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 상태에 이르면 나는 자존감이 낮아진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이 내가 하는 일의 대가로 지불한 돈을 아깝게 여기거나, 내 실상을 보고 그들의 기대 수준에 반도 못미치는 인물이라고 폄하하지는 않을까 하는 단순한 두려움과 망상을 경험하기도 한다. 약속을 잊어버리는 일이 잦아지거나, 응답하지 못한 전화메모가 쌓이고, 끝내야 할 일의 마감일을 놓치기 시작하는 등의 현상이 발생하면, 내가 무질서한 상태에 있다는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날은 온통 지키지 못한 약속들과 어설픈 변명으로 채워지고 만다. (어쩔수없이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를 얘기하는것은 아니다. 우리중 가장 질서 정연한 사람이라도 그러한 경우에 처할 수 있는 법이다.) 또한 무질서한 상태가 되면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경향이 생..
A가 B보다 중요하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이따금씩 B의 중요성을 실감할 때가 있다. A가 B보다 중요하다는 말의 뜻은 단지 A와 B를 비교했을 때 A의 중요도가 B의 그것보다 더 크다는 것이지, 결코 B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린 종종 이런 실수를 하곤 한다. 스스로 B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오류 말이다. 즉, 이런 현상은 '비교'가 불러오는 심각한 병폐 중 하나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병폐'라는 단어로 묘사할 수 있는 건 아마 비교를 당한 B로 인하여, 혹은 B 쪽에서 느끼는 소외감이나 열등감이 한몫 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일상 생활에서 자신도 모르게 비교를 통하여 뇌를 속여왔고 그 덕분에 B를 등한시했던 이유를 A가 중요했기 때문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변..
만약 당신이 '오늘' 행복함을 못 느낀다면, 당신은 불행한거다. 만약 당신이 과거의 영화로움에 비추어 오늘을 그저 숨쉬는 또 하나의 하루로 만들고 만다면, 당신은 불행한거다. 만약 당신이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의 행복을 꿈꾸기만 하고 현재의 모습을 비굴하게 느낀다면, 당신은 불행한거다. 행복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가령, "난 과거에 행복했었어." 라는 말에는 지금은 별로 행복하지 않다는 후회가 숨어 있다. 또한 "난 미래에 꼭 행복하고 말거야." 라는 말에도 현재의 삶에 대한 불만족이 숨어 있다. 당신이 과거에 행복했었든지 아니면 미래의 행복을 꿈꾸고 있든지에 상관없이 오늘 "난 지금 행복해" 라고 스스로 고백할 수 있길 바란다. 과거의 행복했던 시절도, 미래의 행복한 나날도 결국 매일매일의 '오..
"무슨 생각해?" "응, 아무 생각도 안해."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 일도 없어." "기분 나빠?" "아니, 그렇지 않아." 무언가 골몰히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고, 무슨 일에 묶여 있는 것처럼 보이고, 기분 나쁜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바로 나. 하지만 아직까진 난 '그렇게 내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갈만큼 나의 관심을 올인시킬만한 것도 없고, 어떤 일에 걸려 다른 일을 못할만큼 시간을 잘 관리 못하는 것도 아니고, 기분 나쁜 일도 별로 없다.' 고 나자신을 느낀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진실 여부를 떠나 적어도 내 모습이 겉으론 그렇게 보인다는 것.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노력한다면, 정말 자존심을 버리고 변하려고 노력한다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바꿀 수 있겠지. 그런데 한가지..
가능하다. 충분히. 내가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있으니까. 매일매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태복음 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누가복음 6:41]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누가복음 6:42] 기이한 현상이라 할 수 있겠지. 예전엔 저런 사람을 가장 싫어했으면서 이제는 자기자신이 똑같은 사람이 되어버렸으니. 말해 주어도 못 알아 듣는 사람에겐 그냥..
변함 없으시며 언제나 정확하신 나의 주.
바쁜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 일을 여유 있게 처리할 능력을 당신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피곤한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힘을 당신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가시관을 씌우므로 당신의 모든 어리석음을 담당시키셨고, 당신의 머리에 성령을 부으시므로 모든 지혜와 총명을 이미 넘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픈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채찍에 맞게 하시므로 당신이 이미 나음을 입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가난을 짊어지우셨으므로 당신은 이미 부유한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힘든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
Jesus Others Yourselves [A message from the jail]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성취됨을 나는 믿는다. 언약 붙잡은 기도는 반드시 응답될 줄 믿는다.
조용한 날, 가만히 잔잔한 바람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어 글을 쓰던 때가 그립다. 단순한 고민거리들을 나름대로의 시각으로 풀어 나갔던 그 시절이 그립다. 손을 뺄래야 뺄 수 없는 상황. 이미 커져버린 난처한 상황을 어떻게든 수습하고 싶은데 그냥 막막하기만 하다. 용기가 없어서일까. 무조건 피하려는 비겁한 동기 때문일까. 난 언제나 색깔이 분명하고 생각이 명확하다고 믿어 왔었는데, 그것도 다 나의 착각에 불과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내 마음도 잘 분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머저리, 구제불능, 멋대가리 없는 인간, 재수 없는 놈, 부적격자.....
진정함을 좋아하면서도 막상 진정함을 마주하게 되면 피하고 마는 사람. 순수함을 갈망하면서도 막상 순수함을 마주하게 되면 마치 일부러 자신은 순수하지 않은 사람이란 걸 보여주려는 것처럼 과장하는 사람. 그 이면에 무언가가 자리잡고 있는 이러한 사람들. 난 이들을 비겁하다 말한다.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멋적게 보이고 싶어하는 껍데기를 아직도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여, 이젠 뒤돌아서서 '흥, 뭐 나도 안다고.' 하는 시나리오는 지겹지 않은가. 그저 남들의 성공을 구경하며 박수쳐주는 선한 이웃이 될 수는 있으나, 그댄 결국 구경꾼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산 정상에 올랐을 때 희열을 느낄거라 한다. 하지만 내가 정상에 올랐을 땐 감격보단 외로움이 먼저 찾아왔다. 정상을 탈환했다는 기쁨 같은 건 솔직히 거의 없었다. 너무나도 잠잠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산 봉우리들과 숱한 나무들, 그리고 지저귀는 새들까지도 마치 나에게 인간은 나 혼자라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다. 정상에 오를 때면 난 언제나 외로웠던 거다. 그러나 산 정상을 뒤로 하고 산을 내려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안도감과 함께 그제서야 느꼈다. 최고의 자리에 섰었다는 감격, 그리고 외로움이 아닌 함께 하는 기쁨까지. 정상에 서는 것 만으로는 완성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 없지 않을까. 그 자리를 뒤로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늘 있던 자리로 돌아와 감사함으로 그 감격..
중국인 포닥이 나와 얘기할 때면 늘 빼놓지 않고, 마치 나에게 각인이라도 시키려는 듯, 하는 말이 있다. 어메리카는 인정사정없고 냉정해서 서바이벌 게임과도 같다는 거다. 일년안에 논문을 내지 못하면 발로 차여 내쫓긴다고 겁을 준다. 심지어 PI도 논문이 없어서 짤리고 랩이 문을 닫는 경우도 왕왕 봤다고 한다. 자기도 그러한 랩들 하나에게 여기로 온거라면서 말이다. 살아남기라... 대여섯번 들었을 때만 해도 남 얘기려니 했었는데 올해 들어 벌써 몇번 실감을 한다. 적어도 과학에 있어선 내 손과 머리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곤 있었지만 별안간 느껴지는 그 느낌. 따뜻한 인간성, 정이라는 단어는 전혀 찾아 보기 힘든 그 느낌. 무언가에 배신당한 것 같은 그 느낌. 갑자기 어느샌가 혼자 덩그러니 떨어져버린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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