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8일, New York 거의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 일찍 숙소를 나선다. 오전 9시에 Dr. Karsenty의 오피스로 가야 한다. 드디어 첫 인터뷰가 시작되는 거다. 생각보단 꽤 젊어 보인다. YouTube에서 보던 모습과 조금은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역시나 대가의 풍이 느껴진다. 뭔가 다르다. 역시 최전방에서 선전하고 있는 랩의 PI답다. 프랑스 억양과 발음이 영어에 너무 많이 녹아 있어 말을 절반 정도 알아 듣는 것 조차 힘이 든다. 그래도 여러 논문의 abstract들을 읽어 놓아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100% 무슨 내용인지 못 알아 들을 뻔 한 셈이다. 30분 넘게 랩에서 진행되고 있거나 앞으로 진행할 일들에 대해 설명해 준다. 비밀로 지켜달라는 부탁까지 하는 거 보면 정말 여긴..
2011년 4월 7일, New York JFK 공항. 뉴욕이다. Baggage claim에서 짐을 찾고 밖으로 나오니 말로만 듣던 뉴욕의 노란 택시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냥 택시를 탈까 하다가 다시 들어와 안내원 할머니에게 길을 묻는다. 지하철과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을 물어보고 가격까지 덧붙여 묻는다. 외국인인 나에게 친절하게 또박또박 설명해 주시면서 뉴욕 지하철 노선도까지 챙겨 주신다. 지하철은 상당히 낡고 지저분하다. 우리나라와 싱가포르에서 보던 것과는 천지 차이다. 지나다니는 거대한 체구의 흑인들도 첨 보는 나에겐 꽤나 위협적이다. 하지만 그들의 눈을 보니 무언가 눌려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랜 시간 동안 억압당하고 억눌린 역사의 흔적이 그들의 눈에서 또 행동거지에서 묻어나는 듯하다. 1..
'유럽의 걷고 싶은 길'이란 책을 사 읽고 있다. 일부러 천/천/히. 네이버에서 간간히 업데이트되는 '지구촌 산책'이란 곳에서 보았던 김남희씨의 자유가 부러웠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어느새 내 마음도 혼자 떠난 여행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독을 곱씹게 된다. 자유함과 고독함의 묘한 만남. 바로 혼자 떠난 여행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 아닐까. 여행사를 통해 오로지 기념 촬영하는 게 목적인 것처럼 바삐 움직이는 그런 여행 말고, 처음 가는 곳이라도 그곳에 흐르는 문화와 정서를 고스란히 느끼며, 결국 나 자신과의 대화에 귀를 귀울이게 되는 그런 여행 말이다. 여행을 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이 성숙해져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그런 여행 말이다. 난 오늘도 비록 몸은 움직이기가 힘드나 마음만..
인간미라는 게 뭘까? 도대체 어떤 사람을 보고 사람들은 인간미가 넘친다, 혹은 매정해 보인다고 판단해 버리는 걸까? 얼굴에서 풍기는, 그래서 그의 행동거지에서 풍기는 여유에서 기인하지 않을까? 물론 그저 순박해 보이는 사람조차도 인간미가 넘친다는 말을 들을 순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인간미는 바로 여유 그 자체에서 나오는 그 사람의 분위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진정한 여유는 시간적 여유를 말하는 게 아니라 심적 여유를 지칭해야 맞을테다. 즉, 바쁜 일상에 쫓긴다고 해서 심적 여유를 빼앗길 이유는 없다는 게다. 오히려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맛볼 수 있는 심적 여유를 나타내는 사람이 진정한 여유 있는 자가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시간적 여유는 물론, 심적 여유까지도 당연히 누리..
내 얼굴엔 여유가 없다.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포용력, 나와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이해심, 그리고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 등을 모두 아우르는 한 단어. 여유. 그러므로 여유가 없다는 말은 포용력, 이해심, 그리고 배려가 없다는 말과 같은 의미. 이렇게 적어 놓고 보면 누구라도 날 좋아할 사람 없겠다 싶다. 물론 속에 있는 걸 얼마나 겉으로 드러내느냐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를 낼 순 있겠지만서도. 원래 조금 급한 성격에 맡은 일은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처리하려는 의지 또한 강했기 때문이라고 변변찮은 변명을 해보지만, 그게 결코 여유 없음을 설명해 주진 못하겠지. 그저 변명은 변명에 지나지 않으니. 하기야 나조차도 납득이 안되니깐. 그렇다면 왜? 만족하지 못함 때문일까..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무표정으로 일관된 삶을 살고 싶진 않다. 즐길 줄 안다는 것, 시간을 잘 활용한다는 것만큼 어려운 게 또 있을까.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병행하여 좋은 결과로 마무리짓는 능력을 가졌다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은 즐길 수도 없고 시간 활용을 잘 하여 얻은 좋은 결과에도 행복해 할 줄 모르겠지. 그저 질좋은 기계처럼 일을 해댈뿐. 한마디 한마디에 대꾸하고 또 반박하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또 과학적이라는 칭찬을 듣기엔 손색이 없으나 가장 중요한 사람을 잃을 수도 있잖아. 아무리 좋은 논리라 할지라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한다면 그 또한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수준 낮은 사람, 수준 높은 사람에 관계없이 적을 만드는 논리라면 피해야 마땅하지 않을..
이럴때면 GOP 철책 위로 쏟아지던 별들이 그립고 내 살갗을 가르며 칼같이 불어오던 차가운 바람이 그립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대한, 이 아이러니한 그리움. 힘든 시기들은 서로 맞닿아 있는 탓일까. 그땐 미칠 것처럼 그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었는데. 십년이란 세월은 그 치명적이었던 독소까지도 먼 기억 한편의 애틋함으로 자리잡게 만들어 버렸다. 사실 아직까지도 내가 왜 그렇게도 힘든 군생활을 했어야 했는지 다 이해가 되진 않는다. 다만 지나온 십년을 회고해 볼 때, 그 시절 이후로 난 전보다 좀 더 강해졌다고 여겨왔을 뿐. 하지만 정말 그 시절이 날 강하게 만들었을까. 아님 내 의지와 상관없이 보내야 했던 그 시절을 가치있게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 기인한 한낮 바램에 불과한걸까. 남들이 흔히 겪지 않는 힘든..
머리가 아파 밖으로 나갔다. 강렬한 태양을 등지고 바다나 한번 구경해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렇잖아도 인천에 둥지를 튼지도 벌써 1년이 넘었는데 바다 한번 제대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차를 끌고 송도 신도시의 가장자리로 가면 바다가 보일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보이는 건 공사장 뿐.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인천에 와서 하루도 빠짐없이 봐왔던 건 공사현장. 첨엔 빨리 끝나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느덧 일상이 되어버렸다. 전혀 어색하지 않게 내 일상의 한 모퉁이에 자리를 잡아버린 것이다. 바다를 매립하여 만든 여기, 송도 신도시에서 바다를 볼 수 없다는 이 아이러니! 또다시 난 이 공사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사현장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
선선한 날씨에 이불을 폭 덮고 자고 난 다음날은 마냥 상쾌하기만 하다. 워낙 덥고 찝찝한 것을 싫어해서 그런지 한겨울에도 창문을 꼭 닫아 놓고 자는 법이 없었다. 이불이 제공해주는 따뜻함을 느끼며 자는 기분을 만끽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랄까. 하지만 어젠 자다가 일어나 창문을 닫았다. 아직 겨울이 오려면 멀었는데 이불은 나에게 예전의 그 따뜻함을 제공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선한 날씨는 그대로이고 이불도 그대로인데 내게 느껴지는 따뜻함만 사라졌다. 나도 모르게 내가 좋아하는 가을의 선선한 대기를 피하기 시작한 거다. 아내가 임신하고 나서부터였던가. 임신한 아내의 배를 보호하기 위해, 항상 나의 팔베개를 하고 잠을 청하던 아내를 품에 안고 잠들기를 그만둔건. 언제부터인가 아내를 안고 잠이 들던 일상은 ..
'최선의 선택'보다는 '최고의 선택'을 하는 자가 멋이 있다. 살다보면 '선택' 하나만으로 성공을 보장받는 일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선택을 잘 했다 하더라도 선택 후의 애프터 처리를 잘 못해서 결국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반대로 나중에 가서 자신이 택한 것이 그다지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판명난다 할지라도, 그 선택으로 말미암아 선택 후의 일을 잘 처리하여 결국 일을 성공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성공을 거둔 자들의 후기를 살펴 보면 아마도 그 '선택'이 자신의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회고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즉, 그 선택이 그 당시엔 분명 객관적으로도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결국 그 선택은 최종적인 성공을 얻어내는 데 꼭 필요했던 '최고의 선택..
함께 가는 것이 힘이다.
가끔 대형 서점에 가서 아직은 꿈일 뿐인 나의 미래를 위한 책을 들춰다보며 가슴 설레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수업을 일찍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조용히 혼자서 한적한 오후를 만끽하며 글을 쓰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지도를 들여다보며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왕복 버스비와 한캔의 음료수 살 돈만 들고 무작정 찾아가 시간을 보내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주말이면 버스에 몸을 실어 해방감을 느끼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많은 시간이, 나의 추억들이 지나간다. 눈에 보일만큼. 이 시간 여기에 나를 남겨두고. 일상 속에 나를 깊이 박아두고. 몸부림쳐봐야 여전히 일상 속인걸. 눈 떠봐야 여전히 여기, 이 공간인걸.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 나의 일상이 기분 좋은 추억의 한 조각으로 남을 수 있게 만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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