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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z축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2. 13. 05:43

z축.

 

내겐, 신학책이 평면이라면 문학책 (그 중에서도 문학고전)은 입체다. 그렇다고 신학책을 폄하하는 건 절대 아니다 (난 그럴만한 자격조차 없다). 신학책은 내게 평면으로 느껴지지만, 입체가 갖지 못하는, 자세한 도면과도 같은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자세한 도면이 그려진 종이를 들고 목적지를 찾기는 쉽지 않다. 도면 보는 방법을 모르거나, 알아도 경험이 없는 사람은 3차원의 현실에서 그것을 실현해내기가 어려운 법이다. 현실에 살지만 신학 안에만 머무는 신학자들의 괴리나, 교회 안에만 머무는 신앙인들의 괴리는 그들이 도면을 그리지 못하거나 읽지 못해서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평면을 입체에 그대로 적용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3차원은 공간이다. 평면이 공간으로 되기 위해서는 축이 하나 더 필요하다. 평면에서는 x와 y 축의 교차점으로 모든 좌표를 표현할 수 있었겠지만, z축이 곁든 공간에서는 x와 y의 교차점이 나타내는 의미는 단 하나의 점이 아닌, z축과 평행하며 무한으로 위아래를 향하는 하나의 직선이다. 물론 직선은 무한한 점들의 집합이다.

 

고전문학은 내게 열린 질문을 던져준다. 모범 답안은 있을 수 있을지언정,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 정답이라고 생각한 순간, 수많은 직선 위의 나머지 점들을 놓쳐버리는 일이 생기게 된다. 이것은 내게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말했던,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답 없이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는 말을 연상시킨다. 늘 정답이 있는 온실 속 신앙에서 머물다가 정답이 없는 모순 속 현실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들의 숙명적인 신앙생활이, 우리의 삶이 어쩌면 신학책에서보단 문학책에서 더욱 잘 그려져 있는 것이다.

 

고전문학을 읽어가며 시대를 초월하는 메시지를 발견하는 것은 정말 흥미진진하다. 21세기에 사는 내가 수세기 전에 쓰인 책들을 읽을 때면 마치 내가 그만큼 더 진보된 인간이라는 생각 속에서 그들의 훌륭한 메시지에 조롱 섞인 박수를 보내곤 했었는데, 그건 철저히 잘못된 착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쩌면 인간은 시대를 지나면서도 편리를 추구하고 효율을 추구했을 뿐 본질적인 면은 다르지 않을 거라고, 어쩌면 오히려 지금이 더욱 형편없이 때묻은 본질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아, 내가 얼마나 교만했던가. 이젠 무릎을 꿇고 경건한 마음으로 고전문학을 대하게 된 것이 내게 필요했던 하나의 성장과 발전일지도 모르겠다.

 

입체가 현실과 더욱 가깝지만, 그렇다고해서 평면으로 그려진 도면이 필요없게 된 것은 절대 아니다. 입체인 현실을 살아가거나 고전문학을 읽으며 시대를 초월하여 현실의 단면을 목도하게 될 때에 자세한 도면은 하나의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으며 하나의 평면일지라도 전체의 공간을 가늠하기에 아주 훌륭한 지침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으며, 고전문학을 읽어나가며, 신학책도 읽어나가는 일개 기독교인이다. 음.. 아주 괜찮아 보이는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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