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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글쓰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6. 27. 05:53

글쓰기.

 

하소연하고 싶을 땐 글을 쓰자. 멋지고 완성된 글을 쓰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훈련을 하다보면, 누군가에게 주워담지 못할 말을 일방적으로 내뱉아버리고 난 후에 어김없이 밀려오는 수치와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소연 뿐만이 아니다.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땐 시간을 내어 글을 써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가 되는데, 무엇보다 생각만으로 머물 때 가득했던 감정과 함께 공중에 부유하던 거품이 빠져서 유익하다. 보통은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번쩍 떠올라도 거품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즉, 글을 쓰면 실리를 챙길 수가 있다. 내 것을 만들 수가 있다. 겸손해질 수 있다.

 

또한 글쓰기는 부가적인 유익이 있는데, 이것은 글을 쓰다가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발전되는 부분이다. 대화를 하거나 토론을 하면서 말을 할 때, 혹시 생각치도 않았던 더 좋은 생각이 번쩍 떠올랐던 적이 없는가? 마찬가지다. 홀로 생각만 하고 있기보단 서로 대화할 때, 소통할 때 생각은 발전해나가는 법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글쓰기는 나 자신과의 소통이라 할 수 있다. 훌륭하고 독창적인 생각들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들이 책장에 잘 꽂혀진 책이 아닌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전단지 정도의 푸대접을, 그것도 자기자신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받는다면, 결코 그 누구에게도 유익하진 않을 것이다. 박학다식한 지식을 가졌으나 정리가 되지 않은 사람은 어설프게 콧대만 높아져 교만해질 위험도 크다. 다 이해하고 아는 것 같지만, 정작 자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실체가 아무것도 없는, 그런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기 쉽다. 그러니 시간을 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자. 그러기 위해서 글을 쓰자. 어설플 것이다. 원래 그렇다. 그러나 해보자.

 

내게 글쓰기는 일상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과학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조목조목 따져가며 글을 읽고 반박하는 습관은 지겨울만큼 많이 훈련받았다. 그러나 난 과학자로서 글을 쓰고 싶진 않다. 밥벌어 먹는 일이고 나름 전문가라고 할 수도 있지만, 과학이라는 분야는, 아니 내가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 생물학, 그 중에서도 혈액(종양)학 분야는 이 드넓은 세상에서 백만분의 일도 차지하지 않을만큼 미시적인 세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인간이 과학적이고 이성적이라고, 그래야 교양있는 시민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으나, 지금은 그렇지만은 않다. 인간은 그저 정의할 수 없는 신비로 보는 게 가장 맞을 듯 싶다. 어쨌거나 난 직업적인 정신이 그대로 녹아 있는, 즉 논리와 구조를 근간으로 해서 조목조목 따지는 글은, 신비한 존재인 하나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일상을 담아내기엔 너무 작고 뾰족한 연장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일상을 좀 더 상처내지 않고 온전히 담으려면 좀 더 뭉툭하고 좀 더 무디면서 누구라도 잡을 수 있는 쉬운 연장이 적당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 있어선 문학과 철학과 신학이 겸비된 인문학적인 요소가 주가 된 글쓰기이다.

 

수학과 과학에 올인했던 나의 이삼십대는 나의 발판이다. 다시 선택하라고 한다면 같은 선택을 하진 않겠지만, 인생이 신비인 이유는 경험한 모든 것이 문맥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되어질 수 있고 여러가지 다른 조합에 의해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물론 해석학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후회와 미련으로 점철하기보단 그 모두를 아우르며 나만이 낼 수 있는 빛을 내는 것이 더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시대적인 흐름도 그렇고 인문학적인 소양은 나의 인생의 후반전에서 아주 중요한 축이 되어줄 것이다. 인생의 후반전이 글쓰기를 위해 존재하진 않겠지만, 글쓰기는 언제나 함께 할 것이다. 내게 있어 글쓰기는 좀 더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이자 타인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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