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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하게 다가온 루이스

C. S. 루이스 저, ‘루이스가 메리에게’를 읽고

제목에서 눈치챌 수 있듯, 이 책은 처음부터 책으로 의도된 게 아니라, 루이스가 51세가 되던 1950년부터 세상을 떠나던 해인 1963년까지 그가 메리라는 한 미국 여성 작가에게 쓴 편지들의 모음집이다. 루이스는 평생 투덜거리면서도 꾸준히 많은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루이스의 명성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의 성실함과 겸손함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루이스는 편지를 많이 받은 것만이 아니라 그 많은 편지들에 대한 답장에 게으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가 쓴 수많은 답장 중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루이스의 저서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기독교 변증서, 소설, 그리고 전공 관련 학술서가 그것이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겐 변증서와 소설이 많이 소개되어 있는 것 같은데, 이 책에서는 그러한 루이스의 고유한 매력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독자가 어떤 계층이나 집단이 아닌 단 한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먼저 쓴 편지가 아니라 답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루이스는 스스로도 자기는 편지 쓰기 싫어하는 숱한 남자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꼬박꼬박 답장을 놓치지 않는다. 시간에 쫓기면서도 일정 시간을 늘 할애하여 그렇게 답장을 했다는 사실로부터 루이스는 이를 일종의 사명 같은 거라고 여기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읽다 보면, 한두 단락 정도밖에 안 되는 그 짧은 답장에서도 자기가 너무 바쁘다는 둥 써야 할 답장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는 둥 불평을 하는 루이스의 모습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그가 가장 싫어하는 시즌은 크리스마스 경인데, 이는 편지 양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많아져 답장 쓰느라 너무 많은 시간과 공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어쨌거나 루이스는 답장을 사명처럼 대부분은 다 써낸 것 같다.

변증서에서 보이는 예리함이나 소설에서 보이는 탁월한 상상력과 비유 등은 이 책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루이스의 소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으며, 그가 주위 사람들을 어떤 자세로 대했는지를 알게 해 준다. 루이스는 고집이 있으면서도 타자를 존중했으며 친절하고 신사적인 모습으로 일관했던 것 같다. 루이스 같은 선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루이스를 닮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군데군데 역시 루이스구나, 하는 통찰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들은 평소에 그가 가진 생각이 그저 흘러나온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문장들에 밑줄을 긋고 몇몇은 노트에 옮겨놓았다. 그는 정말 깊은 사유를 통해 얻은 통찰력을 가진 아주 드문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나는 다시 한번 그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에 감사를 느낀다.

이 책이 의미가 있는 점 중 한 가지는 그가 노년에 쓴 편지들의 묶음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수신자인 메리 역시 노년기에 속했는데 서로 노화의 과정을 겪어가며 서로 기도하며 은총과 축복을 비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늘 기도의 끈을 놓지 않는 루이스의 모습은 그가 말과 글만이 아닌 일상에서도 참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그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우리가 아는 그의 저서 중 거의 절반이 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욱 놀라게 될 것이다.

한동안 루이스를 읽지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요즈음 루이스를 자주 읽게 된다. 참고로, 이 책을 읽고 나니 루이스가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작품들도 더 빨리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루이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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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통의 문제: https://rtmodel.tistory.com/695
3. 헤아려 본 슬픔: https://rtmodel.tistory.com/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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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세상의 마지막 밤: https://rtmodel.tistory.com/1629
11. 침묵의 행성 밖에서: https://rtmodel.tistory.com/1633 
12. 루이스가 메리에게: https://rtmodel.tistory.com/1635

#홍성사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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