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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전투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3. 30. 05:26

전투.


지금도 종종 내 안에서는 두 가지의 상반된 생각이 격렬한 전투를 벌인다. 하나는, ‘내가 지금 이런 사소한 일에 묶여있어도 되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작은 일에도 성실히 충성을 다해야지!’하는 생각이다. 수만 번 넘게 생각했기에 낯설지 않은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것이 과연 올바른지조차 확신이 서질 않는다. 이기적인 합리화에서 오는 묘한 흥분, 그리고 그와 함께 찾아오는 기분 나쁜 죄책감에 휩싸일 때면, 어쩌면 내게 이 문제는 영원한 숙제로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가만히 이 전투를 내게서 떼어내어, 서툴지만 분석을 해보면, 그리 복잡하지는 않다 (언제나 그렇듯, 답을 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복잡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이익과 보상심리 등과 같은 욕구와 감정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터무니없이 과장해서 단순화시켜버려도 문제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마치 불가지론자처럼 팔짱 낀 채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매일 부딪히는 두 가지 생각을 습관처럼 덮어버리고 모른체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기엔 그 생각에 지배당하는 시간의 비중이 너무도 컸다. 나는 어떻게든 반응해야만 했다. 그리고 죄책감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1. ‘내가 지금 이런 사소한 일에 묶여있어도 되는가?’

먼저 짚어둘 건 이 ‘사소한 일’이 우리가 모두 경험하는 일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개인적이면서도 특정적이다. 내 경우에 있어선, 내가 맡고 있는 ‘직장 현장에서의 일의 중요도’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한 마디로, 이 질문 자체에는 나의 불만과 불평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나 자신을 자책하는 심정과 함께, 내가 나 자신을 평가하는 것과 타인에 의해 평가받는 것에 대한 차이, 그리고 거기서 오는 괴리감에 대한 나의 성숙하지 못한 반응이 묻어 있다.


어쩌면 이 질문은 본인이 예상했던 시기에, 본인이 투자했던 시간과 노력에 합당한 궤도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일 수도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살면서 아주 잠깐 이런 생각에 묶여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평생 이 생각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는 불행하게도 전자보단 후자에 가깝다.


가파르고 미끄러운 피라미드를 오르는 지독한 경쟁체제 한 가운데 놓인 성공지향적 가치관에서 간신히 이탈하여 여전히 하나님나라 가치관으로 전향하고 있는 과정 중에 있지만, 난 아직도 이 두 가지의 상반된 생각이 치르는 전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늘 평가를 하고 평가를 받는 입장에 놓인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은 직장인이 어디 있겠는가),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결코 조절할 수 없는 외부의 압력과, 본인의 내면세계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자기 의, 그리고 감히 도전할 수 없는 견고한 체제로부터 결코 완전히 해방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직장인은 평가하고 평가받는 존재다. 평가는 건전한 반성도 불러오지만, 항상 그렇지만은 않다. 아니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개개인의 세계관과 가치관,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주어진 충동적인 감정으로 인해, 우린 나중에 후회할 일을 그 당시에는 아주 담대하게 해내고야마는, 우리 인간은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인 것이다.


충분히 사소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를 일을 ‘사소한 일’이라고 단정한 것은, 내가 현실에서 타인에게 평가받는 것보다 나 자신을 스스로 더 높이 평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는 식으로 생각했던 것은 일종의 교만함일 것이다. 하는 일이 맘에 들지 않아 불만족스럽고, 진행하고 있는 일의 미래도 그다지 밝을 것 같지 않은 예감이 들기 때문에, 마치 ‘현재의 나’는 무가치한 일에 소중한 능력을 탕진하고 있는 것처럼 여기며, 스스로를 아까워하고 있는 것이다. 오만방자한 인간의 전형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생각의 진행이 항상 이런 식으로 종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두 번째 생각과의 충돌도 생기지 않고, 서로 합치를 이뤄 불평과 불만 없이 일관된 자세로 살아갈 수 있을텐데 말이다. 그러나 ‘나’라는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단순한 일도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꼬인 실타래처럼 만들어버리는 게 내 주특기인 것만 같았다. 내 의는 강하고 견고한 성이었다.


2. ‘작은 일에도 성실히 충성을 다해야지!’

이러한 생각은 겸양의 표현이 될 수도 있었다. 작은 일에 감사하며,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 작은 일에 만족하며 성실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칭송 받을만한 삶의 자세일 것이다. 허나, 중요한 건 이 두 번째 생각은 늘 내게 있어 첫 번째 생각에 대한 반대급부로 치솟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첫 번째 생각의 실패를 염려하여 불안함을 느꼈기 때문에, 마치 교과서라도 부적처럼 마음에 간직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아 하게 된 이차적인 생각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이상적인 말이라도 그것이 이차적인 선택으로 여겨지는 이상, 그것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주인을 손님 자리에 앉혀놓는 것이 다름 아닌 죄다. 내게 있어 이 두 번째 생각은 나의 합리화를 완전범죄로 만들기 위한 빛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았다. 늘 옆에 두고 참고하며 생각을 했지만, 먼지가 쌓일 정도로 난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두었다. 그 결과 난, 작은 일은 내게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는 강한 믿음을 오히려 더 가지게 되었다.


작은 일과 큰 일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어불성설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이 구분 기준에 전체 문제의 핵심이 녹아있을 수도 있다.


‘사소한 일’과 ‘작은 일’이란 어떤 일을 말하는 걸까? 중요도와 가치의 차이로 크고 작음을 구분할 수 있는 걸까? 그럼, 사소하고 작은 일은 모두 가치 없는 일일까? 내가 만약 그런 일을 맡았을 때, 그 일을 내팽개치고 더 가치 있는 일을 달라고 요구하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아니, 나는 그런 사소하고 작은 일을 하면 안되는 존재인가? 누군가가 내게 그런 일을 맡겼다면, 그 사람이 사람 볼 줄 몰라 나의 재능을 인정하지 못해서 실수한 거라고 생각해야만 할까? 그 존재가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은 혹시 손해보고 계신 건 아닐까? 그리고 행여나 그런 일을 맡았을 때, 언젠가는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맡을 거라는 소망(?)을 가지고 마치 빈 시간 떼우듯이 그 일을 해내야 하는 걸까? 사소하고 작은 일은 언제나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큰 일을 하기 위한 전 단계에 지나지 않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도대체 성실과 충성이란 그저 크게 도약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단 말인가? 성실과 충성의 삶의 자세를 가진 사람은 언제나 더 크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이런 식으로 언제나 첫 번째 생각은 두 번째 생각에 의해 견제를 받으면서도, 동시에 예기치 않게 증폭이 되어, 내 마음과 생각은 늘 불만족과 헛된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나름대로는 광야를 거치고 성공지향적 가치관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하지만, 또 한편으론 내가 성공하지 못한 것에 대한 그럴듯한 합리화를 해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도 있다. 여전히 마음 중심으로 원하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같지만, 성공자의 자리에 끝내 가지 못한 내 상황을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이유로 설명해야 했기 때문에, 마치 역경을 거쳤다는 이유로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성숙해진 것처럼 둘러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치관의 전향은 늘 한 방향을 향하진 않는다. 끊임없이 후퇴와 전진을 반복한다. 어제 확신에 섰다가도 오늘 의심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도 있다.


한 가지 긍정적인 것은 이런 답 없는 전투를 통해 고민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데 있다. 어떤 가치관이라도, 어떤 믿음이라도, 질문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죽은 것과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가치관이라기보단 우상일지도 모른다. 스탠리 하우어워스 또한 답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이 신앙 생활이라고 했다. 동의한다. 두 가지 생각이 치르는 전투의 다른 이름은 바로 일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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