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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강제성과 창의력: 매임에서 매이지 않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2. 15. 08:59

강제성과 창의력: 매임에서 매이지 않기

과학을 하는 사람이나 문학을 하는 사람에겐 같은 힘이 요구된다. 이 힘이 없으면 과학과 문학은 존재 가치를 잃는다. 과학으로 밥벌이로 하는 내가 문학을 사랑하게 된 것도 단지 우연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나는 프로 과학자이자 아마추어 문학도다. 작가라는 정체성까지 더하면 나는 초보 작가이기도 하다.

문학도로서 나는 문학작품을 읽는다. 작가로서 나는 글을 쓴다. 이 두 가지 경우 외부로부터 강제성은 없다. 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엔 지장이 없다. 과학자로서 나는 과학을 한다. 과학을 한다는 건 관찰하고 묻고 따지고 생각하고 실험하고 분석하는 일을 반복한다는 말이다. 과학의 경우 강제성이 있다. 하지 않으면 밥줄이 끊긴다. 그러므로 하기 싫은 날도 해야만 한다. 

똑같이 창의력을 요구하지만 강제성의 유무에 있어 과학과 문학은 차이를 낸다. 물론 이는 과학자를 직업으로 가지고 문학을 사랑하는, 나를 포함한, 몇 안 되는 사람들에 국한된다. 그렇다면 강제성의 유무는 창의력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둘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일견엔 강제성이 창의력을 저해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건 아마추어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프로에게는, 아니 진정한 프로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진정한 프로에게는 강제성이 부정적인 이미지만 가지지 않는다. 그들에게 강제성은 창의력을 촉진시키고 증폭시키는 역할도 한다. 자칫 게을러질 때 강제성은 일이 진행되게 만드는 윤활유 역할도 겸한다. 스트레스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한 강제성 따위가 진정한 프로에게는 스트레스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들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는 창의력이 사라지는 느낌, 혹은 도전과 모험으로 가득 찬 탐험가가 아닌 생산력 높은 공장주가 되어가는 느낌일 것이다. 진정한 프로에게 강제성은 창의력을 저해할 만큼 강하지 않다. 즉 창의력을 얼마나 사랑하고 그것에서 얼마나 두각을 나타내는지 여부가 진정한 프로인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이는 그들이 일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이유이기도 하다. 공장주는 즐길 수 없다. 그러나 탐험가는 즐길 수 있다. 물론 공장주는 돈을 번다. 그러나 탐험가는 극소수만 제외하고는 쪽박을 면치 못할 때가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나의 영역에 전문성을 띠기 위해서 나는 강제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내가 아마추어 문학도나 초보 작가라는 타이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나는 읽기 싫을 때도 잠시 환기를 시키는 작업을 시행한 뒤 다시 문학작품을 읽으려고 애쓴다. 이건 그냥 순수하게 혹은 막연하게 문학을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는 지속할 수 없다. 성실한 지속은 스스로가 강제성을 부여하나 그 강제성에 얽매이지 않는 수준이 되어야 비로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싫을 때도 나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블루투스 키보드를 늘 가방에 들고 다니는 것도, 스마트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인 메모장을 메인 화면 가장 손가락이 닿기 쉬운 곳에 위치시킨 것도 다 이를 위함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계속 사랑할 수 있도록 나는 나에게 강제성을 부여하고 그것에 매인다. 그러나 그 매임 안에서 나는 자유를 만끽한다. 읽기와 쓰기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요컨대 강제성 부여하기, 그리고 그 강제성에 묶이지 않고 자유를 만끽하기. 

강제성을 나는 책임감이라고 해석한다. 무엇인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것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책임지지 않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없다. 전문성은 바로 이때 생긴다. 당신은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책임질 수 있는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책임을 완벽하게 질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다. 그러나 그 불가능을 향한 도전 위에 사랑하는 자의 발걸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랑한다면, 진정 사랑한다면, 매여라. 그리고 그 매임에서 매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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