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감작가라면 늘 마음 한 편에 부채감을 안고 산다. 비단 청탁받은 글의 마감일만이 아니다. 스스로 부과한 글쓰기에 대한 무언의 압박은 작가에겐 평생의 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짐이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라는 정체성을, 그리고 작가로 살아있음을 말해주는 지표 중 지표라는 생각이다. 작가의 부채감은 그러므로 작가를 짓누르기도 하고 생명력을 불어넣기도 하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생명력이라는 표현을 조금 더 세분화하여 생각해 보면, 상대적으로 정적인 의미의 '숨 쉬고 있음'과 상대적으로 동적인 의미의 '성장하고 있음'으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또한 이 두 가지 생명력을 불어넣는 외부의 힘을 각각 수동적인 압박과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압박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내가 지향하는 생명력은 두말..
작가, 저자, 책, 글쓰기작가로 살아가지만 작가가 내 직업은 아니다. 작가는 내 일상이자 삶이다.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좀 쉰다고 해서 잘릴 위험은 없다. 돈이 안 되기 때문에 글을 안 쓴다고 해서 생계에 아무 지장도 없다. 더구나 글쓰기는 누가 시키지도 않는다. 잘 쓴다고 누가 보상해주지도 않고, 못 쓴다고 해서 누가 혼내지도 않는다. 하지만 글을 쓰지 않으면 일상이 금세 건조해지고 삶이 덜컹대기 시작하며 급기야 멈추게 된다. 지난 십 년간 수차례 경험한 바다. 내게 글쓰기는 심장까지는 아니더라도 혈관 정도의 의미를 띤다고 할 수 있다. 혈류 공급이 멈추면 모든 세포가 시들어가다가 죽음을 맞이하듯이, 글쓰기를 멈추면 내 이성과 감성, 생각과 마음이 힘을 잃고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된다. 살아 있어도..
시험받지 않은 믿음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한 번도 흔들려본 적 없는 믿음의 결정체가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이 흔들리며 견뎌낸 인고의 열매다. 흔들려봐야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흔들림의 다른 이름은 유혹 혹은 시험이다. 시험받지 않은 믿음은 힘이 없다. 유혹을 견뎌내고 극복하고 지켜낸 믿음만이 힘이 있다. 지적인 설득과 깨달음은 육체적인 고통과 인내를 동반한 숱한 시간들의 적분을 통해 비로소 영적으로 강한 믿음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숙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고 싶다면 유혹과 시험을 받지 않게 해 달라는 것보다 닥쳐온 유혹과 시험을 건강하게 통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무풍지대가 아닌 잔잔한 호수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 뜻 모를 권태, 그리고 느닷없이 찾아오는 탈진까지,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일상의 붕괴현상은 의외로 아무 일도 없는 평온함에서 더 자주 온다. 누구나 안정을 원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안정적이면 아무런 긴장도, 스트레스도 사라져 나태해지기 쉬우며, 나아가 미래에 대한 소망과 살아야 할 이유까지도 점점 망각하게 되어 자기만의 작은 세상 안에 갇힌 채 세상을 등지고 홀로 조용한 죽음을 기다리게 된다. 그곳은 평온함을 주는 잔잔한 호수가 아니라 죽음의 장소, 무풍지대일 뿐이다. 일상의 작은 소란들이 우리를 살아있게 한다. 반복되는 잡음들,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의 무게, 그 무게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들. 이런 것들을 원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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