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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장편소설에서 스토리텔링의 중요성

가난한선비/과학자 2022. 12. 21. 23:23

장편소설에서 스토리텔링의 중요성

나쓰메 소세키를 나는 그의 작품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그러므로 두 번째 작품이 된다. 약 500 페이지 분량의 장편소설인데, 100 페이지 채 읽지 않았을 때 이미 작품이 다 파악되어 버렸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풍자와 해학이 곁들여진 독특하고 참신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가의 필력 또한 출중하여 읽으면서 여러 번 ’참 글 맛깔나게 쓰네‘ 하며 나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다. 이상하다. 지금 전체의 70 퍼센트 정도 읽었는데, 진도 빼기가 쉽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갈수록 느려지는 기분이다. 집중이 안 되고 자꾸만 딴 생각이 든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하고 책을 덮고 잠시 생각하다가 의외의 결론에 다다랐다. 집중 못하는 내 문제라기보다는 나쓰메 소세키의 문체, 즉 앞에서 언급한 이 작품 고유의 시선과 메시지가 오히려 문제였던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책의 중반 정도 읽었을 때 이미 보여줄 건 다 보여줬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고 하면 답이 되려나... 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렌즈를 통해 인간을 상대화하여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필법. 탁월한 필력과 유머가 곁들여진 촌철살인의 통찰력에 나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만으로 이야기를 길게 끌고 가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미 파악되어버린 작품에서 더 읽을 가치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아직 다 읽지 못해서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작품이 장편이 아닌 중편이나 단편으로 쓰였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250 페이지나 300 페이지 정도가 적당하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500 페이지는 좀 너무했다 싶다.

덕분에 한 가지 더 배운다. 장편소설이라면 이야기를 끌고가는 추진력이 필수라는 것. 명징한 갈등과 위기, 그리고 그것의 해소 없이는 아무리 훌륭한 필력과 문체와 독특한 관점이라 할지라도 쉬이 지루해질 수 있다는 것. 아,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하나, 일단은 잠시 내려놓고 나중에 재방문하는 편이 어떨까, 하고 나는 지금도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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