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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라 외롭지 않을 순례자의 여정.
유진 피터슨 저, '한 길 가는 순례자'를 읽고.
'지금, 여기'를 누리는 종말론적 신앙은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순례자들의 삶의 자세다. 결코 일회성 쾌락을 추구하는 관광객들의 그것이 아니다. 비록 종말론적 신앙이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초점을 맞추고는 있지만, 그 의미는, 과거로부터의 맥락이나 미래를 향한 소망도 없이 그저 오늘을 말초적으로 즐기자는 한탕주의와 다르다. 그리스도인의 오늘은 어제의 이야기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왕이신 예수가 다시 이 땅에 오시어 완전한 하나님나라가 도래할 내일을 소망하는 간절한 현재다. 제자 된 그리스도인의 순례 여정에는 관광객들에게는 없는 목적지가 있다. 평생의 여정이 한 곳, 즉 하나님을 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오직 그리스도이신 예수다.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 이것은 유진 피터슨이 이 책을 쓴 동기가 된 니체의 '선악을 넘어서'에서 인용한 문구다. 마치 관광객의 구미에 맞는 상품처럼 짜맞춰지고 있는 이 시대 기독교의 실태와, 세상과 다를 바 없는 그 종교 안에서 목적도 순종도 없이 즉흥적인 입맛만을 만족시키며 살아가는 현대판 그리스도인을 비판하면서, 제자와 순례자의 정체성을 띠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바람직한 자세를 우리에게 상기시켜주기 위해서다. 첫 장에서부터 그는 예수의 제자도를 강조하며 따끔하게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관광객의 자세로는 성숙할 수 없다."
이 책은 시편 120 - 134편, 흔히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라고 알려진 15편의 시편 본문을 골자로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예수를 따른다는 것이 깊은 기도 생활 없이는 결코 길고 긴 순종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것과, 소개하는 15편의 시편 본문이 언제나 그리스도인들이 장기간에 걸쳐 그들의 모든 삶을 기도로 옮기고 또 그들이 기도한 그대로 살기를 배울 수 있는 주요 방편이 되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또한, 더 이상 관광객이 아닌 순례자로 살기로 다짐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안내서와 지도로서의 실용성뿐 아니라, 여행 노래로서의 흥겨움까지도 겸비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우리들이 이 15편의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로 다시 기도하길 권고한다.
제자도를 다시 짚어주면서 시작한 이 책은 15편의 시편 본문에 각각 의미를 부여하며 한 편 한 편 묵상해 나간다. 15편에 해당되는 15개의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이들은 각 장의 제목이다). 회개, 섭리, 예배, 섬김, 도움, 안전, 기쁨, 일, 행복, 인내, 소망, 겸손, 순종, 공동체, 송축. 이 단어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모두 한 길 가는 순례자의 여정에 있어 필수 코스 같은 인상을 준다. 회개로 시작하여 송축으로 끝나는 여정, 곧 예수의 제자 된 그리스도인의 인생이 아닐까. 비록 이 15편은 히브리 순례자들이 성지인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 중에 순서대로 불렀던 노래로 보이지만,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는 충분히 이 본문을 그리스도인의 인생 전체로 확장시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하나님을 향한 여정이기 때문이다.
15개의 키워드 중에서 내게 가장 와 닿아 새롭게 깨달아진 단어는 '공동체'였다. 사적인 복음의 한계와 그 폐단을 절실히 알게 된 이후 복음의 공공성을 향한 나의 생각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었다. 이는 곧 하나님나라의 두 기둥인 정의와 공의에 대한 이해와, 그것들을 실현하기 위해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를 윤리적인 측면에서 따져보게끔 만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다분히 공동체적이지 못했다. 기독교에서 공동체가 가지는 의미를 모르지도 않았음에도, 나의 질문은 늘 개인의 윤리적 삶과 이웃에 대한 개인적 차원의 사랑의 실천 등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러한 질문을 던지는 나는 언제나 홀로 고립되어 외로워하며 고뇌하고 있었다. 아마도 기존 장로교가 주축이 된 한인 교회 시스템 안에서 겪은 갈등과 상처가 한 몫을 톡톡히 담당했을 것이다. 공동체의 중요성을 알지만, 공동체와는 유리된 듯한, 이 모순적인 나의 삶이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윤곽을 보다 명징하게 드러냈다.
저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은 결코 사적이고 비밀스런 구원을 베푸시지 않는다", "우리는 어떻게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또한, "성경은 고립된 그리스도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나 공동체의 일원이다. 창조는 공동체가 생기고 나서야 완성되었다. 하나님은 결코 고립된 개인들과 함께 일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항상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과 일하신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존재로 볼 때, 우리가 주고받는 관계는 훨씬 깊어질 것이다."
왜 난 하나님을 향한 여정, 곧 순례자의 길은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와 소망을 가지고 홀로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고 여겼던 것일까. 왜 난 나도 모르게 고독한 철학자나 구도자의 모습으로 철저하게 홀로 구원에 이르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여겨왔던 것일까. 분명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를 봐도, 신약의 초대교회를 들여다 봐도, 모두 혼자가 아닌 공동체가 존재했고, 하나님은 늘 그 공동체와 관계를 맺으셨는데도 말이다.
물론 일대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본인의 삶에서 체험하는 것과, 그 체험과 어제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약속의 이야기에 담겨 있는 수많은 사례들과의 공통점을 발견해내는 것, 그리고 본인의 삶에서 세상의 삶과 예수의 삶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믿음과 결단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이 여기에서 멈추면 안 된다. 공동체의 뒷받침이 있다는 사실까지도 언제나 함께 떠올려야 한다. 혼자서는 넘어질 수 있다. 낙망할 수 있다. 포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함께라면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소망이 증폭된다. 먼 길을 갈 때 혼자 운전하는 것과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운전하는 것의 차이와도 같다. 약한 개인이 공동체 안에 있을 때 안전하며 견고해질 수 있다. 서로를 향한 의지, 이는 곧 신뢰에서 오며, 그 신뢰는 곧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하나님사랑이 이웃사랑으로 전환되는 경험이다. 또한 순례의 여정을 지속할 때 닥쳐올 어려움을 서로를 의지하며 이겨낼 때 우리는 공동체의 힘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도움을 인정하며 감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웃사랑이 하나님사랑과 다르지 않은 이유다.
한 길 가는 순례자. 처음에는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독한 길처럼 여겨져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공동체가 함께 가는 길이라 생각을 확장하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한 길 가는 순례자는 단수이자 복수다. 개인에게 주어지는 메시지도 있고 공동체에게 주어지는 메시지도 있는 것이다. 후자를 좀 더 생각하게 되니 참 힘이 된다. 유진 피터슨이 바랐던 것처럼 내 삶 속에서도 복음이 살아 있기를 소원한다. 깨어있는 순례자, 그리고 그 순례자들의 공동체. 구약의 히브리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먼 길을 떠나는 그 길을 상상해본다. 거기에는 개인이자 공동체인 그리스도인이 있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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