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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눈에 비친 인간과 인간세계
나쓰메 소세키 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고
“나는 고양이다.”로 시작하는 이 작품의 화자는 놀랍게도 고양이다. 상식적으로는 현실세계 고양이가 말을 할 리 없다. 게다가 장르가 소설이니만큼 이 고양이는 작가의 생각과 말을 전달하는 의인화된 매개체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도발적인 첫 문장 (알다시피 제목도 같다)으로 운을 떼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과연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우물 안에선 우물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객관성이 결여된 판단은 신뢰도가 떨어진다. 이와 같은 시선으로 이 작품을 해석하면 어떨까. 우물을 인간세계로 대치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인간세계 안에선 인간세계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라고. 이를 조금 더 풀자면 이렇게 쓸 수 있다. “인간의 눈으로는 인간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말과 글을 사용하고, 생각하고 의심하고 묻고 따지는 지구상 유일한 존재가 인간밖에 없으므로 이 말은 결국 실행 불가능한 말로 남게 된다. 그렇다면, 인간은 누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에겐 이성도 주어졌지만 상상력도 주어졌다. 상상력을 이용하면 불가능한 많은 것들이 가능해진다. 인간의 뇌는 잘 속고, 또 마음만 먹으면 의지적으로 속일 수도 있기 때문에 상상력을 잘만 이용하면 우린 언제든지 가능성의 무한한 세계로 나아가서 탐험하고 또 여행할 수 있다 (이는 문학, 특히 소설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목적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의 화자가 고양이라는 점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나쓰메 소세키는 인간이 아닌 존재의 눈과 귀와 입으로 인간과 인간세계를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말없이 녹화된 일상 속 자기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게 될 때 느껴지는 상이함 혹은 야릇한 거리감의 다른 이름은 객관성일 것이다. 이 작품엔 고양이의 눈에 담긴 인간의 모습들이 담겨 있다. 화자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비록 상상력의 산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인간은 종종 나 자신으로 환원, 수렴되기도 하기 때문에 우린 이 작품을 읽으며 스스로를 관찰, 성찰할 수 있는 의외의 기회까지 얻게 된다. 나는 바로 이 점이 나쓰메 소세키가 이 작품을 통해 의도한 바가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이 가진 또 한 가지 매력은 풍자와 해학이다. 화자인 고양이는 그냥 야옹야옹 대는 단순한 고양이가 아니다. 인간처럼, 아니 평범한 인간을 넘어선 비범한 존재로 그려진다. 사실 이 부분이 작품 속에서 사뭇 진지하게 과장되곤 하는데, 이는 독자의 폭소를 자아내는 역할을 충실히 담당한다. 나쓰메 소세키의 천재적인 필력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이 고양이는 등장인물들에겐 그저 여느 고양이로 보이지만, 실은 생각하고 의심할 줄 알뿐 아니라 해박한 지식까지 탑재하고 있다. 인간의 역사는 물론 고양이의 역사까지 꿰찬 듯한, 웃지 못할 부분도 군데군데 등장한다. 특히 이 고양이가 기거하는 집주인 진노 구샤미 선생을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들은 고양이 화자보다 못한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는 듯해 보인다. 몸은 고양이이지만 정신만은 인간계를 넘어 신계에 속한다 할 수 있을 만큼 이 고양이 화자는 해박하고 노련한 베테랑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풍자와 해학은 그것이 겨냥하는 것들을 충분히 이해, 통찰한 이후에나 가능하다. 이해 없는 풍자는 빈정거림일 뿐이고, 통찰 없는 해학은 웃기지도 않은 코미디에 불과하다. 이름도 없는 이 고양이 화자는 마치 산속의 도인처럼 비치기도 하고, 모든 학문에 두루 능통한 이후 일선에서 물러난 은퇴 학자로 비치기도 하며, 인간의 숨겨진 욕망, 본능, 심리를 알아채고 모든 인간사를 경험한 듯한 신적 존재로 비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자기가 고양이라는 한계를 인지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선 마치 독자인 우리 인간들이 그동안 몰랐던 고양이 세계를 처음으로 알게 되는 듯한 묘한 인상마저 받게 된다. 묘하다는 말이 이상하게도 잘 어울리는 동물 중 하나가 고양이일 텐데, 이 작품은 그 말에 신비감을 더하는 효과도 내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인간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존재이지만, 이 고양이 화자는 인간의 이성과 경험 모두를 거뜬히 넘어서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단, 열린책들 양장본으로 500 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데다, 기승전결과 같은 소설의 기본적인 형식이 존재하지 않아 처음부터 끝까지 긴 호흡으로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이 작품을 읽고 싶다면 당연히 처음부터 읽으라고 권하겠지만, 중간중간에 집중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과감하게 건너뛰어도 작품 전체를 이해하는 데엔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은 나도 한 달이 넘도록 읽다 말다를 반복하다가 비로소 어젯밤에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작품만이 가진 독특하고 고유한 시선과 나쓰메 소세키의 탁월한 필력을 맛보고 싶다면, 그리고 인간으로서 인간을 한 번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성찰을 경험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나는 이 작품을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나쓰메 소세키 읽기
1. 마음: https://rtmodel.tistory.com/1453
2.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https://rtmodel.tistory.com/1538
#열린책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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