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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기도의 목적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2. 2. 13:11

기도의 목적.

마태복음 4장은 마귀의 예수 시험 사건을 광야 40일 금식기도 이후라고 기록한다. 그러나 이 본문을 읽을 때, 예수의 금식기도 목적이 마치 마귀의 시험 준비인 것처럼 해석해선 곤란하다. 그 사건의 역사성을 차치하고서라도 마태복음 저자의 내러티브 전개 구도를 고려한다면, 예수의 금식기도 목적은 공생애 준비로 읽는 게 더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마귀의 시험을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이해한다고 해도 나는 그것을 준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기도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40일 금식까지 병행하며 행하는 집중기도의 목적이 고작 마귀 시험 따위를 대비하는 것이라면, 이는 마귀 시험의 발생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될 수도 있고, 그 시험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는 말이 될 수도 있으며, 왜 차라리 그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답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예수가 가르쳐준 주기도문에도 항상 기도하며 마귀 시험을 대비하라는 말은 없고, 대신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나와있을 뿐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예수가 40일 금식기도를 마귀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로 도배했다고 해석해서도 곤란할 것이다. 예수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임을 전제로 할 때, 피조물인 마귀의 시험을 받는다는 마태복음의 설정도 사실 말이 안 되지만, 설사 그걸 용인한다 해도, 마귀 시험이 가지는 비중이 너무 비대해진다는 허점이 생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마귀가 가지는 권세는 하나님이 그렇게 힘들게 준비해야만 간신히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해져버린다. 그러므로 예수의 금식기도 목적이 마귀 시험 준비라고 해석하는 건 나는 말이 안 된다고 본다.

그리스도인의 기도 목적 역시 마귀 시험 대비가 아닐 것이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주기도문처럼 유혹에 빠지지 않게 늘 깨어있길 기도하는 건 좋지만, 시험에 들 것을 미리 확정하고 그것에서 이기길 기도한다는 건 어찌 보면 하나님이신 예수의 권세를 의심한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으며, 그 사람의 삶은 마귀에게 시험 받는 시기와 그것을 준비하는 시기로 나눠져버려 당최 하나님나라를 살아내거나 소위 복음을 전할 기회를 절대 갖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살아있으나 늘 어둡고 차가운 곳에서 두려움과 불안과 공포에 떨고 예수의 재림만을 간절하게 기다리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두려움과 불안과 공포를 전달하며 협박하는 어리석은 인간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세상은 절대 난파선이 아니다. 동아줄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끝까지 견딘 사람만 타고 올라가 어딘가에 있을 천국으로 가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구속되는 게 아니라 세상의 일부로서 창조세상과 함께 구속된다. 그리스도인의 기도 목적은 하나님나라를 어떻게 현실에서 구현해내는지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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