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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는 정체성: 꾸준히 쓰기를 넘어 작가의 눈으로 세상 바라보기

시상이랄까 영감이랄까 하는, 예측할 수도 제어할 수도 없는 어떤 순간에 의지하여 글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지속하진 못할 것이다. 지속하지 못하면 작가라고 할 수 없다. 어쩌면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구름 같은 순간에 목을 매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예기치 못한 순간은 작가에게 큰 동기를 부여하고 전환과 창조의 초석이 되기도 한다. 작가이기 때문에 알아챌 수 있고 붙잡을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요컨대 시상이나 영감은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한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꾸준히 글을 써나가는 사람을 나는 작가라고 정의한다. 한편 책을 낸 사람은 저자라고 부른다. 저자는 작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작가 역시 저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즉, 책을 내기 위해선 작가가 될 필요도 없고, 책을 냈다고 해서 작가라고 할 수도 없다. 저자와 작가는 결코 같은 말이 아니다.

글을 쓰는 그 순간은 누구나 작가일 수 있다. 그러나 작가라는 정체성을 부여하고 그 정체성을 어색하게 느끼지 않기 위해선 지속해서 써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여러 번 강조하지만, 지속해서 쓰지 않으면 작가라고 부를 수 없다. 한 번 해병대는 영원한 해병대,와 같은 구호는 적어도 작가에겐 통하지 않는다.

나는 작가다. 적어도 나는 나를 작가라고 부르는 데 있어서 이젠 어색하지 않다. 두 권의 책의 저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먼저는 매일 매시간 글을 쓰기 때문이다. 나는 머릿속으로도 글을 쓴다. 그러나 나의 경우, 이것만으로는 스스로를 작가라고 부르기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어색했다. 매일 쓰는 사람을 작가라고 부를 수는 있어도 그건 그 사람이 타자일 경우에 해당되는 얘기인 것만 같았다.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일 경우엔 한 가지가 더 필요한 듯했다. 어쩌면 작가라는 정체성과 매일 글을 쓴다는 사실은 필요충분조건 관계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봤을 때 나는 나를 작가라고 정의한 게 아니라 그렇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을 맞이했던 것 같다. 그건 어떤 상황이나 사건을 관찰할 때 예전에 없던 습관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였다. 이젠 그저 관찰자에 머물지 않고 작가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게 된다. 작가는 관찰에 그치지 않고 성찰과 통찰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것을 문자를 이용해 글로 담아낸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그것이 글로 쓰인다면 어떨지 혼자 상상하곤 한다. 어떤 모습을 볼 때에도 그것을 어떻게 묘사하면 좋을지 골몰하게 된다. 의지적인 게 아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 그러므로 작가라는 정체성은 스스로 부여한다기보다는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싶다. 매일 쓰는 습관을 넘어서 모든 것을 작가의 눈으로 보게 되는 습관이 몸에 배일 때, 스스로를 작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작가의 눈을 장착한 나는 새로운 나다. 나는 이런 내가 좋다. 세상을 한 걸음 떨어져 보게 되고, 그만큼 객관적인 내가 된다. 꾸준히 글을 써나가는 작가들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리라 믿는다. 혹시 매일 글을 쓰면서도 아직 스스로가 작가라 불리는 것에 어색한가? 자신의 일상을 살펴보라.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관찰을 넘어 성찰과 통찰로 나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문자를 재배열하여 글로 나타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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