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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구름기둥과 불기둥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5. 23. 06:38

구름기둥과 불기둥.


가끔은 차라리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여달라고 기도하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이 가야할 때인지 서야할 때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다. 가시적인 사인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그래야 하나님의 인도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러나 조금만 더 가만히 내 중심을 살펴보면, 많은 부분이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을 때가 많다. 사실은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것 같아서 벌써부터 염려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미 내 안의 성령께선 조용한 가운데 가야할 길을 알려주셨음에도, 나의 의지가 그것을 거스르고, 어떻게든 손을 써보면, 내가 선택한 방향이 하나님의 방향이라고 퉁칠 수 있는, 어떤 그럴싸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이런 마음 상태에선, 아무리 99가지의 확연한 가시적 사인이 눈 앞에 주어져도, 1가지의 이중적으로 해석이 가능한 사인에 마음이 쏠린다. 나르시시즘으로 이미 치우쳐진 관점에서 볼 땐, 드디어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나타난 것이다. 우린 곧 그것을 작위적으로 해석하고, 나머지 99가지의 사인조차 재해석하여 100을 만들어낸다. 쾌거다. 마술이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스스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일은 반드시 되어져야만 하고, 길은 반드시 탄탄대로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체가 탄로나기 때문이다.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이렇게 우리 자신에 의해 조작된 하나님의 인도는 실수가 없이 완벽해야만 한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만들어내는 이 신기술은 하나님보다 더 강력해야 하는 것이다.


성령이 조용한 가운데 알려주시는 확신에는 내가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렇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내일 아침에는 구름기둥이 떠나면 어떡할까? 불기둥이 계속 성막 위에 머무르면 어떡할까? 하고 걱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것이 확실한 하나님의 인도임을, 나중에 불신앙했던 이들도 확신했다.


그렇다. 어떤 기로에서 마음에 조바심이 든다면, 나의 의지가 여전히 살아있어, 순종이라기보단 성령과 동등한 위치 내지는 앞선 위치에서 리더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끌어오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확신은 남에게 보여지거나 설득력있게 설명할 수 있기 이전에, 내 안의 평안함을 가져온다. 그것이 인도요 순종이다. 그것이 참확신이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필요없다. 우리에겐 성령이 함께 하셔서 평안의 확신을 주시기 때문이다. 귀기울이고 대화하자. 불신앙으로 끌려가는 자가 아닌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확신의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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