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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평범함은 지켜내는 것이다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9. 23. 13:00

평범함은 지켜내는 것이다

자기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의 심리는 아마도 겸양일 것이다. 마치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사람처럼 자기를 낮추려는 의도일 것이다. 뭔가 특별하지 않은, 혹은 비범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평범함이라고 표현하는 것일 테다. 그런 당신에게 나는 묻고 싶다. 그 겸양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평범함과 비범함의 경계는 무엇인가.

겸양은 미덕이다. 그러나 그 미덕을 자기중심적으로 사용할 땐 문제가 된다. 자기를 평범하다고 소개하는 사람의 심리 이면에는 자기 중심성이 있다. 겸양의 탈을 쓴 자기 중심성. 거짓겸손이라고도 부른다. 그들이 평범하다고 말하는 것은 선수를 치는 효과를 낸다. 그들을 진짜 평범한 사람으로 대하면 아마 그 누구보다도 자기를 무시한다고 성을 낼 것이다. 즉, 그들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먼저 말하는 것은 진정 자기 자신을 그렇게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소개할 줄 아는 여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얄팍한 수단일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자기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을 주의해서 보게 된다. 평범함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 같아서다. 

왜 하필 평범함인가. 누구나 특별하다고, 동시에 누구나 평범하다고 하는 틀에 박힌 말을 하고 싶진 않다. 어쩌면 왜곡된 평범함이란 단어의 위상을 회복시키고 싶어 하는 나의 작은 바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그리고 내가 믿는 평범함은 ‘지켜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범함은 일상과 자연스레 연결된다. 일상을 잃어본 사람은 안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서 말이다. 살다 보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나의 역량도 한몫을 하겠지만, 대부분은 누군가와의 만남과 사건이 절묘한 타이밍에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빛나는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대부분은 일상이기 때문이다. 무대 위가 아닌 무대 아래, 무대 앞이 아닌 무대 뒤의 공간. 내가 여백이라고 하는 공간적 의미를 품고 있는 바로 그곳, 우리의 일상. 

무지개를 쫓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야망에 찬 눈으로는 여백이 결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환하게 하려고 일상을 저버린 채 영화의 한 장면을 반복해서 만들어내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가치 없게 느껴질 것이다. 마치 평범한 일상이 거저 주어진 것처럼, 마치 무능력한 자의 인생인 것처럼 왜곡되어 있을 것이다. 

평범함은 지켜내는 것이다. 자기 중심성으로부터, 자기애로부터, 야망으로부터, 비범함과 특별함을 자기 자신의 본모습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부터, 인생을 영화로 도배하려고 애쓰는 무익한 노력으로부터.

나는 일상의 소중함과 평범함의 진정한 의미와 여백의 중요성을 알고 이를 노래하고 나누는 사람이 좋다. 그들은 나의 동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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