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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냉소의 강 건너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24. 3. 24. 14:35

냉소의 강 건너기

배움과 공부를 통해 우물 밖으로 나온 자는 필연적으로 냉소의 강을 건너게 된다. 혼란의 시기일 수도 있다. 다시 우물 안으로 돌아가고 싶을지도 모른다. 초기의 반동적인 힘 때문일까. 자기가 속했던 곳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차 어지러울 것이다. 그동안 물처럼 자연스러웠던 일종의 안정감이 사라지면서 두려움과 불안에 잠식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속고 살았다는 불유쾌한 기분은 영혼에 각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 자아의 분열을 겪기도 할 것이다.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의 거부할 수 없는 힘을 느끼며 교만한 현자인 동시에 방황하는 영혼 같다는 묘한 기분을 한동안 느끼게 될 것이다. 환영한다. 당신은 냉소의 강에 드디어 진입한 것이다.

냉소의 강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건넜다 해도 다시 시작되는 겹겹의 강이다. 마치 인생과 같다는 생각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당신은 이제 냉소를 맛보기 시작했다. 이제 당신이 찾을 것은 우물 안에 고인 평화가 아니다. 그런 평화는 더 이상 당신에게 안정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이젠 쥐구멍에 목을 넣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경이 넓어진 확장된 세계에서 당신이 해야 할 것은 Embrace, 즉 끌어안는 것이다. 밝음과 어둠, 흑과 백, 두 상반되는 것들을 알게 되는 건 성장하고 성숙하는 모든 인간의 숙명이다.

그러나 이 혼란의 시기를 견뎌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혼자는 힘들다. 아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동지가 필요하다. 함께 견뎌낼 동지. 공동체라면 더 좋겠다.

한 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다. 끌어안는다는 건 상대주의에 빠지는 게 아니다. 어두운 면을 알고 밝음의 소중함을 더 깊고 풍성히 깨달은 상태에서 밝음을 끝끝내 지향하는 것이다. 냉소의 강에 빠져죽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눈이 깊은 어른이 되는 것이다. 눈이 깊어가는 과정은 냉소의 강을 건너며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과 혼란을 정면으로 맞닥뜨려 겪어내는 것이다, 끌어안는 것이다. 그러면 불안 가운데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고, 그것을 더욱 갈망하게 될 것이며, 비로소 낮은 자세로, 감사함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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