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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을 넘어 그리스도인으로 (이성과 믿음의 조화).

모든 것에 초연하면서도, 동시에 어린아이처럼 순수할 수 있을까.

욕심과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났다고 믿는 자가 어느 날 문득 나타난 요정 지니 앞에서 한 가지 소원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을까. 지혜로운 자의 모습은 과연 인생을 다 산 사람처럼 늙어빠진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허허허, 그것도 좋고 이것도 좋겠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그저 난 자네가 행복했으면 좋겠구먼”하면서 너털웃음으로 수염이나 만지작거리는 것일까. 희노애락을 상실한 상태가 과연 지혜자의 모습일까.

그러한 지혜자에게는 기적이라는 게 존재할지도 의문이다. 신비라는 걸 인정할까. 신비와 기적의 존재를 철부지 어린아이들의 제멋대로의 상상력 정도로 치부하고 코웃음치진 않을까.

때가 묻을 만큼 묻고 너덜너덜해져서 더러운 게 무엇인지 더 이상 분별할 수 없는 상태.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지혜자의 모습은 아닐까. 철저히 인간적인 관점. 지혜자의 모습이란 흔히들 말하는 그저 ‘어른스러움’의 절정을 말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철저한 ‘그리스인’이 되는 게 과연 지혜자의 모습이라고 우린 은연중에 여기고 있진 않을까. 그렇다면 인생의 무의미성과 덧없음을 깨닫고 외치다가 자살할 생각을 방금 극복해낸 자와 다를 게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의 인격과 성품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막연한 관념에만 머물 수 있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질문. 혹시 그 방향이 위에 내가 묘사한, 그저 완벽한 ‘그리스인’을 향해 있진 않은지 숙고해본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그리스인과는 달라야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예수의 시대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도 당시의 인정받던 지혜자였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알다시피 예수는 그들을 지혜자가 아닌 위선자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달라스 윌라드는 이 부분을 디카이오수네로 설명을 했다. 내면과 외면의 위상과 관계에 대해서. 내면이 먼저이고 예수의 초점도 그랬다는 그의 설명에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서 인격과 성품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란 과연 어떤 모습의 사람을 지칭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을 ‘예수와 같은 사람’이라고 쉽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진 않을 것이다. 가식과 위선의 폐해에 대한 강조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효하지만, 내면을 얘기할 때 성숙과 성장 쪽으로만 생각한다면 그 방향은 결국 그리스인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모든 것에 초연한 상태를 암묵적인 목적지로 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추가적으로 순수함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기쁨과 슬픔을 일부러 감추는 것, 어떤 의견에 대해서도 아무렇게나 되어도 매한가지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 어찌 보면 이런 성숙함과 초연함은 순수함과 정반대의 지점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그리스인과 그리스도인의 차이는 다양하고 다채롭겠지만, 그 중 하나는 순수함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우린 점점 더 어른스러워진단 명목으로 잃지 않아야 할 순수함을 잃고 있진 않을까.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깃든 하나님의 창조를 목도하며 아무런 경이감도 느끼지 못하는, 오히려 모든 것을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원리들로 설명하려 드는 (그런 공식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도 아니고 설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자세가 성숙한 모습이라도 되는마냥 여기고 있진 않을까.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한낱 바람이나 믿음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어떤가. 당신에게 소원 하나 말해보라고 하는 기회가 혹시라도 찾아온다면? 단숨에 평소에 원하던 것을 말할 수 있겠는가? 지혜자가 된 나머지 아무 것도 원하는 게 없다고 말할텐가? 아니면 순수한 어린아이가 되어 소원을 말해볼텐가?

이성과 믿음은 서로 반대되는 면이 커서 그 어느 하나만을 택하기가 쉽지만, 이 둘을 조화롭게 하여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스도인의 성숙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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