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포처럼 나이 들 수 있다면《세포처럼 나이 들 수 있다면》이 출간되었습니다. ‘탄생, 노화, 다양성을 이해하는 발생생물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과학대중서입니다. 교양 수준의 과학 지식이 담겨 있습니다. 중고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썼습니다. 특히 역노화, 안티에이징, 저속노화가 유행인 시대에, 안 늙으려고 발버둥 치는 게 아니라 잘 나이 드는 법이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알아보고 철학적으로 사유해 보는 의미 있는 책입니다. 또한 여러 선천성 기형을 가지고 계신 우리의 이웃들을 발생생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덕분에 비로소 다양성이라는 아름다운 개념을 받아들이는 인식론적 개혁이 일어나게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 가능합니다.알라딘: https:..

KOMOREBI: 똑같지만 똑같지 않은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이 영화의 호평을 이미 여러 번 들었고, 평범하고 소박한 삶에 대한 찬사가 연이어졌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일상을 잃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나도 그중 하나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싱가포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무슨 영화를 볼까 고르다가 이 영화가 보였을 때 플레이 버튼을 누른 건 나로선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었다.의외였다고 해야 할까. 내겐 이 영화가 일상의 찬사만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내게 보인 건 아름다움보다는 외로움이 컸고, 아름다움도 외로움도 아닌 그 둘을 초월한 그 무엇이었다. 외로움을 겪어내지 못한 아름다움은 공허하며, 아름다움을 경험하지 못한 외로움은 처절하기 마련인데, 내겐 이 영화의 메시지가..

싱가포르무슨 책을 가져갈까 책장을 수십 분 쳐다본다. 다 이유가 있어 들여왔지만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년 동안 외면받던 책들의 눈길은 은근히 따갑다. 죄책감마저 느껴지는데 이마저도 다시 책을 읽게 되는 하나의 동력이 된다. 그리고 이런 시선을 느끼는 예민함도 다 내가 책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진 탓이리라. 나는 어젯밤 그들을 하나하나 만져주며 훑어보았다. 학회 참석 차 싱가포르로 간다. 3박 5일 일정이다. 세 권을 골랐다. 학회 시간에는 과학 공부에 집중해야 할 테지만, 비행기로 오가는 시간이나 밤 시간을 활용하면 충분히 한두 권은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예상은 어긋나기 마련이라 어찔 될지는 모르겠다. 이동 중에는 한창 읽던 책이 아닌 경우 장편소설보다는 단편소설을 선호한..

대중성이 아닌 예술성의 이면레프 톨스토이 저, '하지 무라트'를 읽고아바르인 산민 하지 무라트는 캅카스의 이름난 전사이자 나이브였다. 나이브는 이슬람사회 부족장 또는 장수를 뜻한다. 하지 무라트는 실존 인물이었다. 톨스토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이 꺾어 던져버린 '타타르 풀'이라고도 불리는 엉겅퀴의 굴하지 않는 생명력에 경탄하며 오래전에 들은 하지 무라트에 관한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과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하지 무라트가 꺾인 엉겅퀴처럼 잘린 머리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의 짧은 기간을 재구성했으며, 1828년생인 톨스토이가 많은 시간 깊은 애정을 들여 1904년 완성했지만 그의 의지에 따라 1912년, 그러니까 그의 사후 2년 뒤에 출간되었다.작품의 역사적 배경은 러시아가 ..

과학대중서: 세포처럼 나이 들 수 있다면시기가 흉흉하나 일상의 시계는 오늘도 돌아갑니다. 생각의힘 출판사에서 또 하나의 과학대중서가 곧 출간됩니다. 탄생, 노화, 다양성을 이해하는 발생생물학 수업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입니다. 저의 네 번째 저서이기도 합니다. 인쇄와 제본을 모두 마치고 다음주 중에 서점에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제안에 따른 띠지에 들어간 사진이나 철학하는 과학자라는 표현이 아직 저에겐 부끄럽게 느껴지지만, 책은 신뢰성과 상품성이 중요하다는 말에 출판사의 제안을 따랐습니다. 잘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에 구매 가능하게 되면 조금 더 상세한 정보와 함께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일상이 되었다는 것어떤 일이 일상이 되었다는 표현은 그만큼 그 일을 자주 하게 되어 특별히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는 뜻을 나타낸다. 어떤 사람은 그 일이 어느덧 마치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대소변을 보거나 혹은 숨을 쉬는 것처럼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생리적인 것들을 예로 들 만큼 자연스러워지는 건 있을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일상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다분히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것들을 포함한다. 이를테면 설거지, 방 청소, 화장실 청소 같은 행위들 말이다. 즉, 어떤 일이 일상이 되었다는 건 그 일을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을 넘어 하기 싫을 때도 해야만 하는 일이 되었다는 뜻을 포함한다. 일상은 일반적으로 하고 싶은 일들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

구원하는 공감김민석 글, 안정혜 그림, ‘영생을 주는 소녀’를 읽고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책. 텍스트가 미처 전달하지 못하는 여백을 그림으로 충만하게 채우는 책. 세 권으로 구성된 ‘영생을 주는 소녀’는 만화책이다. 두 시간 만에 세 권을 내리읽었다. 나도 모르게 몰입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만화책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이 작품의 키워드는 폭력과 기독교라고 할 수 있겠다. 작품 속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폭력은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성폭력이다. 에붐의 대표 이도연은 스스로가 성폭력의 피해자다. 가해자는 윤민후 목사, 윤다라의 아버지다. 주인공 윤다라는 아버지가 강단 앞에서는 훌륭한 목사이지만 강단 뒤에서는 어머니를 때리고 여러 여성 교인들을 성추행 및 성폭력 대상..

순응의 그늘 밑에헤르만 헤세 저, '수레바퀴 밑에'를 다시 읽고재독의 힘은 초독 때 주변으로 밀려났던 것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로 발현된다. 또한 독자의 눈을 넘어 작가의 눈으로 읽는 텍스트는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다. 멀리 떨어져 관조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풍경 속으로 성큼 들어가 그것과 동화되어 이전보다 공감각적이고 입체적인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 7년 만에 다시 읽은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는 특히 그랬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작품을 나는 재독이 아닌 삼독을 했다. 중학생 시절에 가장 먼저 읽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때마다 나는 헤세를 찾았던 것 같다. 자아의 발견, 성찰, 성장, 성숙, 그리고 분열을 거치고 마침내 합일에 이르는 내면의 여..
기득권층의 관성차등은 차별이 되기 쉽다. 독재자가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지배 방식 중 하나가 바로 차등이라는 개념이다. 표면적으로는 공정하게 보일지 모르나 그 차등이라는 게 오로지 독재자의 주관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공정성이라는 개념은 상실될 수밖에 없다 (독재자는 당연히 그것이 자기의 주관에 의한 게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려고 애를 쓸 것이다). 차등 제도로 인해 혜택을 받은 자들은 경쟁사회에서 선택받고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다행으로 여긴 나머지 혜택 받지 못한 자들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겸손은 그저 자기 역량을 낮추면서 자기가 선택받게 되어 감사하다는 말 정도에 그친다.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겸손을 표현하든지 안 하든지 상관없이 이렇게 차..
도스토옙스키와 헤세마흔이 다 되어 갈 무렵 다시 시작된 나의 독서 여정의 출발점은 헤세였다. 유리알 유희를 마지막으로 현대문학에서 출간한 헤세 선집을 모두 읽었을 때 느꼈던 감격은 잊지 못할 추억이다. 이후 나는 한 작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읽어 내려가는 방식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이 되었고, 헤세 다음으로 읽을 작가를 선별했었다. 그러다가 걸린 작가가 도스토옙스키였다. 나는 그 당시 도스토옙스키가 헤세보다 더 어렵고 두꺼운 작품들을 많이 썼다는 사실을 대충 들어 알고 있었는데 바로 그 점이 어떤 도전감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대표작이라 부르는 5대 장편만이라도 먼저 읽어 보자고 다짐했었다. '죄와 벌'로 시작해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로 5대 장편을 마쳤을 때 느꼈던 감격 또한 지금도 생생하다. 나..
포용과 방관과 상대주의 사이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이것도 저것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방관자에 머무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회색분자, 양다리를 걸친 우유부단한 자의 이미지로도 비치는 그 사람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과연 중간은 어디인가? 치우치지 않는다는 건 허상 혹은 환상에 불과한 것인가? 치우치지 않고 중앙에 위치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누가 모델인가?한 우물 안에 갇혀 바보처럼 행복하다가 어느 날 어떤 만남을 계기로 우물 밖의 세상을 알게 되고 자기의 안전지대였던 우물이 온 세상이 아니라 여러 우물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가 우물 밖을 스스로 걸어 나올 때는 자칫 습관에 의해 살던 관..
초월자의 모습어떤 사상이나 이념 혹은 가치체계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것을 초월한 자의 모습은 어떨까? 누가 봐도 초월자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하게 보일까? 나는 오히려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초월자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적당히 세속적이고, 울고 웃고 장난도 치고 인생을 즐기며 살고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 같다. 평범한 사람과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 사람의 평범한 일상은 초월을 경험한 이후에 다시 얻은 평범한 일상이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제자리인 것 같지만 굴곡진 먼 길을 거치고 마침내 돌아온 자의 모습이 바로 초월자의 모습이지 않을까 한다. 일상의 소중함은 일상을 잃어본 자만이 아는 특권이라고 믿는 나는 초월자의 모..
운의 두 경로: 만남과 타이밍얼마 전 포스팅에서 인생은 팔 할 이상이 운으로 이뤄진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운은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고도 했다. 이번 글은 그 운의 주요 경로를 내 경험에 비춰 두 가지로 얘기해 볼까 한다. 하나는 만남이고, 다른 하나는 타이밍이다.나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사람에게서 온다고 믿는다. 반대로 가장 큰 저주도 사람으로부터 온다고 본다. 사람은 사람에게서 가장 큰 축복도 가장 큰 저주도 받게 된다. 만남을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만남의 대부분은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어느 날 도둑 같이 찾아오게 된다는 점에서 운이라 할 수 있다. 혹시 만남이 운이라는 표현이 탐탁지 않은 분들을 위해 예를 세 가지만 들어보겠다. 하나는 부모와의 만남이다. 우리에겐 부..

Embrace"Despite knowing the journey and where it leads, I embrace it. And I welcome every moment of it." 영화 ‘Arrival’ 끝부분, 주인공 루이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저 문장을 말하는 순간을 기억한다. 결연한 의지를 느꼈고,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을 만큼 경건해지는 순간이었다. ‘Embrace’라는 단어의 다른 측면을 알게 된 경이로운 순간이자 사랑에 푹 빠진 순간이기도 했다. 자신의 삶을 끌어안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신의 과거를 끌어안는 것, 다른 하나는 자신의 미래를 끌어안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끌어안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후회하는 과거가 있으며, 자신의 못난 자아..
Novel Finding 대학원을 2003년에 시작했으니 생물학 연구를 주업으로 삼은 지 20년이 넘었다. 나는 기초과학자이자 실험생물학자다. 그러므로 새로운 발견을 갈망하고 그것을 이론만이 아니라 실험으로 규명하는 일이 나의 본업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년간 내가 발견한 사실 중 해비급으로 보이는 건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대학원생 시절에, 다른 하나는 최근에 이루어졌다. 오늘도 그 두 번째 발견에 의미심장한 가지를 하나 더 보탤 수 있었다. 고백할 게 있다. 이 두 발견 모두 100% 내 노력과 상관없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첫 번째 발견은 내 의도, 가설, 혹은 예측조차도 하지 못했던 사건으로 말미암아 하게 되었는데, 유방암 생쥐 모델을 연구하다가 수컷 생쥐가 비실비실 죽어가길래 검사해 보니 혈..
손해 보는 삶, 나누는 삶읽고 쓰는 삶이 일상이 된 지 7년이 지났다. 만남의 축복으로 책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고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말에 첫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매년 한 권의 책을 신기하게도 쓰던지 번역했다. 2020년 ‘과학자의 신앙공부’ 저자로, 2021년 ‘닮은 듯 다른 우리’ 저자로, 2022년 ‘과학과 신학의 대화 Q&A’ 번역자로, 2023년 ‘생물학자의 신앙고백’ 저자로, 그리고 2024년 ‘세포처럼 나이 들 수 있다면’ 저자로 서게 되었다. 놀라운 점은 단 한 권도 나 혼자 기획해서 투고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모든 책이 순전히 만남 덕분이었다. 나는 그저 절박한 마음으로 성실히 읽고 쓰고 했을 뿐이다. 가끔 사람들이 묻곤 한다. 책 세 권의 저자이고 (..

인간만 변하면 된다이정모 저, '찬란한 멸종'을 읽고다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읽어볼 수도 없겠지만) 이 책의 저자 이정모처럼 과학 책을 맛깔나게 쓰는 작가가 한국에 또 있을까. 적어도 내가 알기론 없다. 독보적인 존재라는 말이다. 그의 저서를 여러 권 읽었지만 돈이 아깝거나 도움이 되지 않다거나 시간 낭비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 그의 글은 첫째, 재밌다. 유쾌하다. 둘째, 유익하다, 공부가 된다. 셋째, 쏙쏙 들어온다. 이러니 남녀노소 누구나 교양 수준의 과학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어서 이정모의 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름 생물학 박사학위 소유자인 나조차도 이 세 가지 장점을 누리며 몰입해서 읽을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타깃 독자가 청소년에 국한되는 것처럼 말..

흐르는 시간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부는 것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면 우리는 그것을 오감으로 알아챌 수 있다.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드러내는 힘을 가진다.보이지 않는 시간을 생각한다. 시간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는 것을 우리는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시계가 없는 상황에서도 가능하다. 적당한 빛이 머무는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창밖의 나무들이 드리우는 그림자가 달라지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세기와 눈부심도 차차 변한다. 무엇인가가 움직인다는 것을 명징하게 알기 위해서 그것을 관찰하는 자는 가만히 있어야 한다. 같은 속도로 움직이면 상대성 원리에 의해 우린 그 움직임을 알 수 없다. 나의 속도가 대..
순응과 순종 사이 순응을 순종과 같다고 여기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순응은 수동적인 따름이고 순종은 능동적인 따름이다. 순응하는 자는 질문하지 않는다. 순종은 많은 질문과 의심 끝에 행해지는 고결한 자기 내어줌이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나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 중 하나가 자발적인 순종이라는 것을 믿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 생각 없이 순응하라고 요구하신 적이 없다는 것도 나는 믿는다. 생각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은 채 모든 일에 순응적인 사람은 언젠간 생각하고 질문할 시기를 만나게 된다. 시기가 다를 뿐 그 순간은 도적 같이 임한다. 어쩌면 사람마다 다른 그 시기가 그 사람의 인생을 크게 좌우하는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다. 자아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은 너무 어린 나이에 그 순간을 맞이하..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 절대로 더럽혀질 수 없는한강 저, '흰'을 읽고‘흰’이란 소설은 하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다분히 독립적으로 보이는 많은 짧은 글들의 모음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에세이 같은 느낌을 준다. 중간중간에 사진도 여러 장 끼어 있어 마치 시집 같은 느낌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읽고 나면 이미지가 남는다. 짧은 텍스트를 읽었는데 남는 건 그림이다. 이 작품은 한강 작가 특유의 문체가 묻어나는 텍스트로 그린 그림집인 셈이다. 한강 작가의 여느 작품처럼 이 작품 역시 서사가 아닌 묘사 위주로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데엔 여백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텍스트 대비 물리적 여백이 많기도 하다. 나는 그것을 그만큼 천천히 읽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그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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