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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과 허무, 그리고 인생의 의미

존 스타인벡 저, ‘생쥐와 인간’을 읽고

이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 나는 첫 페이지로 돌아가야 했다. 거기에 적힌, 이 책을 여는 제사 (題詞)를 다시 읽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두 문장을 천천히 다시 읽고 나서야 나는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제사는 스코틀랜드 시인 로버트 번스의 ‘생쥐에게 (To a Mouse)’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저자가 선정한, 다소 엉뚱한 느낌을 주는 이 작품 제목의 출처를 알 수도 있는 시이기도 하다. 다음과 같다.

“하지만 생쥐야, 앞날을 예측해 봐야 소용없는 건 너만이 아니란다. 생쥐와 인간이 아무리 계획을 잘 짜도 일이 제멋대로 어그러져, 고대했던 기쁨은 고사하고 슬픔과 고통만 맛보는 일이 허다하잖니!” 

이 짧은 시구를 읽고 나서 즉각적으로 들었던 느낌은 허망함 내지는 허무함이었다. 모든 계획이 무의미한 것 같고, 인생 전체가 운명이란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서 굴러가는 것 같아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무력함마저 느껴졌다. 그래서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길게 내쉴 수밖에 없었다. 작품 전체에도 이러한 분위기가 진하게 녹아있다. 비극일 수밖에 없는 약간의 희극적인 요소까지 포함하면서.

이 작품은 우화다. 우화치곤 너무나 현실적이라서 이 작품이 어떤 교훈을 던져주기 위해 창조된 허구라고 하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우화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실제 있었던 사건에 허구를 가미해 쓴 팩션 (팩트 + 픽션)이 아니라 저자 존 스타인벡이 당대 시대상을 풍자하기 위한 목적으로 쓴 소설이기 때문이다. 

1937년에 출간되었으니 이 책은 미국의 경제 대공황 시기 중에 쓰였고 출간된 것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격의 두 떠돌이 일꾼, 조지와 레니는 그 당시 경제적인 상황은 물론 그 시대에 진하게 배어있는 허무와 절망 등의 암담한 분위기를 삶 자체로 보여주는 대리자 역할을 한다. 

생쥐와 달리 인간은 미래를 알길 원하고 소망을 갖길 원한다. 인간은 존재를 묻는 유일한 존재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의 본성이 지독한 시대적 궁핍함 때문에 장기간 충족되지 못한 채 겨우 하루 먹고살 수 있는  하루살이와 같은 인생으로 치닫게 된다면 과연 그 사람은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지게 될까. 집을 잃은 생쥐와 같은 꼴로 바뀌지 않을까. 생쥐 입장에선 자신의 본성을 충족시키는 인생이겠지만, 사람에겐 삶의 본질적인 의미를 앗아가는 인생이지 않을까. 여유롭진 않지만 그래도 내일을 계획할 수 있고 앞날을 어느 정도 전망할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이 내게 허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불평 거리를 안고 살아가는 나 자신이 오늘따라 많이 부끄럽다.

#비룡소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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