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대멸종 가운데 일어날 하나님의 선교장준식 저, '기후 교회로 가는 길'을 읽고생각해 보면 인류 역사상 지구가 종말의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가 없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제는 진부해질 정도로 친숙해진 디스토피아 소설들은 이러한 서사를 이루는 조각들인 동시에 그 서사로부터 파생된 하나의 열매이기도 하며, 어쩌면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반대급부의 강력한 메시지를 함축한 예언이기도 하다. 짧게는 26년 전, 그러니까 20세기말,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가 오면 컴퓨터가 1900년과 2000년을 구분하지 못하는 등 엄청난 버그를 발생시켜(이를 Y2K라고 불렀다) 대재앙과 대혼돈의 시대가 도래할 수 있고, 그래서 우리는 지구의 종말을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 회자되어 전 세계가 경악했던 적이 있었다. 여러 ..
벽돌책 깨기장편소설(500페이지 이상이라고 하자)을 유의미하게 읽어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세 시간 정도는 한 자리에 앉아 집중해서 빠져드는 과정이 필수인 것 같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경험에서 도출된 결론이므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7-8시간의 잠도 30분씩 혹은 1시간씩 끊어 자면 휴식의 효과보다는 피로를 더 느끼듯,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을 한 번에 50페이지 미만으로 계속 끊어서 띄엄띄엄 읽게 되면 줄거리 파악은 물론 몰입할 수 없어서 완독 가능성은 멀어지기만 하고 금방 포기하고 싶어진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이런 거 해서 뭣하나 하는 합리화도 머릿속에서는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경험을 두세 차례 이상 하게 되면 장편소설이란 산은 점점 더 높이지고 내가 정복할 ..
도스토옙스키의 원형 혹은 쉬운 버전의 도스토옙스키니콜라이 고골 저, '외투'를 읽고고골이라는 작가도, '외투'라는 작품도 모두 도스토옙스키와 그와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도스토옙스키가 말했다고 전해지는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라는 문장이 아니었다면, 러시아 문학 전공자도 아닌 내가 굳이 이 작품을 찾아 읽는 수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 도스토옙스키라는 이름은 이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니기에, 그가 지대한 영향을 받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작가의 작품을 못 본 체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 나는 고골이나 '외투'가 궁금했다기보다는 도스토옙스키의 눈에 비친 고골과 '외투'가 궁금해서 이 책을 펼쳤던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에게 너무 익숙해져 버린..
‘베스트셀러’라는 허울한승혜 저,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를 읽고베스트셀러. 여전히 나는 이 권세 있는 이름 앞에서 온갖 상념에 잠긴다. 쿨한 척 이젠 상관없다고 믿다가도 책이 나오면 어느새 나는 다시 그 이름 앞에 조아리며 구걸하는, 빌어먹을 내 안의 나를 인지하게 된다. 평소에는 그렇게나 경멸하다가도 출간 직후에는 그 이름을 내 마음대로 호령하고 제어해서 자본주의의 승자독식 피라미드 상층부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다시 느낀다. 한두 달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긴 하는데 그래봤자 정도만 다를 뿐 원하는 건 동일하다.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는 어떤 은밀한 뒷길이 없나 곁눈질하는 단계로 들어서기 때문이다. 즉 어떤 운명 같은 기적을 바라게 되는, 수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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