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 잘 모른다. 아니, 아는 게 거의 없다고 말해야 더 맞을 듯 하다. 많이 안다고 여겼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훌쩍 커져버린 이 깊은 구렁텅이. 하소연도, 그 어떤 한숨도 이젠 용납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는 진심조차도. 그냥 모든 걸 잡아삼키는 블랙홀만 같다. 오해, 변명, 사소한 말다툼도 저 멀리멀리 날아간다. 아무런 생각도 잡히질 않는 이 상태. 공허, 허무, 이어지는 절망감만이 내 가슴 속에 가득하다. 모두 버리고 새로이 시작할 수 있다면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론 그래봤자 하는 마음도 자꾸 날 가득 메운다. 과연 난 잘 해낼 수 있을까.
누가 뭐래도 불평과 불만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 생명체는 없으리라. 답답하고 억울한 가슴을 씻고 싶은 마음에 털어놓은 짧은 하소연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상대방에게 남기는 임팩트는 무시할 수 없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 불평은 또다른 불평을 낳고 불만은 또다른 불만을 낳는다. 운좋게, 아님 완벽한 계획으로 넓은 아량의 사람을 만났다 하더라도 마찬가지. 상대방 마음의 여유가 많고 적음은 불평과 불만을 받아 들이냐 못 받아 들이냐를 결정짓는 잣대가 아니라 얼마나 그 불평과 불만의 인풋을 새롭게 진화된 제2의 불평과 불만의 아웃풋으로 표현을 하냐 못하냐를 결정지을 뿐이다. 뿌린 이상 거두게 되는 건 뿌린 사람이나 그 씨가 심긴 사람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즉, 불평과 불만이 계..
누군가를 무시한다는 건 무슨 말일까. 단순히 상대방을 높여주지 않는다는 걸까.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들 악한 동기를 가지고 그 사람을 업신여긴다는 걸 의미하는 걸까. 아마 이것도 아닐 것이다. 보다 정확한 의미는 아마도 무의식적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말을 포함한 기타 여러가지 방법으로 상대방에게 약간이라도 불리할 수 있는 표현을 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즉, 달리 말하자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전적인 의지나 말과 행동이 '무시'라는 뜻을 설명할 수는 없다는 거다. 어쩌면 그러한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오해 또는 착각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십중팔구 자신의 과거 상처에 연루된 열등감의 표출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무시하는 말을 한 사람이 자신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여긴 인천 송도다. 거의 2년 정도 적을 둔 곳이기도 하지만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송도를 낯설게 느끼지 않은 적은 한번도 없는 것 같다. 오늘도 강남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비내리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니 내가 여기서 생활했었다는 사실까지도 전무하게 느껴진다. 비단 높은 빌딩들이 하루 속히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예전에 보이지 않던 조그만 가게들이 하나씩 보일 때도 나의 왠지 모를 이 낯선 기분은 식을 줄을 모른다. 내가 또 여길 찾게 될 일이 있을까. 이젠 한국에 머물 날이 한달도 남지 않았는데 말이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섬. 송도 신도시. 내 기억 속에서도 언젠간 사라지고 말테지. 짧은 기억의 아쉬움만 남기고, 안녕.
만남이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축복 중 하나라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테다. 하지만 만남이란 게 자기 의지대로 시작하고 끝낼 수 없다는 생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만남이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축복도 아닌게다. 내게 선물로 왔던 여러 만남들 가운데 유독 참 스승과의 만남이 결핍되어 있다는 건 참 아쉬운 일이다. 누군가는 내게 그 스승을 만났었지만 내가 모르고 지나친게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 난 아직도 참 스승을 만나고 섬기며 배우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다. 겉모습의 허울이 많아 한껏 여론에 의해서 부풀려진 그런 스승 말고, 실제론 다른 곳에 동기가 있음에도 화려한 과거의 스펙으로 포장해서 마치 그럴듯한 포즈 취하는 걸 즐기는 그런 인간 말고 말이다.
성공을 위해서 자신의 장점을 키우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단점을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상반되는 두 캐릭터는 다른 사람을 도와줄 때도 그대로 드러난다. 전자의 경우, 도와줄 상대의 단점이 보여도 그 사람의 큰 장점들이 그 단점들을 보완해 주리란 생각으로 단점들을 그다지 크게 보지도 않고 실제로 그것들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허나, 후자의 경우는 상대방의 단점 보완에 초점을 맞추고 그 사람을 대하기 때문에 전자의 경우보단 상대적으로 부정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다. 하나하나 단점들이 보일 때마다 상대를 도와주려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먼저 스트레스를 받아 상대를 도와주기는 커녕 도움을 받아야할 상대에게 허구한 날 쓴 소리만 해대는 어처구니 없는 결..
뛰어 놀기서부터 농구, 배드민턴을 거치며 거의 매일같이 운동을 즐기던 일상이 아이 중심의 생활체제로 바뀌면서 갑작스럽게 무너져 버린지도 벌써 3년이 다 되어간다. 중간중간에 부쩍 늘어버린 체중을 한탄하며 다시 배드민턴 라켓을 잡기도 했었지만, 육아의 중요성과는 도저히 바꿀 수는 없었다. 이제 출국이 두달도 채 남지 않았다. 준비할 게 이것저것 있지만, 중요한 사실은 아무리 철저히 준비한다 해도 새로운 환경에 직접 가게 되면 여기서는 도저히 예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한다는 것. 그러므로 생활의 편리를 위해 이것저것 눈에 보이는 것들을 생각하고 고민하며 챙기는 것 보단 낯선 세상에서의 변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강한 마음가짐 그리고 큰 문제가 와도 받아낼 수 있는 마음의 큰 그릇을 준비하는 게 중요하..
'잃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버린다는 것'은 결국 내 손에서 사라지는 결과는 매한가지이겠지만, 슬픈 일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후자에게는 의지라는 게 담겨 있어서 일게다. 즉, 버린다는 것은 능동적인 잃음이라고 해야 그래도 엇비슷하게 의미를 전달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잃는다는 것은 수동적인 빼앗김으로 대치될 수 있는데, 어찌 보면 그저 슬픈 일이라기 보단 억울함이 내재된 어쩔 수 없는 치욕스러운 일일 수도 있겠다. 말장난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잃는다는 것과 버린다는 것의 차이는 이렇듯 극명한 게 틀림 없다. 그렇다면 이번엔 lose의 측면이 아닌 gain의 측면은 어떨까. 그런데 재미난 것은 잃는다는 것의 반대말은 얻는다는 것이지만, 버린다는 것의 반대말은 존재하지 않는..
내 나이 서른 중반에 접어들어서야 '묵인'의 힘을 비로소 알게 된다. 군중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무언의 인정, 묵인. 비록 알고도 넘겨 버린다는 의미를 가진 말로도 해석이 되지만, 넘겨 버린다는 자체가 벌써 '인정'의 힘을 지니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더욱이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무언의 인정에 동참하는 이른바 '암묵적 묵인'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힘을 내재하고 있다. 어쩌면 원만한 인간관계의 핵은 바로 여기, 암묵적 묵인을 얼마나 교묘하게 잘 소화해 내는가에 달려 있다 해도 무방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암묵적 묵인은 일자리도 창출해 낸다. 언젠가부터 일자리라는 개념은 너무나도 많이 변질이 되어 다만 입에 풀칠만 할 수 있어도 그것은 곧 일자리로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
올림픽대로 위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나름대로의 멋이 있다. 초록의 그라데이션을 풍성하게 만들어내며 내 살갗을 때리는 햇살은 언제나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오늘 아침이 그랬다. 마침 집으로 돌아오는 자가용 안에서 맞이한 반가운 햇살이었다. 며칠 연이어 흐린 날씨에 기운이 없었는데 빛은 나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 넣어 주는 것 같았다. 차가울만큼 냉정하고 객관적이고 싶어하는 나에게 따뜻한 온기를 공급해 준거다. 복잡하고 부정적이었던 모습이 심플하고 긍정적인 면으로 상승하는 순간이었다.
진짜는 진짜를 알아본다. 하지만 가짜는 진짜를 알아보지 못한다. 아니, 알아보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알았다 하더라도 진짜라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게 더 맞겠다. 왜냐하면 가짜는 자신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이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진짜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진짜의 앞을 가로막는 존재는 스스로 진짜라고 믿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가짜들이다. 슬프게도 세상엔 이런 가짜들이 판을 치고 있다. 진짜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그들이 가로채 버린 것이다. 난 진짜가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가짜들이 스스로 부끄러워할 날을 꿈꾼다.
Cleveland 공항에서 Detroit로 가는 비행기가 연착이 되는 바람에 Detroit에서 Incheon으로 가는 비행기를 놓치고야 말았다. 덕분에 Narita를 한번 더 경유해서 귀국해야만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른다. 한국 도착 시간도 밤 10시란다. 원래는 오후 3시 경인데 말이다. 그래도 별로 불평과 불만이 나오지 않는다.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날 위해 준비해 두신 것일 테니까. 아내가 마중 나온단다. 시험 준비하느라 힘들텐데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지하철을 타고 와 공항까지 온단다. 거절을 했었지만 그래도 좋다. 아내가 보고 싶다. 역시 사랑스러운 아내다. 내 가족이다. 나와 한몸을 이룬 여자다. 내가 돕고 함께 가야할 평생의 동반자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너무 많은 감사 제목을 저에게 주셨..
2011년 4월 12일 화요일, Cleveland 날씨가 흐리다. 바람이 거세게 분다. Lisa가 보내준 리무진을 타고 공항을 조용히 빠져 나온다. 20분 남짓 시속 80km 정도의 속도로 쉬지 않고 달려 도착한 곳이 바로 Cleveland Clinic. 참 작고 시골 같은 풍경이다. 친절한 운전기사 아저씨의 설명에 따르면 Cleveland Clinic은 거대한 영역에 걸쳐 산재되어 있단다. 내려서 보니 정말 보이는 모든 건물이 Cleveland Clinic 소속이다. Harvard Medical School 주위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뭇 다른 느낌. 조금은 더 안정되어 있고 조금은 더 조용한 것 같다. Harvard에서 느꼈던 학구적인 분위기는 느낄 수 없지만 세계 최고의 병원이라는..
2011년 4월 11일, Boston 9시까지 오라고 했는데 20분 일찍 Dr. Rossi의 오피스 문을 두드렸다. 뭔가에 열중해 있다가 내 얼굴을 보고는 반갑다며 나에게 손을 내민다. 남자 기숙사 방에서 나는 냄새가 난다. 머리는 곱슬이기도 하지만 이틀 정도는 감지 않았거나, 아니면 방 환기조차 잘 시키지 않으면서 밤늦게까지 오피스에 처박혀서 연구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 전형적인 천재 스타일이다. 영어가 귀에 쏙쏙 들린다. Dr. Karsenty의 프랑스 억양이 강하게 섞인 영어에 제대로 당해봐서 그런지 미국식 영어발음은 이제 속도만 따라 잡는다면 웬만한 건 다 들리겠다 싶다. Dr. Rossi는 웅변가다. 설득가다. 그리고 science 입장에서 볼 때 순수함을 가진 열정적인 과학자다. 20분 ..
2011년 4월 10일, Boston Columbia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안전함이 느껴지고, 대도시이지만 downtown이라는 느낌보다는 대규모 종합대학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여기는 바로 Harvard Medical School이다. 본성이가 공항까지 픽업해 주러 오는 덕분에 Dr. Rossi가 미리 예약해 준 호텔까지 편하게 왔다. 고마운 본성이와 함께 한국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어떻게 뉴욕과 보스턴은 분위기가 이렇게도 다른 걸까? 어둡고 삭막하고 위험하면서도 화려한 곳이 뉴욕 맨하탄이라면 보스턴은 학생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타운에 비유할 수 있겠다. 따라서 피부에 느껴지는 분위기가 공부하는 나로선 보스턴이 훨씬 더 친근하고 다정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Dr. Karse..
2011년 4월 9일, New York 어제 인터뷰를 끝내고 미리 예약해 둔 숙소로 곧장 왔었다. 여긴 월 스트리트와 9.11 테러로 무너졌던 쌍둥이 빌딩이 바로 근처에 있는 lower Manhattan이다. New York, Boston, 그리고 Cleveland, 이렇게 세 군데나 인터뷰를 가야 하고 Orland에서 학회가 수요일 날 끝이 났기 때문에 주말이 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뉴욕에 왔으니 반나절만이라도 sightseeing을 하기로 한다. 가볍게 차려 입고 카메라가 든 가방을 메고 숙소를 나선다. 어제완 달리 날씨가 화창하다. 근처 식당에 들어가 간단히 샌드위치와 오렌지 주스를 먹고 일어나 곧장 월 스트리트를 걸어 보기로 한다. 세계 경제의 심장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그냥 높은 빌딩들이 ..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