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구름 걸으면 물방울이 얼굴에 와닿는다. 쓰고 있던 안경이 그 증거다. 작은 물방울들이 알알이 맺혀있다. 손바닥을 위로 향하며 허공을 향해 팔을 펼쳐본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없다. 물방울은 위가 아닌 앞에서 온다. 나는 비를 맞고 있는 게 아니라 구름 속 한가운데에 골고루 퍼져있는 물방울들을 맞닥뜨리고 있는 것이다. 눈을 들어 먼 곳을 본다. 도시 전체가 구름 속에 잠겨 있는 듯하다. 안개라고 해야 할까, 구름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맞은 건 빗방울일까, 아니 그저 수증기일 뿐일까. 뭐라도 상관없다는 생각. 하지만 다행이라는 생각. 유독 무진기행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날 늦은 오후, 나는 글을 쓰고 있으니.
평안하기를 잔뜩 찌푸린 하늘, 잿빛의 그라데이션이 곧 내릴 비를 예언한다. 푸른 하늘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캘리포니아에서 매일 같이 습관처럼 맞이하던 그 청명한 하늘이 그립다. 이제 곧 아이들은 하늘을 그리라고 하면 무슨 색의 물감을 선택할까. 하늘색 크레용을 보고 왜 이름이 하늘색이냐고 묻는 아이들이 나오지 않을까. 오늘 밤부터 내일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는 소식이다. 모처럼 일찍 집에 온 아들은 때마침 배달된 새로 산 축구화를 들고 무슨 생각에 잠길까. 아들과 공 차러 가는 일정은 하는 수 없이 며칠 뒤로 미뤄야겠다. 퇴근 길이다. 버스의 커다란 앞유리에 벌써 빗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지난 주말에 벚꽃을 구경하고 온 건 완벽한 타이밍이었던 셈이다. 내리는 비, 떨어지는 꽃잎, 마..
대청호 강렬한 햇살. 광활한 호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한 적막.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탁 트인 가슴을 맞이한다. 주위를 둘러싼 벚꽃길을 걸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소중한 시간들. 아무런 일정이 잡히지 않는 주말이면 대전의 명소를 둘러보기로 작정했었다. 처음 찾은 대청호는 눈부셨다. 경건한 마음이 되려는 찰나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다. 우린 셋 다 동시에 호떡이다, 라고 말하며 피식 웃었다. 주차를 하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다름 아닌 호떡집. 세 개 육천 원. 찹쌀 호떡이었다. 뜨거워서 화상 입지 말라고 호떡 하나를 감쌀 만한 크기로 자른 마분지 세 개를 꼭 가져가라고 말씀하시는 호떡 아주머니. 저기 올라가면 뭐가 있어요?, 하고 물으니, 대뜸 첨인교?, 하며 되물으시는 눈..
자투리 시간: 읽고 쓰기와 멍 때리기 이전 포스팅에서 하려고 했던 말인데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힘 빼기에 대해서 써버렸다. 잔뜩 힘을 주며 살아왔던, 동시에 내게 없는 힘을 마치 가지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티 나지 않게 자랑하려고 머리를 굴리던, 30대까지의 아이의 인생에 대해 할 말이 많았었나 보다. 그렇다면 정작 힘을 빼고서 자투리 시간에 해야 하는 혹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하릴없이 자투리 시간에 유튜브나 보고 앉아 있는 것은 경계하자고 이미 얘기했다. 사실 이것은 비단 유튜브에 국한되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확장되는 얘기다. 딱 하루만이라도, 아니면 일과 후만이라도 스마트폰을 끄고 혹은 와이파이를 끄고 지내보라. 무엇을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이미 당신은 중독..
힘 빼기 동시에 두 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두 가지 일 사이를 신속하게 오갈 수 있는 능력과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일 뿐이다. 집중력이 좋은 사람은 꽤 많지만, 두 가지 일을 빠른 속도로 오갈 수 있는 능력은 희귀하므로 멀티태스킹을 할 수 있다는 건 능력으로 인식된다.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것도 이러한 멀티태스킹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시간을 늘여서 봐야 한다. 분 단위나 초 단위로 여러 가지 일 사이를 오갈 수 있는 능력을 멀티태스킹이라고 일반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면, 짜투리 시간 활용은 몇십 분 단위로 혹은 시간 단위로 여러 가지 일을 오가며 처리할 수 있는 행위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일을 하다가 한..
오스트리아 빈 (비엔나) 나들이 : 사진 속 단편들 #10 - 쇤부른 궁전 벨베데레가 근사한 미술 전시관이라면, 쇤부른은 그야말로 궁전이다. 18세기 합스부르크 왕가의 부와 권력을 상징하듯 쇤부른 궁전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여름 별장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이럴수가! 별장이라니!). 천 개가 넘는 방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건물. 관광객에겐 마흔 개 정도만 공개되는 곳. 우린 오디오 가이드를 받으며 그곳을 모두 구경했다. 구하기 힘든 나무로 방을 도배했다느니, 금칠을 했다느니, 어떤 유명한 미술가가 그림을 그렸다느니 하는 말들이 곳곳마다 그 방을 설명하고 있었다. 기억에 남는 방 중 하나는 모짜르트가 첫 피아노 연주회를 했다고 전해지는, 그러나 지금은 피아노가 없는, 방이었다 (그렇다. 모짜르트도 오스트리..
오스트리아 빈 (비엔나) 나들이 : 사진 속 단편들 #9 - 벨베데레 궁전 빈 여행을 계획한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 중 하나. 이름부터 멋들어진, 벨베데레 궁전 (얼마 전 페북 바탕화면으로 바꾼 사진 속 건물이다). 이 궁전을 제대로 구경하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지불하더라도 실내로 들어가 클림트를 비롯한 여러 예술가의 작품을 구경할 필요가 있다. 벨베데레 궁전은 18세기 초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건물이다. 상궁과 하궁, 그리고 벨베데레 21이라고 이름 붙여진 현대 미술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건물들 사이에는 아름답고 거대한 규모의 정원이 잘 조성되어 있다. 대표적인 오스트리아 출신 예술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은 상궁과 하궁 모두 비치되어 있는데, 상궁에 좀 더 많은 작품들이 ..
오스트리아 빈 (비엔나) 나들이 : 사진 속 단편들 #8 - 야경 오스트리아 빈은 해가 진 이후에도 걷기에 안전했다. 미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화려한 밤거리를 등진, 어두운 뒷골목을 연상시키는 후미진 거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미국에서 11년 (그중 엘에이 근교에서 6년)을 살다 온 나로서는 일종의 충격이었다 (미국에선 일반적으로 안전을 위해서 밤에는 걸어다니면 안 된다). 그리고 그 충격이 부러움으로 바뀌는 데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정말 놀라운 것은 경찰차 보기가 힘들었다는 점이다. 낮에도 수시로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다니는 경찰차로 인해 긴장과 불안이 조장되는 미국의 거리와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빈번한 경찰차의 순찰이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오스트리아 빈 (비엔나) 나들이 : 사진 속 단편들 #7 - 슈니첼 나름 요리를 좋아하는 내가 이번 오스트리아 방문에서 음식을 기대한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5박 6일 일정이었지만, 학회 참석이 주목적이었기 때문에 정작 빈을 관광한 건 두 반나절이었다. 제한된 시간 내에 추천받은 여러 음식들을 다 섭렵하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했기에 나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다. 사실 딱히 오스트리아 전통 음식이랄 것도 없는 것 같지만 그나마 대표적인 게 슈니첼이었다. 슈니첼은 소고기나 닭고기를 얇게 펴서 밀가루와 빵가루에 묻혀 바삭하게 튀긴 뒤 소금 간을 해서 짭쪼름하게 만든 놈이었다. 그냥 먹어도 간이 대충 맞았지만 정석은 소스에 찍어 먹는 것이었는데, 그 소스가 말이지 우리가 생각하는 돈까스 소스처럼 밀가루, 케첩, ..
오스트리아 빈 (비엔나) 나들이 : 사진 속 단편들 #6 - 크로와상과 카푸치노 5박 6일의 짧은 일정 동안 맞이했던 다섯 번의 아침 식사.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는 카푸치노를 마셨고, 크로와상과 이름 모를 빵으로 만든 샌드위치를 먹었다. 사진은 연구소와 호텔 바로 옆에 위치한 조그마한 카페에서 주문한 나의 첫 아침식사다. 가격도 6-7 유로 정도였으니 그리 비싼 편도 아니었다 (파리 바게트에 가도 비슷한 가격이 나오지 않는가. 아니, 오히려 한국이 비싼 편인 듯 싶기도 하고). 커피가 맛있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illy 빈을 사용하고 있었다. 미국에 있을 땐 자주 마시기에는 조금 비싼 편이라 엄두를 잘 내지 못하던 브랜드였는데, 오스트리아에서 맞이한 첫 아침식사에서 illy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샌..
오스트리아 빈 (비엔나) 나들이 : 사진 속 단편들 #4 - 건물과 거리들 학회 마지막 날, 일탈을 감행하며 도나우 강을 보러 혼자 막무가내로 길을 걷다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빈의 모든 거리가 사진처럼 거대한 레고 블록들로만 이루어진 건 아니다. 그러나 트램이 빈번하게 다니고, 쇼핑 거리가 즐비하며, 레스토랑과 카페, 극장과 공연장, 공원, 학교와 연구소, 그리고 여러 관공서들이 늘어선 다운타운 근방은 모든 골목이 사진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느 도시를 가든 그 도시를 가장 대표하는 건 아무래도 건물일 것이다. 저마다 다른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수많은 건물 이면엔 역사와 전통이 흐르기 마련이고, 거기엔 주민들의 일상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저 거리들을 10킬로미터 이상 걸으며 나는 그곳의 공기를 ..
오스트리아 빈 (비엔나) 나들이 : 사진 속 단편들 #4 높은 천장은 사람을 낮아지고 겸허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나 그랜드캐년을 앞에 두고 자신의 외소함, 아니 존재의 가소로움을 느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형식은 내용을 만들기도 유지하기도 강화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내용 없는 형식은 껍데기일 뿐이지만, 내용을 담지한 형식은 내용을 완성한다. 형식을 내용과 분리시켜 비난하고 악마화시키는 모든 행위는 내용의 부재로부터 상처받은 몸부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이자 구속자로 믿고, 예수를 참 왕, 참 선지자, 참 제사장의 삼중직을 모두 담당하신 그리스도, 나의 구원자, 나의 주인으로 믿으며, 지금도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비록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오스트리아 빈 (비엔나) 나들이 : 사진 속 단편들 #3 빈의 거리를 걷다 보면 트램과 버스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빽빽이 들어선, 오래된 건물들처럼 대중교통 역시 도시와 사람과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잡은 모습이었다. 어딘가로 이동할 땐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다니는 듯했다 (차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철길 위를 가야 하는 구간도 많아 보였고, 일방통행 구간이 많아 지리를 잘 알지 못하면 운전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어디를 가든 기본적으로 자가용을 이용하는 미국에서의 삶에 익숙했던 나에겐, 그리고 한국에서 출퇴근 시 버스를 이용하는 나에겐 이상적으로 보였다.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는 5박 6일간 대부분을 걸어다녔지만, 경험 상 트램을 몇 번 타봤..
오스트리아 빈 (비엔나) 나들이 : 사진 속 단편들 #2 호텔이라기보다는 아파트에 가까운 숙소에서 나를 반긴 건 사진 속 물이었다. 그냥 물이겠거니 하며 뚜껑을 열었는데, 가볍게 치~ 하는 소리가 나며 조그만 거품이 일었다. 스파클링 워터 (탄산수)였던 것이다. 미국에서 일할 때 이탈리아, 스페인 등 여러 유럽 출신들이 있었는데, 문득 그들이 물 대신 탄산수를 자주 마시는 걸 본 기억이 났다. 사실 그들 때문에 나도 캘리포니아에서 탄산수를 집 냉장고에 늘 채워두고 즐겨 마셨다. 여기 한국에서도 그 습관을 좇아 냉장고엔 항상 탄산수가 끊이질 않는다. 콜라나 사이다, 환타 같은 탄산음료는 너무 달고, 맥주를 매일 마시자니 3년 전처럼 통풍이 올까 두렵기도 해서, 라임이나 레몬향이 가미된 탄산수를 청량감과 갈..
오스트리아 빈 (비엔나) 나들이 : 사진 속 단편들 #1 직진하면 부다페스트, 우회전하면 프라하. 지도상으로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의 동쪽, 체코는 북쪽에 위치하고, 부다페스트와 프라하를 직선으로 이으면 빈은 중간 정도에 위치하니, 표지판의 화살표는 정확한 방향이 아니라 그곳에 가 닿을 수 있는 길이 연결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역사 속, 혹은 문학 속에서나 듣고 상상했던 장소가, 이름을 나지막이 되뇌이면 노랫말 가사처럼 혹은 어떤 한 편의 시에 등장하는 매혹적인 단어처럼 느껴지는 바로 그 지명이, 내 눈 앞 표지판에 똑똑이 새겨져 있었다. 두세 시간이면 운전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자체가 나는 도무지 현실 같지 않았다. 아, 부다페스트와 프라하의 공기는 어떨까. 빈을 넘어서, 언젠간 그곳의 거리들도 ..
오스트리아 빈 (비엔나) 나들이 2 셋째 날 - 다섯째 날 오스트리아 빈에서 보내는 5박 6일이 저문다. 언제나 그렇듯, 마지막 날은 아쉬움의 날이다. 근처 카페에 가서 빵과 카푸치노로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학회 마지막 날을 시작한다. 다시 잿빛 하늘이다. 미국에서 참석했던 학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미국 영어와 유럽 영어의 차이도 한몫 했을 테고, 이번 학회의 주제가 발생생물학에 치우쳐 있다는 점도 한몫 했을 테지만, 그것보다는 기초과학을 향한 열정의 순수함의 정도가 내겐 다르게 느껴졌다. 좀 더 자본주의의 냄새가 덜 났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응용과학보다 기초과학을 선호하는 나에겐 뒤늦게 만난, 그러나 이젠 몸을 담을 수 없는, 물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2011년, 내가 미국이 아닌 유럽으..
오스트리아 빈 (비엔나) 나들이 첫째 날 오후 ‘완벽한 하루’란 의도하지 않은, 아니 오로지 바라기만 할 수 있는, 아니 예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으로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나는 나의 첫 유럽, 오스트리아 빈에서 내게 주어진 제한된 시간을 일부러 듬성듬성한 계획으로, 절반 이상은 무계획에 가까울 정도로, 가득 채웠고, 꿈만 같은 순간들을 경이와 감사로 맞이할 수 있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오스트리아 땅에 내 두 발이 처음 닿았을 때 나를 반겼던 잿빛 하늘을 기억한다. 12년 전 처음 클리블랜드에 발을 디딜 때 느꼈던 그 음울한 하늘이었다. 기억이란 요상하다. 언제나 기억하고자 하는 바람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새 장기 기억 저장소에 자리잡고야 마는 것이다. 궁금해진다. 나의 오스트리아는 과연 어떤 ..
이성과 허세와 관습 아무리 이성적으로 심사숙고하고 합리적인 판단에 이르러도 관습을 넘어서지 못할 때가 비일비재하다. 인간은 생각하는 대로 살기보다는 살아온 대로 습관대로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성을 사용할 수는 있어도 대부분의 경우 이성적으로 살아가진 않는다. 왜일까. 자기 유익 때문일 것이다. 생존본능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적 판단을 하고 그 판단을 실행에 옮기는 행위를 우리들은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짐승과 다른 인간의 특별함이라고 믿는, 인간의 우월성을 대변하는 일종의 대전제 같은 것일 게다. 이러한 대전제를 전적으로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여기에 묻어가며 스스로의 행동을 개의치 않는 사람들은 자기 객관화를 좀 했으면 한다. 미안하지만 그들은 착각, 대착각을..
양극성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기 때문에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다가도 여전히 인간에게 희망을 거둘 수 없는 이유는 인간만이 자기 객관화에 이르러 이타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짐승은 이기적이지 않지만 이타적일 수도 없다. 인간에겐 절망과 희망, 어둠과 빛이 공존한다. 이러한 양극성은 인간이 처한 궁극의 딜레마일지도 모른다. 원래 인간이 선한가 악한가 묻는, 이 오래된 질문은 타자를 배제한 상태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인간이 누구에게도 무엇에게도 영향받지 않는, 완벽하게 주체적인 존재라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한 질문이다. 선한 인간도 누군가와 함께 하면 악해질 수 있고, 악한 인간도 누군가와 함께 하면 선해질 수 있다. 이기적이란 말은 자기밖에 모른다는 말인데, 자기라는 말이 존재하려면 타자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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