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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와 이성.
이성이 날카로워질 때가 있다. 누군가나 어딘가로부터 한계와 깊은 실망을 느낀 뒤, 그 세계에서 빠져나올 때도 그렇다. 왜 나왔냐고 묻는 이들에게 대답할 거리를 마련하다보면, 이유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우린 없던 이유도 만들어내면서 쉽게 인과관계에 치중하게 된다. 위험한 순간이다. 따지고보면 순수한 이성적 판단만으로 그곳에서 나온 것도 아닌데, 어찌보면 이성보단 감정적인 부분이 더 컸던 것일지도 모르는데,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마치 이성에 의한 판단 결과인 것처럼 행세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모습, 혹시 익숙하지 않은가?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날카로운 이성을 넘어선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당당함, 모르면 배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자신감. 이런 것들이 오히려 체면치레하느라 떠는 거짓겸손과 아는 척하는 위선보다 더 가치 있진 않을까.
겸손하다고 하는 이에게도 교만의 자취가 묻어있고, 교만하다고 소문난 사람에게도 겸손의 흔적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겸손하다거나 교만하다는 사람들의 말은 주관적 해석일 뿐더러, 모든 면을 관찰한 뒤 내린 객관적 평가가 아님을 기억할 때, 타인을 바라보는 눈은 언제나 개방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묻고 따지는 지적인 행위가 인간에게 있어 중요하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 한계 또한 우린 언제나 직시하고 있어야 한다. 이성이 작동하는 의식세계는 인간이라는 존재자의 현존재일 뿐이며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감정과 이성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 또한 위험한 이유는 감정이라는 게 무의식과 잠재의식 세계로부터 기인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성이 날카로워질 땐 조심하자. 자기 안에 갇힐 순간일 수도 있으며 교만의 덫에 걸려 자빠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중세적인 세계관은 물론 근대적인 세계관에 제한되지도 않고, 포스트모던 시대의 세계관으로도 모두 담을 수 없는 신비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헌팅턴 라이브러리에서 쌔벼옴.
Lady Caroline Spencer, later Viscountess Clifden, and her sister, Lady Elizabeth Spencer by George Romney, 1786-1792.
The Huntington Library, Art Collections, and Botanical Gard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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