시 아내는 한국에 아들과 함께 가 있었다. 아내는 한국에 방문하기 전 이미 인터뷰를 여러 차례 끝냈었다. 거기엔 클리블랜드 클리닉도 있었다. 그리고 Metrowest 라는 이름을 가진 병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린 당연히 클리블랜드 클리닉을 가장 원하고 있었다. 아내가 이미 여러 달 observer로 참여해서 여러 attending들을 잘 알고 있었고, 익숙한 환경이었고, 남편인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인터뷰 결과도 아주 좋았다고 아내가 말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에 합격되어야 내가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온 것이 나의 온전한 믿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될 수 있었고, 그래야만 모든 게 맞아 떨어지고, 덩달아 나도 더욱 연구에 매진하여 모두에게 떳떳할 수 있을 것이었다. 반면, Metrowest는 별 기대도 하지 않던 곳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떨어뜨려놓으리라고는 생각치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결과가 나왔다. 합격 통지서에는 클리블랜드 클리닉이 아닌 Metrowest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아내는 Metrowest 병원 내과 레지던트 프로그램에 매칭이 되었던 것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소름끼치는 경험이다. 우연인지, 하나님의 계획인지 영원히 증명할 순 없겠지만, 난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내 꿈을 통해 우리 가족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셨다고 믿는다. 그리고 미래를 보여 주신 이유는 그 당시 앞으로 일어날 엄청나게 큰 일들을 견뎌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아내는 첫 번째 매칭 결과 (불합격) 이후 그만 두려고도 생각했었다. 1년을 더 준비한다는 것은 당시 우리 경제적 상황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나도 그 땐 보스의 조울증과 실험실의 연구비 문제 때문에 힘들어 하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가치관이바뀔때까지). 만약 그 때 TICKET FOR THE FINAL ROUND라는 꿈을 우리 식대로 해석하지 않고, 우리의 현실만 본 채 두 번째 시도를 그만 두었다면, 지금의 아내는 없을 것이고, 지금의 나도 없을 것이다.


또한 Metrowest라는 꿈은 우리에겐, 우리의 계획을 넘어 인도하고 계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우리가 그렇게나 원했고 올인했던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결국 아내를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전혀 모르는 병원에서 아내를 1순위로 선택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이란 생각보다 많은 경우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다. 처음엔 그것이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여 불안하고 두려워지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잘 견디고 난 후에는 그것이 결국 우리를 향한 더 좋은 계획이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 스스로 믿음이라 여길 때조차도 목이 꼿꼿이 곧은 교만한 인간에 불과한 것이다.


사실 아내가 합격 통지서를 받고 나서 나의 힘든 시기는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지만, 그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고, 성장과 성숙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사실 아내와의 3년간의 헤어짐이 없었다면, 난 절망의 구렁텅이로 제대로 빠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여전히 성공지향적 가치관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모든 게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믿는다. 두 번의 신비한 꿈이 하나님의 사인이었는지 아니면 기똥찬 우연의 일치였는지 밝히는 건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난 그것으로부터 하나님이 섭리를 목격했고 경험할 수 있었다.


지금은 2018년, 아내는 기적처럼 UCLA에서 레지던트 다음 과정인 펠로우로 일할 기회를 얻어 우린 다시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난 그 이후로 그런 신비한 꿈은 꾸지 않는다. 꿀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 생각하지만, 만약 내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난 사실 또 꾸고 싶진 않다. 하지만 또 꾸게 된다면, 예전보단 좀 더 준비된 자세로 순종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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