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 놀기서부터 농구, 배드민턴을 거치며 거의 매일같이 운동을 즐기던 일상이 아이 중심의 생활체제로 바뀌면서 갑작스럽게 무너져 버린지도 벌써 3년이 다 되어간다. 중간중간에 부쩍 늘어버린 체중을 한탄하며 다시 배드민턴 라켓을 잡기도 했었지만, 육아의 중요성과는 도저히 바꿀 수는 없었다. 이제 출국이 두달도 채 남지 않았다. 준비할 게 이것저것 있지만, 중요한 사실은 아무리 철저히 준비한다 해도 새로운 환경에 직접 가게 되면 여기서는 도저히 예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한다는 것. 그러므로 생활의 편리를 위해 이것저것 눈에 보이는 것들을 생각하고 고민하며 챙기는 것 보단 낯선 세상에서의 변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강한 마음가짐 그리고 큰 문제가 와도 받아낼 수 있는 마음의 큰 그릇을 준비하는 게 중요하..
'잃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버린다는 것'은 결국 내 손에서 사라지는 결과는 매한가지이겠지만, 슬픈 일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후자에게는 의지라는 게 담겨 있어서 일게다. 즉, 버린다는 것은 능동적인 잃음이라고 해야 그래도 엇비슷하게 의미를 전달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잃는다는 것은 수동적인 빼앗김으로 대치될 수 있는데, 어찌 보면 그저 슬픈 일이라기 보단 억울함이 내재된 어쩔 수 없는 치욕스러운 일일 수도 있겠다. 말장난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잃는다는 것과 버린다는 것의 차이는 이렇듯 극명한 게 틀림 없다. 그렇다면 이번엔 lose의 측면이 아닌 gain의 측면은 어떨까. 그런데 재미난 것은 잃는다는 것의 반대말은 얻는다는 것이지만, 버린다는 것의 반대말은 존재하지 않는..
내 나이 서른 중반에 접어들어서야 '묵인'의 힘을 비로소 알게 된다. 군중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무언의 인정, 묵인. 비록 알고도 넘겨 버린다는 의미를 가진 말로도 해석이 되지만, 넘겨 버린다는 자체가 벌써 '인정'의 힘을 지니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더욱이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무언의 인정에 동참하는 이른바 '암묵적 묵인'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힘을 내재하고 있다. 어쩌면 원만한 인간관계의 핵은 바로 여기, 암묵적 묵인을 얼마나 교묘하게 잘 소화해 내는가에 달려 있다 해도 무방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암묵적 묵인은 일자리도 창출해 낸다. 언젠가부터 일자리라는 개념은 너무나도 많이 변질이 되어 다만 입에 풀칠만 할 수 있어도 그것은 곧 일자리로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
올림픽대로 위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나름대로의 멋이 있다. 초록의 그라데이션을 풍성하게 만들어내며 내 살갗을 때리는 햇살은 언제나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오늘 아침이 그랬다. 마침 집으로 돌아오는 자가용 안에서 맞이한 반가운 햇살이었다. 며칠 연이어 흐린 날씨에 기운이 없었는데 빛은 나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 넣어 주는 것 같았다. 차가울만큼 냉정하고 객관적이고 싶어하는 나에게 따뜻한 온기를 공급해 준거다. 복잡하고 부정적이었던 모습이 심플하고 긍정적인 면으로 상승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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