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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작은 일의 무게

가난한선비/과학자 2024. 3. 20. 10:20

작은 일의 무게

성실한 지속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내지 못하는 일 중 하나다. 나는 언제나 이런 것들에 진리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압도적인 성취의 순간이 아니라 진전이 없는 것 같아 보이는 지난한 과정들 안에 모든 게 담겨 있다고 믿는다. 그 시기를 어떻게 견디고, 즐기며, 그러면서도 정의롭고 공의롭게 살아내느냐에 인생의 방점이, 즉 자신의 믿음과 가치관과 세계관이 모두 담겨 있다고 믿는다. 크고 화려한 것들이 아닌 작고 빛바랜 것들이 품고 있는 가치가 내겐 더 소중하다. 그 어떤 성공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어제 단상을 남겼다. 연장선에서 오늘은 공부 안 하는 사람의 치명적인 특징 하나를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작은 것들의 무게를 잘 모르고 무시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사람일수록 크고 화려한 한 방에 많은 가치를 두며 자기에게 부족한 것도, 그리고 자기가 뭔가를 잘 못하는 이유도 그 한 방이 없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맞는 말도 아닌 이유는 그것은 드러난 현상일 뿐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자신이 그렇게 된 이유를 성찰하지 않은 데에 있다. 

크고 묵직한 것들은 단번에 길러지지 않는다. 금수저나 타고난 천재 같은 사람은 언제나 극소수다. 그런 사람들과 비교하며 자기 인생을 한탄하는 사람처럼 바보는 없다. 천재도 자기에게 주어진 능력을 그저 행할 뿐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를 비굴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은 그들에게 없다. 우리를 비굴하게 만드는 건 우리 자신일 뿐이다. 그들은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우리는 그저 박수 쳐주면서 그들을 먼저 보내주면 된다. 비교할 수 없는 대상과 비교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정 비교하고 싶다면 자기 자신의 과거와 비교하면 된다. 

내공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그리 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성실히 마음 다해 지속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봐도 뭔가를 가지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고 나는 생각한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겉에 보이는 것만 보게 되고 거기에 휘둘려 그릇된 판단을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무식한 자, 혹은 무식하기로 선택한 자, 혹은 무식한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의 운명이다. 타자의 시선과 말에 좌지우지되며 자신의 생각과 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결과를 맞이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당연한 수순이다. 큰 소리 떵떵 칠 때가 많겠지만, 그건 자격지심일 뿐이고 열등감의 표출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비겁하게 음지에 있지 말고 겸손하고 당당하게 밖으로 나와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공부를 하면 된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고, 겸손히 배우면 된다. 모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러나 배우지 않거나 배우지 않기로 작정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비겁한 인간이 악한 인간보다 더 밉다. 악한 인간은 아무나 될 수 없지만, 비겁한 인간은 누구나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비겁하게 살고 싶진 않다. 

언제나 무언가를 안 해야 할 이유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법이다. 가장 비겁한 이유 중 하나는 자기 머리가 안 좋다느니, 학창 시절에 공부를 못했다느니 핑계를 대는 것인데, 제발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면 좋겠다. 학창 시절 공부 못한 게 자랑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성실하지 못했다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자신의 성실하지 못했음을 공부 못했다는 말로 덮어버리지 말자. 스스로에게 범죄를 저지르진 말자.

관건은 별 진전을 못 느끼더라도 작은 일에 도전하고 마음을 두고 시간을 투자하며 삶을 재편성하는 실천이다. 잊지 말자. 하루 밤새는 건 상대적으로 할 만해 보이는 반면, 하루에 10분씩 매일 무언가를 하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걸.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내지 못하는 것들에 인생을 걸자. 특히 인생의 후반전을 넘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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