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그림 덕분에 더 깊고 풍성해지는 글

조주관 저,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을 읽고

예술은 모두 연결되어 있는 걸까. 어떤 작가가 음악 혹은 미술을 좋아했다거나 거기에 일가견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나는 동일한 생각을 하게 된다. 글을 쓰는 것도, 곡을 쓰는 것도, 미술작품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것도 모두 창조의 행위에 속하며 그것이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고뇌를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글 쓰는 작가의 음악과 미술에 대한 사랑은 텍스트로 그 흔적이 남게 된다. 수많은 소설에서 음악이나 미술에 관계된 재료들 (이를테면 예술작품이나 예술가)이 빈번하게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헤르만 헤세는 그의 작품 ‘황야의 늑대’, ‘유리알 유희’, ‘게르트루트’에서 음악을,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로스할데’에서는 미술을 적극 활용하여 내러티브를 살려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녹턴’,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에서 음악을,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에서 미술을 주재료로 삼아 그의 문체를 녹여냈다. 

도스토옙스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음악보다는 미술작품을 감상, 비평하는 (그림을 글로 번역해 내는) 일에, 그리고 글을 쓰면서 작중인물을 노트에 직접 스케치하는 일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여러 작품에 등장한 미술품을 언급하며, 그 미술품에 대한 도스토옙스키의 해석을 통해 그 작품들을 재방문하여 여태껏 몰랐던 숨은 의미를 알려주고, 가볍게 넘어갔던 부분들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안내자다. 특별히,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으며 거룩함과 아름다움과 어리석음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 ’백치’, 악령과도 같은 이념과 사상의 환상을 보여주며 러시아의 회복을 소망하는 작품 ‘악령’, 그리고 도스토옙스키의 정수가 녹아있으며 그의 마지막 작품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소개되는 숱한 미술작품들을 보며 나는 내 안에서 다시 이 모든 작품들이 읽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작품은 동일하나 또 다른 렌즈를 장착한 독자에겐 재독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대학생 때 교양으로 배웠던 세계미술사 시간을 나는 사랑했다. 언젠가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감명 깊었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듣던 클래식 음악은 지금도 가장 즐겨듣는 음악 장르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미술관에 들러 조용히 작품을 감상하는 순간은 내겐 소중한 삼찰의 시간이 된다. 나 역시 미천한 수준이지만 작가로서 음악과 미술작품을 대하면서 그것들로부터 영감을 얻곤 하는 것이다. 헤세도, 이시구로도, 그리고 도스토옙스키를 사랑하는 나는 그들의 예술 사랑도 사랑하게 된다.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를 이해하고 그들의 작품을 더 깊고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도스토옙스키 읽기
1. 죄와 벌: https://rtmodel.tistory.com/811
2. 백치: https://rtmodel.tistory.com/815
3. 악령: https://rtmodel.tistory.com/879
4. 미성년: https://rtmodel.tistory.com/928
5.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https://rtmodel.tistory.com/1068
6. 죽음의 집의 기록: https://rtmodel.tistory.com/1087
7. 가난한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153
8. 분신: https://rtmodel.tistory.com/1159
9. 지하로부터의 수기: https://rtmodel.tistory.com/1171
10. 노름꾼: https://rtmodel.tistory.com/1174
11. 도스토옙스키 (by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https://rtmodel.tistory.com/1077
12.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177
13.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by 이병훈): https://rtmodel.tistory.com/1194
14. 매핑 도스토옙스키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358
15.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362
16.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by 도제희): https://rtmodel.tistory.com/1388
17.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396
18. 상처받은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429
19. 악몽 같은 이야기: https://rtmodel.tistory.com/1435
20. 악어: https://rtmodel.tistory.com/1436
21. 인간 만세!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488
22. 도스토옙스키를 쓰다 (by 슈테판 츠바이크): https://rtmodel.tistory.com/1625
23.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 (by 조주관): https://rtmodel.tistory.com/1644


#arte
#김영웅의책과일상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