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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은혜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10. 2. 02:50

은혜.

저에게는 자랑하고픈 두 분의 고마운 신학 선생님이 있습니다. 저에게 신학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들이시죠. 해외에서는 2015-2017년에 ‘하나님의 선교’, ‘하나님백성의 선교’, ‘구약의 빛 아래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라는 책으로 만나게 되었던 크리스토퍼 라이트, 국내에서는 2016-2018년에 ‘나를 넘어서는 성경 읽기’, ‘복음의 공공성’, ‘성경을 보는 눈’, ‘구약으로 읽는 부활신앙’, ‘특강 이사야’, ‘구약의 숲’, ‘특강 예레미야’로 만났던 김근주 (Keunjoo Kim) 교수입니다. 지금도 온라인에서 접근 가능한 두 분의 강의와 설교는 시간 나는대로 들으려고 노력하며, 저의 신앙생활을 점검하는 데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이 두 분의 책과 강의는 현실세계를 잊고 마약 같은 피안의 위로 따위나 공급받는 나약한 신앙에서 벗어나, 거품을 빼고 성경과 현실세계를 사실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교만하고 위선적인 관념에 머물던 신앙이 성육신하신 하나님처럼 저의 일상으로 내려와 현실을 종말론적 신앙관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분리뿐 아니라 칭의와 성화의 분리까지도 철폐할 수 있도록 도와주습니다.

20년이 넘도록 저의 신앙은 개인구원론에 천착하여, 오로지 관심 있었던 건 개인의 성공과 안녕, 가족의 건강과도 같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만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 온 이후 인생의 낮은점을 지나면서 그런 것들이 모두 저를 빗겨가고 상관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외로웠습니다. 아무런 위로도 소망도 되지 않았습니다. 재미있게도 오히려 그 당시 유일하게 희망이 되었던 말은 “다 잃어도 괜찮다”라는, 꽤 세속적이고 진부한 말이었답니다. 교회 관련 분들의 공중에 붕 뜬 표면적인 위로에서 저는 그들의 여유와 사치의 향을 맡을 수 있었고, 동물원의 동물이 된 것마냥 저는 한없이 작아졌습니다.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성급한 위로나 교훈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그때 처음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성공지향적이고 사적인 신앙은 소위 잘 나갈 때나 별 탈이 없을 때 아무 문제 없이 작동하는 습성을 가집니다. 인간이 각자의 삶에서 한계를 만나는 시기가 중요한 이유는, 그때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신앙이 본색을 드러내며 그것의 진위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위기가 기회가 된다는 뻔한 말은 그 위기의 날카로움에 충분히 찔려 아파본 사람의 입에서 나올 때만이 진정성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그분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들 중 하나였고, 그들이 수호하려는, 알고보면 자신만의 신념이자 욕망의 발현에 불과한, 진리가 그저 하나의 다양한 해석 중 하나일 수도 있다는 사실도 이젠 알게 되었으니까요. 저도 얼마나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컨텍스트 없는 텍스트만의 힘을 빌어 (그것도 자본주의적인 성경해석에 불과했던) 폭력을 일삼았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리곤 합니다. 폭력은 분노에서만 비롯되는 게 아닌 것이지요.

어둠 가운데 빛이 임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해야할까요. 그렇게 가장 힘들어 하며 저의 바탕을 이루던 기독교 신앙에 회의와 의심을 가지던 시절, 저는 이 두 분의 책을 만나게 되면서 잃어버렸던, 아니 버리고 싶어했던 기독교 신앙을 재점검하며 다시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가려졌던 하나님을, 아니 하나님 옷자락 끄트머리를 본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요. 전율과 회개와 눈물이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그제서야 제가 보였습니다. 잘못 시작된 건물은 리모델링한다고 바로 잡을 수 없습니다. 철저하게 무너지고 다시 시작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두 분 덕분에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나라가 무엇인지, 예수의 복음이 무엇인지, 구약의 의미가 무엇인지 좀 더 깊고 넓게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제가 알고 있던 어줍짢은 신학적 지식은 예수 믿고 구원 받아 천국가는 바코드 신앙에 부역하는 정도에 그쳤으며, 이는 곧 예수와 하나님나라가 아닌 그 이면에 숨겨진 자기애와 성공과 자본에 대한 욕망에 다름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경악하기도 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제게 있어 두 번째 회심과도 같은 시기를 거칠 때 길잡이가 되어주었던 고마운 선생님들이지요.

김근주 교수를 응원합니다. 제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그분에 대한 고마움을 이렇게 진심으로 표현하는 것밖엔 없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저 하나로만 가득 찼던 저의 마음과 눈에는 타자를 조금이나마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생겨났고, 아브라함부터 시작한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하나님백성의 정체성과 사명을 붙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교만하고 경솔하지만, 조금은 더 예수를 닮아가는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부디 힘 내십시오.

김영웅 드림.

참고자료.
김근주 읽기
복음의 공공성: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1809480859096688,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1548402798537830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174546220216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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