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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읽고 쓰는 이유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7. 23. 07:48

읽고 쓰는 이유.

“왜 그리 독하게 책을 읽으세요? 일도 하시면서 어떻게 그렇게 책 읽고 글을 쓰실 수 있으세요? 대단하세요.”

페북에 독후감상문을 올리기 시작하고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입니다. 재미난 것은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의 말은 감사와 칭찬과 격려로, 누군가의 말은 부러움이나 시기심으로, 또 누군가의 말은 조소 섞인 비아냥거림으로 다가옵니다. 물론 주관적인 제 느낌일 뿐이겠지만, 똑같은 말이 이렇게 다르게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결국 관계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합니다. 한 두 번 제 글을 읽고 하시는 말씀들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평소에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 지속적으로 비쳐진 제 모습을 제 글과 동일시하기 때문일 거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저와는 상관없이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의 개인적이고도 내면적인 무언가 때문이겠지요. 그런 분들이라면 제 글만이 아닌 다른 분들의 글에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실 것입니다.

어쨌거나 답을 드리자면,

저는 독하게 책을 읽는다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주일에 고작 한 권 정도 읽는 걸 독하다고 표현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라 봅니다. 읽는 책의 3/4 이상을 감상문으로 남기기 때문에 제가 책 읽는다는 사실을 생색내는 것처럼 느껴졌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감상문이 올라오는 횟수와 간격을 한 번만이라도 확인해 보셨다면 제가 그리 다독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금새 알아챌 수 있으실 것입니다. 사실 저도 3-4년 전까지만 해도 일년에 책을 한 두 권 읽었던 놈입니다. 뭐가 그리 바빴는지 지금으로선 도통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땐 그 나름대로의 삶이 있었다고 믿으며 자위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일주일에 한 권의 책을 읽어내는 습관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유지하고 싶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예전처럼 저만 생각하는 독단독선적인 인간으로 회귀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이기적이며 겸손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그렇게 쫓기면서 살고 싶진 않거든요. 저에게 독서는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하나의 수단이 됩니다.

저는 생물학자입니다. 오늘도 마우스의 뼈 안을 들여다보는 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제가 읽어나가는 책과 써나가는 글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세상이지요. 그렇습니다. 페북에 거의 비쳐지지 않는, 저의 90% 이상의 실제 모습은 영락없는 일개 과학자일 뿐입니다. 한창 위만 보며 달릴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도 뭔가를 읽었었죠. 그러나 그때의 읽을거리들은 모두 독주하는 저만을 위한, 저를 위로 올려줄 것 같은 피라미드의 땔감들이었습니다. 여가나 묵상, 침묵과 고독, 혹은 타인들에 대한 공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어느날 낮은 곳에 이르러 저의 한계와 그 상황의 이면을 맛보고나서는 마음을 바꿔먹었습니다.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이었지요. 나아간만큼 남는다는 말은 자기에게만 집중될 때엔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탈진하고 무력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버린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인생의 낮은 곳에서 건져올린 하나의 지혜가 아니었을까 하며 스스로는 웃으며 생각하곤 한답니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여전히 실험과 논문들로 머리가 복잡합니다. 대학교 때부터 들였던 습관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네요. 예전 같으면 그 생각의 편린들을 따라 그리로 계속 팠겠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습니다. 오히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관심을 일부러 다른 곳으로 옮깁니다. 그렇습니다. 빨리 가는 효율이 아닌, 저에게 주어진 삶을 놓치지 않고 살아내고 싶은 절박함과 타인과 교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을 곱씹으며, 그 가운데서 살아있는 이유를 발견하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바쁜 가운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요? 저에게는 의도된 여유와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랄까요? 효율을 추구하려는 본능으로 각인된 저 자신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절박함이랄까요?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페친 수를 200명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만 봐도 금방 알 수 있겠지요. 저는 그저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서로 농담 따먹는 것도 좋지만, 서로의 진실된 생각과 마음을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그저 책을 요약하거나 기계적으로 뿜어내는, 세상에 넘쳐나는 서평이 아닌, 저의 생각과 마음이 듬뿍 담긴 개인적인 감상문을 쓰는 것이지요. 책을 선전함도 아니고, 이름을 알리고 싶어서도 아닙니다. 책을 넘어 글쓴이와 읽는 이의 교류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저는 감상문을 쓰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대단하다는 말에 제가 기분이 좋을 거라고 여기신다면 잘못 짚으셨습니다. 저는 그런 말을 들으면 되려 제 의도가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제 글을 꾸준히 읽어주시고 평도 해주시고 소감을 나눠주시는 극소수의 몇몇 분들은 그런 말씀을 전혀 하시지 않는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대단하다는 말씀은 원래의 뜻을 전달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비아냥에 가깝게 들리기도 하는 이유이지요.

만약 제 글을 읽으신다면 (좋아요로 반응해주시는 많은 분들도 고맙긴 하지만, 끝까지 읽지 않으신다는 것 정도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사진 같은 걸 올릴 때면 반응해주시다가 저의 진지한 글이 포스팅되면 반응을 안하시는 분. 재밌지요. 인간이란... 사실 그런 분들을 페삭하느라 200명을 유지하고 있답니다 ㅎㅎㅎ) 그저 느낀 바를 스스럼없이 나눠주시면 됩니다. 대단하다는 말은 필요없습니다. 칭찬받기 위해 시작한 일도 아니니까요.

이 정도면 답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칭찬을 가장한 비아냥거림이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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