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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책을 읽는다는 것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2. 11. 12:04

책을 읽는다는 것

책 읽는 사람이 좋다. 인사로 요즘 잘 지내시죠?, 하며 카피앤패이스트하듯 영혼 없는 말을 건네는 사람이나, 요즘 얼굴이 좋아지셨네요, 혹은 요즘 피곤하신가 봐요, 하며 외모에 대한 평가로 대화의 문을 여는 사람이 아니라, 요즘 무슨 책을 읽어요?, 하고 스스럼없이 묻는 사람이 좋다. 나는 그런 사람으로부터 오히려 더 친근함과 진정성을 느낀다. 책이 아닌 진심으로 나를 묻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책을 꾸준히 읽어 나간다는 건 자기 관리가 된다는 증거라고 믿는다. 자기 관리란 곧 시간 관리이며, 시간 관리란 가치 있는 것들을 우선순위에 놓고 행하는 실천에 다름 아니다. 시간이 남아돌아 독서를 하는 사람은 없다. 보통 시간이 남아돌면 책을 손에 들지 않게 된다. 오히려 시간이 모자랄 때, 신기하게도 독서는 이루어진다. 이름하야 ‘바쁠 때 맛볼 수 있는 여유!’ 독서는 바로 이 순간을 채우는 훌륭한 도구다.

이것은 돈이 남아돈다고 해서 자선을 많이 베푸는 게 아니라는 논리와 맥락을 같이 한다. 자선은 돈이 많은 사람이 하는 게 아니다. 돈의 필요성을 체험한 사람, 나아가 누군가로부터 은혜를 입은 사람이 하게 된다. 책을 읽는 것 역시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한 줄기 빛의 필요성, 한 숨을 돌리고 영혼의 쉼을 갈구하는 사람의 손에 쥐어진다. 어쩌다가 손에 든 책이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꿰뚫어 마치 다른 차원으로 잠시 갔다온 듯한 체험을 하게 되면 (인생 책이 이에 해당되리라) 책은 일상의 한 조각이 된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하루 24시간 동안 짬 시간마다 책을 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스마트폰을 들고 유튜브를 보는 사람도 있고, 게임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책을 읽으려면 진득하게 앉아 있을 시간이 필요한데, 자기에겐 그런 여유는 없다며 핑계 아닌 핑계를 해대지만,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주로 짬 시간을 많이 이용한다는 건 기정사실이다. 가정이 있는 서민 직장인 중에서 하루에 두세 시간 이상 집중해서 독서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런데 만약 그런 시간이 생긴다면 그 사람은 절대 책을 읽지 않으리라는 것에 나는 오백 원 건다. 평상시 작은 습관의 차이가 독서가와 비독서가를 구분짓는 것이다.

거대담론으로 자기를 치장한 뒤, 자기가 그 배에 타고 있다는 걸 훈장으로 여기고, 마치 그것이 인생을 잘 살고 있는 증거라도 되는 듯 여기는 사람들. 소통을 좋아한다며 늘 사람 만나고 그들과 회의하는 데에 모든 시간을 소요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치고 나는 조용한 시간을 내거나 짬 시간에 손에 책을 드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이 말하는 소통은 자기 주장을 관철하거나 눈치 보며 주류에 편승하기 위해 벌이는 사전작업일 때가 많다. 나는 오히려 일상에서 조용히 독서를 꾸준히 해내고 있는 서민이 소통에 더 적합한 사람이라 믿는다. 적어도 읽은 동안엔 입을 닫고 귀를 열고 타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 읽기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작년까지 머물렀던 엘에이 근교에서 누렸던 독서모임의 즐거움을 여기 한국에서도 누리고 싶다. 문득 그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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