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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하나님나라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7. 23. 07:46

하나님나라.

약자의 존재는 강자에 의해 도드라지는 법입니다. 처음엔 누가 강자인지 약자인지 나누기가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번 나누고 나면, 그 간편한 구조를 이용해 먹으면서 그 구조를 더욱 정형화시키고 고착시키며 더더욱 탑다운의 방식, 즉 피라미드의 체제가 견고해집니다. 누군가를 밟고 자기만 집중조명 받길 바라는 인간의 사적인 마음이 공적인 체제로 발현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르게 되지요. 게다가, 동시에 눈도 멀게 됩니다. 기준은 증발하고 실권을 잡은 강자들의 생각과 욕망이 기준이 되지요.

그러므로 이 시대의 회심이란 사적인 자기애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시적으로 드러난 공적 체제로 스며들어 “정상”화되어 있는지를 볼 수 있도록 눈을 열어주는 것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배우는 것과 행하는 것의 괴리는 좁아질 리가 없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 되어 혼돈의 왕국이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아, 벌써 우린 그 지경에 와버렸는지도 모르겠군요.

부의 축적, 기득권 유지, 그리고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옹호하고 지켜주기, 그러면서 정치적으로 동맹관계가 되어 더불어 피라미드 위에 올라 앉기. 우리들의 일상이 이런 것들로 표현된다면, 그러면서도 예수를 믿는다고, 혹은 예수를 믿으라고 한다면, 과연 거기에는 하나님나라가 존재할지 의문입니다.

전복적인 예수의 가르침이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놀라움과 함께 가슴을 치며 회개를 불러일으키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열린 것 같은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다시 그 말씀들을 묵상하면서 다른 생각도 듭니다. 새롭게 다가오면서 한편으론 무섭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왜일까요. 나도 결국엔 팔짱 끼고 배불리 쳐먹고 기득권을 놓지 않고 피라미드 위에 앉으려고 애쓰면서도, 그저 필요없거나 쓰다 남은 돈 몇 푼을 가난한 이들에게 던져주는 정도의 행위만을 해놓고 사랑과 자선을 베풀었다고 여기는 파렴치한 인간이 바로 나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와 함께 하지 않으면서, 희생자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서, 인터넷으로 돈 몇 푼 이체하는 행위가 과연 정의와 공의를 실현해내는 삶일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요.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대에 그것들은 어떻게 발현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약자 가운데 계시고 약자와 자신을 동일시하신 예수의 가르침은 결코 진공 속의 메아리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렇게 고민을 토로해놓고도 겁이 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께 왔다가 가진 것을 다 나누라는 말을 듣고 쓸쓸히 되돌아가던 청년처럼 말이지요. 과연 나는 하나님나라를 원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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