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 언제나 어려운 덕목이다. 풍요롭고 안락한 삶에 쉬이 길들여지는 나로선 지평선처럼 무지개처럼 가 닿기에 불가능한 무엇인 것만 같다. 나라는 좁은 우물 안에서 빠져나와 나 자신을 그나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여전히 나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데에 익숙하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근육이 감소하고 눈이 침침해지고 피부가 탄력을 잃고 머리가 빠지고 하얘지며 얇아진다. 노화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마흔을 넘기면서 나는 노화를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올해로 벌써 6년차. 거울 따윈 잘 쳐다보지도 않고 패션은 남의 일이라 여기며 살아왔던 내가 거울을 통해 내 몸과 얼굴과 머리를 보게 된 것도 이 시기와 겹친다. 노화를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가속화시키지 않을 순 있다. 이른바 노화의 속..
매이지 않는 삶과 기꺼이 매이는 삶 매이지 않는 삶을 꿈꾼다. 출근 전과 퇴근 직후에는 한 여자의 남편으로 한 아이의 아빠로, 일과 시간에는 창의성과 숙련된 전문성을 발휘해야 하는 생물학자로, 자기 전 한두 시간 동안은 무명작가이자 아마추어 문학도로 살아가는 삶. 그러나 남편으로도, 아빠만으로도, 생물학자로도, 작가나 문학도로도 규정되지 않는 삶. 아, 자유로이 여러 정체성 사이를 오가며 매이지 않고 치열하게 즐길 수 있다면. 그러나 모든 삶은 무게를 가진다. 무게는 힘을 생성한다. 그 힘은 모두를 끌어당긴다. 끌어당기면서도 다른 삶에 끌려간다. 각 정체성은 관성의 힘으로 전체인 나를 속박하려 한다. 나는 쉽게 속박된다. 거기엔 매번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그러는 사이에 일부의 나는 배제된다. 힘의 논리..
기억되는 건 내용이 아닌 행위 버스가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기다리거나 앉아 가는 동안엔 휴대폰 메모장에 뭔가를 끄적일 수 있다. 하지만 서서 가는 동안엔 넘어지지 않게 몸의 균형을 잡고 창밖을 바라보는 일밖엔 딱히 할 게 없다. 그때 나는 생각에 잠긴다. 조금은 외롭고 쓸쓸하다는 기분도 함께 느낀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중고등학생 때나 대학생 때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던 시절의 나로 돌아간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대학 1학년 땐 삐삐가 있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갖은 생각에 잠겼던가. 특정한 생각, 이를테면 창의적인 생각 같은 건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쌓이고 쌓인 그 숱한 시간들은 나의 잠재의식과 무의식 저변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떡 하니 자리 잡..
오늘은 하루종일 영하의 기온에 잠겨있다. 따스해 보이는 양지에 서 있어도 전혀 따뜻하지 않는 날. 칼바람은 재킷 빈틈을 뚫고 들어와 겨울임을 증명한다. 나는 귀가 에리는 기분이 싫어 허겁지겁 모자를 쓴다. 마스크 사이로 비집고 나온 입김이 성가시다. 안경이 뿌옇게 되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 안경을 쓴 일을 나는 또 후회한다. 점심으로 칼국수를 먹었다. 물총조개가 들어 있는 칼국수다. 파전도 하나 시켜 오피스를 같이 쓰는 동료와 함께 해치웠다. 계산을 하려고 하니 동료가 오늘은 기어코 자기가 사겠노라고 떼를 쓴다. 기분 좋게 점심을 얻어먹고 밖으로 나오니 춥지가 않았다. 역시 인간은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 마음과 생각이 달라지는가 보다. 철학적인 사유를 한바탕 풀어헤쳐놓고 나는 괜히 멋쩍어진다. 인간이 인..
관점을 달리하여 바라보기 오늘 아침 추위에 떨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하필 버스 정류소가 빵집 앞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엔 눈에도 들어오지 않던 빵집이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보였다. 나는 성냥팔이 소녀가 되어 따뜻한 빵집 안을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버스를 더 많이 기다려야 했다면 나는 아마도 들어가고 말았을 것이다. 관점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동일한 것도 어디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관심에 전혀 없던 것들이 문득 삶의 한복판에 자리잡기도 하고, 그 반대의 상황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낯섦과 함께 불안을 느낀다. 일종의 스트레스다. 그러나 이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삶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낯섦과 불안은 새로움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
새로운 시작 한파주의보가 내리기 하루 전, 낮 최고 기온은 영상 6도를 가리켰다. 나는 반팔 티셔츠를 입고 미리 싸둔 짐을 들어 옮기기 시작했다. 우리의 차로는 감당하기 힘들어 장모님 차도 하루 빌려 놓은 터라 두세 번 오가면서 이사를 마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아들도 이젠 제법 힘을 쓸 줄 알아서 큰 도움이 되었다. 마침 무릎을 다쳐 고생하고 있는 아내의 역할 이상을 아들이 해주어 정말 다행이었다. 직장에서 제공하는 생활관에서의 7개월 간의 삶을 마무리짓는 날이 드디어 우리에게 온 것이었다. 책장 두 개가 갖추어진 곳, 비록 스무 평 남짓밖에 안 되는 조그만 아파트이지만 우리의 돈으로 처음 장만한 집이다. 너무 오래되고 낡아 리모델링하느라 반 년 넘게 걸렸고 중간중간에 여러 문제가 발생하여 그것들을 해..
7개월 만에 캘리포니아에서 맞이하는 아침의 한 장면을 담았다. 단 1초의 동영상. 나는 함께 풍경이 된다. 기억 속에 저장된 나의 6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 이런 기분이었지... 저 푸르고 맑은 하늘, 인사라도 건네듯 바람에 살랑이며 춤을 추는 팜트리… 이번 학회는 여러 면에서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또 언제나처럼 미련하게 그 의미들을 다 알아채지도 붙잡지도 못하겠지만, 기억에 남는 삶의 소중한 행복의 한 조각이 되기 위해 오늘을 살아낼 테다. 이제 학회 시작이다.
공항에서 일기예보를 본다. 며칠간 거머리처럼 달라붙던 비가 이제 그친다는 소식이다. 7개월 만에 엘에이 날씨와 관련 뉴스를 살펴본다. 폭우가 쏟아졌다는 소식, 과거에 비해 4-6배 가량의 강우량을 나타냈다는 소식, 그로 인해 여러 명이 죽고 실종되었다는 소식… 안타깝다는 생각도 잠시 나는 무척이나 낯설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 세계적인 기후 변화에 대한 놀라움 때문이 아니라 모두 내가 6년간 살았던 장소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소식들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있었던 곳, 내가 떠나온 자리에 대한 향수랄까 하는 것들이 또 이렇게 무참히, 그것도 반년만에 사라졌다는 사실에 나는 그저 무언가를 또 잃어버렸다는 기분에 빠진다. 그리고 전 세계에 걸친 변화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과 감정의 변화에 이토록 마음을 쓰..
델리만쥬의 향수 델리만쥬를 처음 먹었던 게 언제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기차와 지하철을 한창 타고 다닐 무렵엔 꽤 자주 사 먹었다. 역마다 델리만쥬 체인점이 있었다고 기억될 정도로 그땐 여기저기서 원하면 언제든지 사 먹을 수 있었다. 특히 추운 겨울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봉지를 손에 들고 델리만쥬를 아끼는 마음으로 하나씩 입에 넣던 기억은 끝내 향수가 되었다. 11년 만에 다시 찾은 한국에서 기차, 지하철 역을 지나칠 때마다 나는 델리만쥬 체인점을 찾느라 두리번거린다. 어제 대전에서 의정부까지 다녀오는 길에 들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연찮게 델리만쥬를 발견했다.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흥분한 나는 얼른 한 봉지를 사서 아내와 장모님께 하나씩 드리고 혼자서 단숨에 다 먹어치웠다. 그런데 이상했다...
머뭇거림 마지막에 다다를 때면 어김없이 나는 후회와 반성으로 마음이 착잡해진다. 처음에는 해야 할 것들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다음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또 해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미련 가득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원망, 자책하게 된다. 그러나 나의 불완전함이 나의 진정한 부족함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불완전함을 악마화시키고 탓하여 마치 잘만 하면 완전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내 과거를 단순화시켜버리는 비겁함이야말로 나의 고질적인 부족함이다. 이 비겁함은 삶에 아무런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도 못하면서 언제나 해답처럼 나타나 깊은 성찰을 가로막는다. 더 이상 비겁해지지 않는 것,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 믿는다. 진정한 겸손의 출발은 나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나..
보이지 않는 선 나도 많이 놀았어, 나도 게을렀었어, 하며 자신의 과거를 일부러 부정적으로 채색하여 현재 자신의 겸손을 드러내는 자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자신이 성취한 성공을 자수성가의 일환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이다. 안다. 해병대도 힘들지만 방위도 힘들다는 걸. 타자의 힘듦을 함부로 저울에 올려놓고 경중을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관건은 힘들었는지 아닌지를 가리는 게 아니다. 왜 스스로 자수성가의 신화 속으로 숨으려 하는가, 이다. 자수성가는 자랑스러운 것일까, 부끄러운 것일까. 누군가의 도움으로 무엇인가를 이루었다는 게 과연 부끄러운 일일까. 내가 무능하다는 증거일까. 오히려 사실에 가까운, 그래서 오히려 더욱 겸손한 고백이 아닐까. 자신의 거짓 겸손을 드러낼 때 타자는 배제된다. 과거에 놀..
버스 그리고 홀로 서기 한국 와서 첫 휴가를 보내고 있다. 아내는 휴가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3주 겨울방학을 맞이한 아들을 홀로 방치하지 않고 함께 하기 위해 나는 내게 주어진 휴가 일수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여전히 일을 하는데다 날씨까지 눈비를 동반하여 연일 낮은 온도를 가리키고 있어 원거리나 야외활동에는 아무래도 제약이 있는 상황 속에서 보내는 휴가가 되어 버렸다. 덕분에 아들과 단 둘이 보내는 휴가가 되었고, 나는 마치 미국에서의 삶을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다시 살아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마저 느낀다. 오늘은 암벽 등반 체험 기회를 우연히 알게 되어 대전 중앙시장 근처로 왔다. 지금은 아들을 기다리며 1층 카페에 앉아 이렇게 글을 끄적거리고 있다. 일부러 여기로 올 땐 버스를 탔다..
One step forward into the uncertainty 복학 후 학부 4학년부터, 그러니까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 계산해 보면 올해로 나는 20년 동안 실험실 생활을 한 셈이다. 오늘 고가 장비 데모 담당자와 두 시간 동안 멋지고 아름다운 사진을 숱하게 찍으면서 실험 생활에 대한 여러 얘기를 나눴다. 그중 서로 크게 공감한 부분 하나는 실험 생활에서 가장 몸과 마음이 편한 순간과 기쁜 순간이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가장 몸과 마음이 편한 순간은 ‘하기만 하면 되는’ 실험을 할 때인 반면, 가장 기쁜 순간은 ‘과연 해서 될까, 하는’ 실험을 해내고 끝내 성공시켰을 때라는 결론이 났다. 알다시피 두 순간은 서로 상반되는 상황이다. 나는 재미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나는 나에게 물..
오랜만에 두통 따뜻했던 부산을 뒤로하고 대전에 복귀해서 피곤한 주말을 보내고 나니 비가 내렸다. 덩달아 기온도 뚝 떨어졌다. 하루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졌고 최고기온도 섭씨 한 자리에 머문다. 마침내 겨울이다. 오랜만에 장거리 여행을 했기 때문인지, 학회 참석에서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스트레스도 받아서인지, 기온이 뚝 떨어져서인지, 아니면 어젯밤 월드컵 가나 전을 보며 마음을 졸였던 탓인지, 오늘 아침에 눈을 뜨니 극심한 두통이 몰려왔다. 불청객 같은 편두통도 함께 찾아왔다. 메스껍고 어지러운 기분을 느끼며 약을 삼킨 뒤 아내와 아들이 집을 나선 뒤에도 나는 다시 침대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 오지도 않는 잠을 청하며 누워 있자니 답답하기만 하고, 그렇다고 앉아 있자니 다시 눕고 싶은 마음이 들어 몸을 어..
고향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까지 부산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그 후론 포항에서 10년을, 의정부와 연천에서 2년 2개월을, 인천에서 2년을, 서울에서 1년을, 그리고 미국에서 11년을 살았다. 부모님이 퇴직을 하신 뒤 영천으로 옮기신 것도 내가 미국 가기 수년 전이었으니, 부산은 사실상 내가 반드시 찾을 이유가 사라져 버린 도시가 된 셈이다. 학회 참석차 부산을 찾았다. 어색했다. 처음 와보는 도시 같았다. 정말 내 고향인가 싶었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물었다. 나에게 과연 고향은 어디인가, 하고. 고향이 내가 태어난 곳을 말한다면, 부산이 고향이다. 고향이 내가 가장 오래 살았던 곳을 말한다 해도 여전히 부산이 내 고향이다. 그러나 향수라든지, 옛 기억이라든지 하는 각인된 과거를 말한다면, ..
사랑과 증오, 타자와 나 신형철은 ‘인생의 역사’ 131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탄생하는 나의 분인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런 나로 살 수 있게 해 주는 당신을 나는 사랑한다.’ | 이 글을 읽고 잠시 멈칫했던 이유는 누군가를 증오할 때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을 것이다. | 누군가를 증오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를 증오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탄생하는 나의 분인을 증오한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나를 가장 증오한다. 그런 나로 살게 만든 당신을 나는 증오한다.’ | 사랑 대신 증오..
Not FOR but WITH 미국에서 일하던 시절 얘기다. 스페인 출신 실험실 동료가 이탈리아 출신 동료와 함께 옆 실험실 소속 중국인 포닥에 대한 험담을 하고 있었다. 마침 지나가던 나를 붙들고 그들은 험담을 반복하면서 나는 과연 그 중국인을 이해할 수 있냐면서 이렇게 물었다. “Are you working for our boss or with our boss?” 단번에 나는 그들이 경악하며 나를 붙잡은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중국인 포닥은 with가 아니라 for를 사용하며 자기소개를 했던 모양이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출신이 듣기에는 거북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논리였던 것이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with라고 대답했고 내게 질문했던 두 사람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과학계에서는..
아쉬움과 소소한 행복의 경계에 서서 갑자기 추워지는가 싶더니 그것도 며칠. 기온은 다시 뒷걸음쳐 거의 한 달간 제자리에 멈춘 듯하다. 한낮에는 아직 반팔만 입어도 실내에서 활동하기엔 별 문제가 없고, 밤이나 이른 아침엔 외투 하나 걸치면 불편함 없이 지낼 만하다. 캘리포니아에서 보내던 가을 같은 겨울과 별 다른 차이를 못 느낄 정도다. 12월이 되면 달라지려나. 7년 만에 맞이하는, 곧 닥칠 겨울에, 그게 뭐라고,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나도 모르게 은근히 기대가 되나 보다. 진짜 겨울을. 어제는 부쩍 커버린 아들 겨울 외투도 하나 장만했는데, 내 것도 하나 살까 하다가 말았다. 장롱 속엔 캘리포니아로 오기 전에 입던 두꺼운 외투 두 개가 약간 낡았을 뿐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 올 겨울은 그냥 이렇게..
폼 롤러 클리블랜드 시절은 나에게 크고 작은 정신적, 육체적 흔적을 남겼다. 그중 하나가 수면 장애다. 2014년 즈음부터 나는 깊은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어릴 적엔 머리만 대면 5분 이내로 잠이 들었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 바로도 나는 잠 때문에 고생한 적은 없다. 그러나 지금은 일 년 중 잠을 잘 잤다고 느끼는 날이 겨우 손꼽을 정도다. 거의 매일 밤 나는 잠들기 전 한 시간 안팎을 뒤척인다. 설상가상인 것은 잠이 겨우 들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두세 시간마다 나는 잠에서 깬다. 정확히 한 시간 단위로 잠을 깨어 시계를 보며 나는 내가 미친 뻐꾸기라도 된 것 같은 기분에 종종 깊은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덫에 걸린 듯한 심정이 되는 것이다. 아내가 2년가량 일찍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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