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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성장인가

나쓰메 소세키 저, ‘산시로’를 읽고

나쓰메 소세키는 다면체의 문체를 구사하는 작가인 것 같다. ‘마음’에서 만났던 그의 글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만나지 못했다. 그것은 내게 일종의 실망감으로도 상실감으로도 다가왔다. 물론 그의 탁월한 필력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나는 ‘산시로’에서 또 다른 모습의 나쓰메 소세키를 만났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보다는 '마음'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으나 결코 같지 않다. 만약 작가의 이름을 손으로 가려놓았더라면 나는 지금까지 읽었던 그의 세 작품이 서로 다른 세 작가로부터 쓰인 거라고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등장인물 이름이 제목으로 된 작품을 좋아한다. 이름은 강한 메시지를 표출하지 않는다. 덕분에 책을 읽기 전 선입견을 가지지 않을 수 있다. 작가의 뜻에 영향받지 않은 채 비교적 객관적으로 작품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다 읽고 나서는 작품의 내용을 제목으로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 작품 ’산시로‘ 역시 제목이 주인공 이름이다.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읽어볼 작정을 한 이후 가장 먼저 이 책을 선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등장인물이 제목으로 된 작품들이 대체로 그렇듯 이 작품 역시 산시로라는 인물의 일상을 다룬다. 그는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청년이다. 지방 소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산시로는 공부를 잘했는지 도쿄제국대학 문과생으로 입학한다. 작품은 산시로가 기차를 타고 도쿄로 오는 순간부터 기록된다. 기차에서 만난 한 여자와의 기이한 만남은 산시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는 배짱도 없고 미성숙한 풋내기 청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산시로라는 한 미성숙한 촌놈이 상경하여 여러 사람과 사건을 만나며 성장해 가는 모습을 담고 있을까. 헤세의 작품에서 잘 드러나는, 한 마디로 성장소설에 속하는 작품일까. 작품을 다 읽고 나는 이 질문에 이렇다 할 답을 내리지 못한다. 무엇보다 소설 말미에 가서도 나는 산시로가 성숙해진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 흔한 성장통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미네코라는 한 여자와의 서먹서먹하고 어색한 관계의 여러 단면에서 단편적이고 상징적인 몸짓과 말로써 이게 성장통의 한 부분이구나, 하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시대와 문화의 차이 때문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읽어온 일본 문학에서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세 가지 요소를 나는 죽음 (이중 대부분은 자살), 성 (여성 입장에선 불쾌하게 느낄 수도 있을 부분들이 상당수), 그리고 이념 (시대의 변화에 따른 젊은이들과 지식인들 사이의 갈등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 ‘산시로’에서는 묘하게도 첫 번째 요소인 ’죽음‘이 등장하지 않는다. 세 번째 요소인 ’이념‘도 강하게 표현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두 번째 요소인 ’성‘이 전면에 드러나 있지도 않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나쓰메 소세키가 주안점을 둔 산시로의 성장 과정에는 ’성‘이 중요한 한 자리를 차지하지 않나 싶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산시로가 기차를 타고 도쿄로 오는 중 생판 모르는 여자와 만나 어쩌다가 한 싸구려 모텔에서 같은 방을 쓰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그 여자는 부끄러워하거나 긴장하는 기색도 없이 산시로가 목욕하는 도중 슬며시 들어와 등을 밀어준다는 말도 자연스레 건넨다. 부끄러움과 어색함과 긴장은 모두 산시로의 몫이다. 둘 사이에 아무 일도 벌지지 않은 상태에서 하룻밤이 지나고 헤어지며 여자가 남기는 말이 가관이다. 아무래도 나쓰메 소세키가 이런 기이한 만남을 소설 앞부분에 등장시킨 이유도 바로 이 문장에 함축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당신은 참 배짱이 없는 분이로군요.”

이 문장에 저자의 강한 메시지가 숨어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말을 듣은 산시로의 반응 때문이다. 여자는 히죽 웃었고, 산시로는 플랫폼 위로 내동댕이쳐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기차 안으로 들어서자 양쪽 귀가 더욱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는 지난 23년의 약점이 한꺼번에 드러난 듯한 심정이 된다. 부모라도 그렇게 정곡을 찌르지는 못할 것이라는 저자의 논평과 함께. 

‘배짱이 없는 놈’.‘ 왜 저자는 산시로에게 이런 인상을 심어준 것일까. 미성숙하다는 점을 나타내기에는 이런 것들 말고도 여러 다양한 방법들이 있을 텐데 말이다. 여성을 만나 하룻밤을 같이 자게 된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들고 아무 일도 없이 잠만 잔 행동이 배짱이 없다는 말로 귀결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쓰메 소세키는 산시로가 처음 만난 여자와 섹스라도 하길 기대했던 걸까. 섹스를 했다면 과연 그 여자는 배짱이 두둑한 사람이라고 평을 했을까. 한국 정서에 물든 나로선 인과관계에 있어서나 정서에 있어서나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것 말고도 저자는 산시로의 성장을 또 다른 여자와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상황을 전개해 나간다. 이번엔 미네코라는 여자다. 학교 안에 위치한 우물 옆에서 그는 그녀를 처음 만난다. 말하자면 한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소설의 마지막까지 산시로의 옆에서 미묘한 거리를 조절해 가며 그의 곁을 맴돈다. 어떻게 보면 미네코는 산시로에게 은연중 꼬리를 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치 기차에서 만나 하룻밤을 같이 보냈던 낯선 여자가 미네코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것 같은 인상도 풍긴다. 산시로는 이번에도 미네코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수줍고 어색한 모습으로만 응대하게 된다. 그러다가 책의 말미에 가서 미네코는 제3의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 산시로는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마찬가지로 혼자 남게 된다.

산시로와 미네코와의 관계에서 나쓰메 소세키는 과연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산시로가 배짱이 두둑하고 촌놈이 아니었다면 미네코에게 직접적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산시로의 성장이 이루어진 것일까. 나는 이런 질문들 앞에서 또 여전히 아닐 것이라 답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자가 나와는 상이한 성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특히 청년의 성장에 있어서 성이 대표적인 도구로 쓰이는 것 같다는 사실이 나는 불편하기만 하다. 가부장적인 시대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서도 그렇고, 여자의 인생을 남자가 맘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려져서도 그렇다. 어떻게 여자를 대하는지 여부가 한 남자의 성장을 평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성 말고도 저자는 두 지식인을 등장시켜 사상적으로 사회적으로 산시로에게 영향을 끼치게 만든다. 그러나 아무래도 성의 역할보다는 미약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보여줬던 나쓰메 소세키라면 철학적인 고민과 갈등에서도 충분히 산시로의 성장을 그릴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이 작품에서 그런 것들을 찾지 못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아무래도 나는 여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다는 어른이 되면서 겪는 생각의 변화에서 인간의 성장 징후를 찾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이 책을 다 읽고도 마치 다 읽지 못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어쩌면 이런 기분이 저자가 원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나쓰메 소세키 읽기
1. 마음: https://rtmodel.tistory.com/1453
2.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https://rtmodel.tistory.com/1538
3. 산시로: https://rtmodel.tistory.com/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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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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