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과 저녁 사이에 충만하기 욘 포세 저, '아침 그리고 저녁'을 읽고 낯선 작가의 책을 손에 들고 낯선 세상에 처음 발을 내민다. 용기 내어 조심스럽게 첫 발만 디디면 어느새 나는 숙련된 여행자가 되어 이국의 냄새를 맡고 이국의 소리를 듣고 이국의 사람과 사물과 자연을 보면서 모든 시공간을 향유하기 시작한다. 독서는 낯선 곳으로 떠나는 혼자만의 여행이다. 문학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책 한 권으로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로 대체된다. 옹졸하고 편협했던 나는 조금은 더 너그러운 마음과 조금은 더 깊은 눈을 가진 사람으로 확장된다. 문학은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 낮은 자세로 새로운 세상을 접하고 귀 기울이고 멈추고 가만히 살피게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사려 깊은 사람이 되어간다. 하지만 문학은 용..
'밝음'의 문체 최은영 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고 서양고전문학을 선호하는 나는 한국소설도 꾸준히 읽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려면 베스트셀러 위주로 이미 입소문 난 책들을 먼저 살피게 된다. 최은영 작가는 수년 전부터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으로 이미 주목받는 차세대 한국 현대소설가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책 소개를 보고는 읽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모두 단편집이었기 때문이다. 단편이 주는 의도적인 불친절함과 불가피한 아련함 (혹은 무책임함)보다는 복잡하고 장황하더라도 깊고 풍성함으로 긴 시간 푹 빠져들 수 있는 장편을 나는 사랑한다. 참고로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친 고전문학은 한결같이 장편이다. 나는 책으로부터 여러 방 잽을 맞는 것보다 ..
휴식 내가 써온 300편이 넘는 독서감상문 중 가장 긴 시간을 투자했던 작품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었다. 두 번째는 역시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이었고, 그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들였던 작품은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토마스 만의 '마의 산', 달라스 윌라드의 '하나님의 모략',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투르나이젠의 '도스토옙스키' 등이었다. 작품의 분량 및 난이도와 감상문에 들어간 시간이 얼추 비례했다. 어젯밤 완성한 감상문의 경우는 예외에 해당된다. 그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열 시간은 족히 사용했던 것 같다. 아마도 '악령' 다음으로 가장 많은 공을 들인 감상문일 것이다.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비판적인 글을 쓸 때에는 특히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불필요한 감정을 건드리..
이미와 아직 사이의 요원한 대화 신국현 저, '유신진화론과의 대화'를 읽고 1. 후기에 앞서 먼저 이 리뷰는 세움북스 대표님의 리뷰 요청을 수락한 이후 기증된 책을 읽고 쓴 글임을 밝혀둡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제가 구매하지 않고 기증받은 책을 리뷰할 때에는 냉철한 비판보다는 긍정적인 부분을 좀 더 고려해서 반영하곤 합니다. 감사하게도 이번엔 대표님께서 비판적인 시각도 괜찮다고 말씀해 주셨기에 저는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고 조금은 더 객관적이고 조금은 더 냉철하게 이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리뷰는 어디까지나 저의 주관적인 입장이 반영된 글이라는 점을 숙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시대의 자식이고, 제 글은 제 안에 자리 잡은 세계관, 사상, 신앙 등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
장편의 시작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상처받은 사람들‘을 다시 읽고 물리적인 면에서 이 작품은 분량이 만만치 않다. 단편, 중편, 장편을 나누는 기준이 저마다 다르겠지만, 지난 작품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이 짧은 장편이라고 할 때, 이 작품 '상처받은 사람들'은 긴 장편에 속한다. 분량이 두 배 가량이고, 도스토옙스키 초중기 작품 중 가장 길다 (열린책들 버전으로 600 페이지가 넘는다). 일견 벽돌을 떠올리게 하는 후기작인 5대 장편을 읽어내기 위한 중간단계, 혹은 연습용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도스토옙스키 작품은 후기로 접어들수록 분량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도스토옙스키를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제목 정도는 들어봤음직한 작품들이 모두 후기작에 속한다는 점을 고려할 ..
성실한 글 글쓰기를 이제 막 배우며 시작하시는 여러 분들의 글 중 빈번하게 눈에 띄는 특징이 있어 소개해보려고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거들먹거리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단문 위주로 쓰려고 애쓰는 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사용한 단문이 그저 성의 없게 보인다거나, 내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다 아는 척하는 것처럼 보인다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치 자신이 지혜자인 듯 착각한 나머지 아포리즘을 구사하는 식으로 보인다면, 나는 차라리 단문을 사용하지 마시라고 권하고 싶다. 오히려 구구절절, 비록 장문이 된다 하더라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식으로 써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기에 단문의 미학은 장문을 쓸 줄 아는 다음 단계에서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길게 쓸 줄 모르면..
문학의 힘 그리고 읽고 쓰는 삶 C. S. 루이스 저, '책 읽는 삶'을 읽고 가방에 넣고 다니기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아담한 사이즈의 이 책은 루이스의 여러 저작으로부터 독서에 관련된 문장들을 선별하여 엮은 것이다. 루이스의 작품을 두루 섭렵한 독자라면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제목이나 프롤로그 격의 '엮은이의 글'을 읽으면 곧장 이 책이 읽고 싶어질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루이스를 꽤 읽은 나로선 사실 정독할 만한 책은 아니었다. 조금은 낚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낚여보는 것도 괜찮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꽤 유쾌한 일이었다.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길에서 며칠간 십여 분 정도씩 읽어나가기엔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한 책이었..
사소하지만 대단한 선택 클레어 키건 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고 클레어 키건의 문장들은 일견 건조하게 느껴진다. 따로 떼어내서 보면 실제로 그래 보인다. 그러나 그 문장들이 한데 모여 단락을 이루고, 그 단락들이 모여 한 편의 글이 되면 놀랍게도 아름다운 작품으로 탄생한다. 태연하고 무심하게 보이지만 알고 보니 누구보다 섬세하고 애정 어린 사람의 손길임을 문득 깨달았을 때와 같은 느낌일까. 그러므로 건조하게 느껴진 건 선입견으로 가득한 내 첫인상의 극히 일면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나의 애정 없음일 뿐 저자의 애정 없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화려한 수사 없이도 이야기를 충분히 이끌고 갈 수 있는 저자의 저력이라 이해하는 편이 옳다는 생각이다. 또한 중첩되는 문장도 불필요한 문장도 찾아볼 수 없이..
무뎌진 칼의 예리함 클레어 키건 저, '맡겨진 소녀'를 읽고 여백이 많은 글은 독자가 개입할 여지를 남겨 두는 저자의 배려이자 독자가 그 여백으로부터 숨은 의도를 찾아낼 것이라 믿는 저자의 믿음이다. 단문으로 이루어진 글은 속도감을 내기에 적당하지만 그것보다는 간결함과 명료함으로 독자에게 선명한 인상을 남길뿐더러 글의 여백을 강화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단문으로 가득하면서 여백이 많은 글을 만났다. 보리스 빅토르비치 사빈코프의 ‘창백한 말’ 이후 처음 느끼는 이 압도되는 기분. 나의 내면은 고요해지고 청명하게 깨어난다. 마치 이제껏 잠들어 있었던 것처럼. 마침내 현실로 돌아온 나는 클레어 키건의 작품들을 검색한다. 이미 가지고 있는 단 두 작품만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아쉽지만 기다리기..
기형적 자만심의 실체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을 다시 읽고 재독이 주는 유익은 깊이와 풍성함에서 찾을 수 있다. 초독과 재독 사이에 바뀌는 건 오로지 나 자신일 뿐 책은 그대로다. 그러나 재독 할 때마다 나는 책의 동일함보다는 상이함을 더 크게 느낀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풍성함), 이미 보았던 것들은 재해석되어 (깊이) 새롭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같은 책을 다시 읽는 데에서 경험하는 익숙함과 반가움, 그리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것들을 새로이 알게 되는 낯섦과의 뜻밖의 조우. 이 모든 것들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놀이가 바로 재독, 곧 깊이와 풍성함의 향연이다. 현재 나에게 그 대상은 도스토옙스키이고, 나는 가능한 멀리 보면서 한 걸음씩 천천히 ..
장악한다는 것 넓은 공간보다는 적당히 좁은 공간에서 나는 아늑함을 느낀다. 집중해서 글을 읽거나 쓸 때에도, 심지어 잠을 잘 때에도 나는 적당히 좁은 공간을 선호한다. 아마도 그럴 때마다 내가 느끼는 건 그 공간을 장악했다는 기분일 것이다. 장악한다는 것. 이는 익숙해진다는 것과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적극적인 느낌이다. 익숙해지는 건 수동적으로도 가능하지만, 장악한다는 건 그럴 수 없다. 좀 더 능동적이어야 한다. 내가 그 공간에서 무엇인가를 해내야 한다는 조건이 붙을 때 더 그렇다. 집중은 마음이 불편하면 불가능하기 마련이다. 어떤 공간에 들어설 때 우선 마음이 편해야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다. 또한 익숙해지는 게 시간에 따른 개념이라면 장악한다는 건 공간에 대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수동성은 전적으..
거품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던, 코엑스에 위치한 별마당 도서관을 처음 방문했다. 이층 건물 높이의 거대한 책장들이 한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였다. 이름은 도서관이지만 나는 오늘 방문 전까진 서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안내 데스크에 보란 듯이 쓰여 있었다. 여긴 서점이 아닌 도서관이라고, 책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압도되는 책장을 가만히 살펴보다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책장에 꽂힌 대부분의 책들, 특히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위치한 책들은 실제 책이 아니라는 것. 책 표지를 인쇄하여 빈 박스를 감싼 듯한 물건 같았다. 책처럼 보이지만 책이 아닌 것들. 아니나 다를까. 진열된 많은 책들 중 책 앞면이 중복되는 것들도 많았다. 순전히 보여주기 위한 진열이었던 것이다. 속은 기분이었다...
히스클리프: 폭풍의 근원지 에밀리 브론테 저, '폭풍의 언덕'을 읽고 일주일 남짓 나는 거의 매일 한 시간 가까이 책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19세기 초 영국 요크셔에 위치한 '워더링 하이츠'와 그로부터 4마일 정도 떨어진 '드러시크로스 그레인지'에 다녀왔다. '워더링 (Wuthering)'은 '바람이 거세게 부는'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방언이고, '하이츠 (Heights)'는 '높은 곳'이라는 뜻을 가지지만 그 뜻과는 별 상관없이 어떤 장소를 지칭할 때 흔하게 사용되는 단어다 (참고로 내가 거주한 첫 미국은 오하이오주에 위치한 쉐이커 하이츠 (Shaker Heights)였고, 캘리포니아에 살 때 옆 동네는 아시엔다 하이츠 (Hacienda Heights), 라 하브라 하이츠 (La Habra Height..
익숙한 것들을 기꺼이 껴안는 삶 조르주 페렉 저, ‘보통 이하의 것들’을 읽고 처음 읽는 조르주 페렉. 그에게 ‘일상의 글쓰기’라는 타이틀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그 자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 소개된, 다분히 실험적이고 집요하여 당황스럽기조차 한 그의 글들은 넌지시, 그러나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익숙한 것들, 대부분의 일상을 이루지만 익숙하다는 바로 그 이유로 어느새 일상에서 탈락되고 배제되어 버린 그 소중한 것들을 다시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라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내게 주어진 인생의 후반전이 빛날 수 있는 길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 같다고. 그래서일까. 오늘 아침에 집을 나서며 내 눈에 들어오는 건물들, 장소들, 공간들이 다르게 ..
천천히 달궈지는 책 책 종류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여기선 빨리 흥미를 유발하여 몰입하게 만드는 책, 그리고 천천히 달궈지지만 정말 훌륭한 책이라고 고백하게 되는 책, 이렇게 두 종류로 나눠보겠다. 빨리 재미를 느껴 책장이 국수 말아먹듯 넘어가는 책 중, 적어도 천 권 넘게 여러 장르를 골고루 읽은 나 같은 경우는, 오래 남는 책이 없었다. 내가 무인도에 들고 갈 책 몇 권, 아니 몇십 권을 꼽으라고 해도 나는 그런 책은 고를 마음이 추호도 없다. 반면, 인생을 바꿀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친 책들은 한결같이, 소위 첫 눈에 어렵게 보이는 책들이었다. 재미로 읽는다고 결코 말할 수 없는 책들, 이를테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나 ‘악령’, 헤세의 ‘유리알 유희’, 카잔차키스의 ..
책 읽는 시간 이틀 전부터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기 시작했다.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19세기 영국의 낯선 풍경 속으로 단숨에 빠져들었다. 황량한 지역 위에 우뚝 서 있는 집 워더링 하이츠에도 잠시 다녀온 기분이다. 어디나 그렇듯 그곳에도 이야기가 있었다. 당분간 나는 그곳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시공을 초월한 여행을 즐기다 오게 될 것이다. 책 (문학작품, 특히 소설 위주) 읽는 시간이 주는 혜택은 여행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에 담긴 내용이 역사성을 띠는지 안 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신화나 전설일지라도 상관없다. 이 여행의 동력은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나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상상이 거세된 채 냉철한 이성만을 요구하는 책들도 유익이 있다. 지식의 확장과 ..
글 쓰는 시간 누군가는 붓을 들면 세상이 고요해진다고 했다. 깊이 공감이 된다. 나 역시 글을 쓰려고 앉으면 고요를 느낀다. 마치 두터운 헤드폰을 쓰고 내 안으로 침잠하는 듯한 기분이다. 이내 소란스러웠던 세상은 한 발치 멀어지고 나는 그렇게 활자의 세계로 도피를 감행한다. 이 도피처를 모를 적에 나는 대체 어디로 내 생각과 마음을 숨겼던 걸까, 하는 생각이 오늘 저녁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올 때 머리를 스쳤다. 기억나지 않았다. 마치 글 쓰기 이전의 내 삶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주 먼 고대의 일로 느껴졌다.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글쓰기가 뭐라고, 내 삶을 리부팅시켰단 말인가. 커서가 깜빡이는 백지는 침묵한다. 편안한 침묵이다.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주는 고요가 백지의 여백 안에 충만하다. 부재의 충만..
믿음과 믿음의 반응 나는 믿는다, 라는 말로 자신의 믿음을 증명할 수 있을까. 믿음은 오직 믿음의 반응으로 증명된다는 생각이다. 믿음은 비가시적인 반면, 믿음의 반응은 가시적이다. 그러나 믿음과 믿음의 반응은 둘이 아닌 하나다. 믿음이 살아 숨 쉬고 역사하는 이유다. 믿음의 반응은 행동으로 드러난다. 처음에 그것은 믿는 대상을 향한다. 그러나 믿음의 반응은 믿음의 깊이를 더하고, 성장된 믿음은 믿음의 반응을 더 풍성하게 한다. 이런 상호작용은 자연스럽게 믿음의 반응을 함께 믿는 이들을 향하고 결국 모든 사람을 향하게 만든다. 다분히 관념적이다가 점점 실체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이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 하나님 사랑은 싹을 틔우지 못한 채 땅 속에 머무는 씨앗에 불과하다. 그 씨앗의 ..
슬퍼하지 말고 더 사랑하기 김진영 저, '아침의 피아노'를 읽고 "김진영 선생님은 임종 3일 전 섬망이 오기 직전까지 병상에 앉아 메모장에 '아침의 피아노'의 글들을 쓰셨다." 이 책의 첫 문장이다. 한 장을 더 넘기면 차례가 나온다. 2017년 7월부터 2018년 8월까지의 시간이 덩그러니 적혀있다. 1952년생인 저자 김진영은 2017년 7월 암 선고를 받는다. 그리고 2018년 8월 향년 66세로 세상을 떠난다. 암 선고를 받았을 때 그의 간은 이미 암덩어리가 장악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공식적인 진단을 받았던 그날 그는 암 환자가 되었다. 그 후, 1년 하고도 1개월. 비록 건조한 문자로 적혀 있지만, 이 책의 차례는 저자가 암 환자가 되고 암에게 육체를 내어주기 직전까지 그의 숨과 그의 정신을 오..
- Total
- Today
- Yesterday